바람 속

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3부

by 김욱래

너무 이를 악물어서 잇몸들이 시큰거리고 피멍 투성이의 몸뚱이를 후들거리면서 정찰대 병력은 김계식의 선처에 감지덕지했다. 낮은 포복은 4일째 오전부터 간신히 끝났고 정찰대 소속이었다는 치욕은 금세 잊힌 듯했다. 푹 익을 만큼 실컷 불에 덴 병력은 빨간 모자들의 통제에 그때부터는 매우 능동적으로 임했다. 몇 가지 남았던 코스에서 오히려 다른 직할대올빼미들의 본이 될 정도였다.

저녁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반합 두 개를 가지고 개울가로 내려왔다. 반합들을 씻어 너럭바위에 뒤집어놓고 빨간 모자들이 처맞으러 올라오던 길, 개울가 내리막 오솔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격장 방향에서 산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올라와 그의 짧은 머리털 한 올 한 올을, 그리고 뻣뻣하게 거친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바람 속으로 자꾸만 그 오솔길을 걸어 내려가고 싶었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냇물소리에 섞여 그의 노래가 나직이 흘렀다.


그녀를 두고 그렇게 먹먹하게 뛰쳐나온 후 여름이 지나고 가을도 저물면서 초겨울이 되었다. 쌀쌀한 날씨에 그는 여전히 청재킷과 청바지, 안에는 달랑 초록색 반팔 티셔츠였다. 하긴 서울은 아주 춥진 않았다. 옛날의 그날, 그녀와 단둘이 점심을 먹던 날, 뒷머리에 불쑥 그녀의 손길을 받았던 그날 한참을 머쓱했던 그가 그녀에게 물었다. 텔레비전에선 은갈치같이 반들거리는 양복을 입은 새파란 인기가수가 노래하고 있었다. 그 가수는 잘생긴 데다가 미성(美聲)이었다.

“저렇게 양복 입는 거 좋아해요?”

“아―니. 젊은 사람은 청바지에 티가 더 어울리지 않니? …너처럼 그렇게.”

그녀는 그렇게 대답했었다. 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그에겐 그 옷밖엔 없었다. 그녀의 집과 서울의 아주 반대편인 숙부 집을 나서서 한동안 그는 큰길을 따라 걸었다. 찬바람에 떨어진 은행잎들은 인도 블록 위를 몰려다녔다. 그는 갈색 타일로 외장 된 건물 2층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사람 없는 커피숍은 꽤 넓었고, 그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큰 창가 기둥에는 바짝 마른 꽃다발이 거꾸로 걸려있었다. 그가 하얗고 깔끔한 셔츠차림의 또래 남자 종업원에게 커피를 주문했다. 처음엔 비엔나커피로 시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종업원은 상당히 정중한 태도로 리필 가능한 커피에 액상 크림이 담긴 스테인리스 용기와 누런 각설탕을 내왔다. 한쪽 벽에 올려진 스피커에서 조용필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에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


그는 종업원에게 볼펜을 하나 청해, 오던 중간에 무슨 구멍가게 같은 문방구에서 산 연두색 종이에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흙투성이 유격복을 무릎까지 올린 그는 냇물로 들어가 발목까지 담갔다. 인제 와 그 편지를 생각해 보니 낯이 붉어졌다. 그는 두세 번 커피를 리필해가면서 일곱 장을 빼곡히 썼었다. 오래전의 지난날과 학교를 나왔었던 사정, 옹졸했던 자신, 그녀에 대한 고마움 등등 처음엔 그녀를 향한 연모(戀慕)를 숨기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하지만 일곱 장씩이나 쓴 바에야 그게 드러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었다. 그녀와 함께일 때 대화도 많이 나누지 못 해봤던 자신이 한스러웠다. 언젠가는, 바보같이 밀드레드 얘기를 꺼내려고도 했었다. 그러지 않았던 게 다행이었다. 사랑을 주제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었으나 잘못하다간 그녀에게 선입견을 가지게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그녀를 숭앙(崇仰)했다. 밀드레드 얘기를 빗대 애초부터, 사랑이란 걸 처음 알게 된 때부터 그녀를 사랑했다는 고백이라 할지라도. 아니, 애초에 그녀로 인해 사랑을 알게 되었다는 고백이라 하더라도.

그는 추신 보너스로 용기를 내어 그녀에게, 잠자는 그녀에게 키스했었노라고 쓰려고 했지만 차마 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후, 후, 한숨을 내쉬다가 그녀의 이름을 봉투에 썼다. 남궁현주 前(전).


끙끙대며 돌길을 기어다니느라고 사흘을, 그리고 토요일 오전까지 걸친 유격훈련을 마치고 복귀 행군이 시작되었다. 다른 직할대도 각각 행군으로 복귀할 터였다. 50킬로미터의 복귀 행군은 유격훈련 규정이었다.

편지를 쓴 다음 날 그는 시내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그녀의 집 그 진녹색 대문 앞까지 갔다. 한참을 초조하게, 약간은 기운 없이 서성대기만 하다가 돌아오는 그녀의 남동생을 겨우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외면하는 남동생은 계속 뿌루퉁했다. 그는 한동안 사과한 후, 자신의 도톰한 편지를 꼭 좀 전해달라고 거듭 부탁했다. 한참 나중에서야 그녀의 남동생은 그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산길을 빙빙 돌든 어쨌든 행군 거리는 맞춰야 했는데 어두워지자, 선두의 중위가 잘 못 길을 들었다. 정찰대 행군 속도는 그가 처음 겪는 것이었다. 특작 부대는 50분당 6킬로미터를 빼게끔 되어있었다. 물론 35킬로그램이 넘는 완전군장으로. 휴식 없이 한 시간을 뺀다면 7.2킬로미터의 속도다. 육군 보병 규정 속도는 시간당 4킬로미터였다. 행군 대열은 가파른 고개를 오를 때나 내려갈 때나 똑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전에 그가 경험해 본 행군은 고등학생 때, 그 특수전 여단에서 비상 걸린―상무 교육의 일환이었다―새벽에 인근 유명 탄산약수터까지의 20킬로미터와 신병교육대 마지막 주 30킬로미터 행군, 그리고 유격장 들어올 때의 단거리 행군 정도였다. 19사단 소초는 쉬엄쉬엄 찾아갔으니, 행군이랄 것은 아니었다. 기분이야 어찌 됐든 일단 그에게 시급한 것은 뛰는 건지 걷는 건지 알 수 없는 정찰대 행군 속도였다. 숨은 턱까지 차오르고 허벅지가 터질 듯해서 그는 자신의 지구력이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그냥 뛰는 게 더 나을 성싶었다. 역시 ‘짬밥’이란 게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분간 휴식 때마다 대단히 유교(儒敎)적인 장면이 벌어졌다. 황급히 군장을 벗어 놓은 이등병들이 수통을 빼 들고 뛰었다. 고참들 목을 축여주기 위해서. 지랄 같은 예의범절이었지만 그 역시 매번 수통을 부여잡고 뛰어다녔다. 누구누구 반장님, 물드십시오, 누누누구 병장님, 물드십시오. 누누누구 상병님, 물드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행군 중에라도 이등병들이 쫑긋 귀를 세웠다가 근처 어디선가 졸졸거리는 소리라도 들릴라치면 후다닥 달려가 채워 왔던 물이었다. 언제는 제 수통의 물 한 방울 맛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일병들은 저희 걸 마셨지만. 이등병들의 수통을 건네받은 이들 중에는 그냥 입술만 축이고 돌려주는 속 깊은 축도 있긴 했다.


멍청한 데다가 고집만 쇠심줄인 그 중위 덕택에 정찰대 병력은 70킬로미터를 넘게 돌고 돌아서 복귀했는데, 그 시간이 새벽 세 시가 넘어 있었다. 지휘관 김계식은 언제나처럼 방수포를 뒤로 젖힌 제 지프―그걸 몬 게 유기철이었다―에 편안히 앉아 일찌감치 돌아와서는 곧바로 퇴근했다.

그는 계속 쓰라렸던 왼쪽 발바닥이 이젠 따끔거리며 후끈댄다는 걸 알았지만 몸도 굉장히 지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무반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는 씻지도 않고 곧바로 쓰러져 잤다.

자꾸 무언가 야문 물체끼리 둔중하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오전 10시쯤이었다. 방탄 헬멧을 쥔 소대 병장 하나가 뭐라고 떠들고 있었는데, 한 편 침상엔 조병주를 위시해서 상병들 전부가 줄 맞춰 올라앉아 있었다. 부동자세를 하고 있는 상병들의 머리를 그 병장이 방탄 헬멧으로 쳐대던 중이었다. 병장은 이제 전투화 발로 퍽퍽 가슴을 내지르기도 했다.

방탄 헬멧으로 자꾸 충격을 가하면 머리통이 이상해질 것 같았지만 이젠 그에겐 어차피 남들 문제였다. 저희끼리야 그러든 말든 그가 양말을 벗고 왼발바닥을 내려다보니 직경 5센티미터 정도의 멀건 물집 속으로 또 동전 크기만큼 노랗게 곪아 있었다. 그가 살짝 만져보니 성이나 쿡쿡 쑤셨다. 돌아오자마자 실로 꿰어놓아야 했었는데, 그는 경험이 부족했다. 자신의 무신경이 그는 크게 후회스러웠다. 점심을 뜨고 나자마자 다시 군장 검사를 실시한다고 했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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