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욱래 Aug 17. 2024

6장

김욱래 중편소설 연재

  매번 그랬다. 트럭이 U 시 쪽으로의 쭉 뻗은 자동차 전용 도로로 올라타서야 그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시속 160km에 육박하게 밟다 보면 혹, 메뚜기 마빡처럼 닳아빠져 반들거리는 앞 타이어라도 한쪽 터져―장닭은 분명 저는 책임 없다고 할 것이었다―중앙분리대를 들이받고 넘어가 뒤집히거나, 반대쪽 가드레일을 끊고 저 밑의 비탈로 뒹굴다가 곤두박질쳐서 죽지 않을까 하는.

  다들 TV며 스마트폰, 또 그 속의 ‘사회 관계망 서비스’라는 것 등등에 빼앗기는 인생. 스마트폰 같은 것은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기운이 쭉 빠진다. 그런 데 어느 구석에 생에의 미(美) 같은 것이 있는가. 자신은 아무래도 고전적인 삶이 맞았다. 드론(drone)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숱하게 떠다니든, 3D 프린터라는 것이 뭘 막 찍어내든, 옛날 SF 물의 황당한 내용들이 이젠 현실이 되었든지 간에. 

  사람은 쉬이 바뀌지 않는다. 그는 원래부터 그러한 기질이 있었다. 미소한 것들을 조용히 관조할 수 있는 기질이. 

  언뜻 그는 자기 게 진짜로 ‘사소한 것’이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기억을 떠올려보면 하나마다 상당 부분은 ‘대중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었다. 

  좋다. 대중적이면 또 어떤가. 외려 그렇다면 천양지차로 현실을 벗어난 것들이 대중적인 것도 못 되게 된다. 그것들은 그러면 다 뭔가? 그 본연의 의미로서 라면 내 것이 대중적이어도 좋다. 그렇게 그는 자신에게 묻고 스스로 답했다. 




  이젠 암탉이 점심을 만들 필요가 다시 없어진 모양이었다. 집으로 가려고 그가 자전거를 따는데 옷을 갈아입은 부장 혼자 앞길에 서 있었다. 

  “어디로 가시게요?”

  부장에게 그가 물었다.

  “짬뽕이나 한 그릇 하고 말려고요.”

  대리점 바로 맞은편 쪽이 조그만 중국집이었다. 신용카드는 받지 않았는데 짜장면이 3,000원이었다. 그는 그거나 한 그릇 먹고 말 생각이었다. 

  “내가 살 처지는 아니지만 그러면 저 집에서 같이 먹죠.” 

  부장은 짬뽕을 시켰다. 

  “……어저께 두 명 면접 보고 갔어요.”

  부장이 그 얘기를 꺼냈다.

  “이번엔 종일 짜리 기사 들어오면 내가 이젠 있을 필요 없지 않겠어요?”

  이젠 그는 더는 근심하기가 싫었다.

  “아녜요, 아니에요. 기사님은 이제 끝까지 하세요. 자식들, 처음부터 마트를 줘 버릇하니까 안 되겠어요. 젊은 놈들이 자세가 안 돼 있어. ……누구 들어와도 앞으론 기사님한테만 묶어 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지금처럼만 계속하세요.”

  이야기는 예상외로 잘 되었다. 부장이 그에게 5,000원짜리를 건네주었다. 그는 계산을 하고 나가서 문 잠긴 조그만 술집 계단 턱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부장에게 500원을 돌려주었다.

  “아니, 왜요?”

  “사천오백 원이데요, 짬뽕은.” 




  거기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그는 생각해보았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이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거였다. 그도 스스로 아직 그럴 나이는 못 되었다고 여겼지만 새 신부의 모친은 완강했다. 

  인터넷 같은 데서 주례사를 베끼기는 싫었다. 그리한다면 굳이 자신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었다. 

  이 기쁜 자리에 선 나는 누구누구의 누구 되는 누구다. 게다가 이런 자리가 난생처음이다. 나이도 얼마 안 된다. 분에 넘치는 초청을 받은 나는 이 자리를 크나큰 영광으로 알겠다. 

  어차피 오늘 같은 날은 신랑 신부는 정신이 없어 주례가 뭐라고 떠드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테지만 두 사람을 축하해주려고 귀한 걸음을 한 여러분에게 무슨 도덕 선생같이 고릿적 얘기나 하라고 특히 나를 부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 그런 얘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내 경우는 결혼식을 하고 나서 한 두세 달 동안은 

  “아! 나는 이제 정녕 유부남이 되었단 말이냐?”

  하고 머리가 멍했었다. 며칠 전부터 나는 가만히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결혼을 한 뒤 지금껏 집사람과 함께 열심히 산다고는 살았으나 벌어 놓은 돈은 없다. 그런데 두 개는 해놔 뭔가 남을 수 있게는 되었는데, 내가 생업을 그만두고 그걸 한다고 하고 있을 때 와이프는 얼마나 속을 끓였겠나. 이 자리를 빌려 내 안사람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기분이란 것의 있고 없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방향과 방법이 중요할 터였다.

  “오늘 일찍 들어가.” 

  시계를 한 번 올려다본 장닭이 동그란 눈을 껌벅이면서 말했다.

  “일이 없잖아.”

  이런 날도 있었다. 그는 10분 일찍 일터를 나섰다. 그의 집 근처 그 슈퍼 블록을 지나 큰 도로 하나를 건너면 바로 변두리로 시골과 마찬가지였다. 낮에도 거의 길 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날은 후끈했지만, 집 옆 공원으로는 미안했다. 닭기름과 핏물 젖은 차림 그대로 그는 개를 끌고 그 마을 입구로 갔다. 예전부터 그는 믿었었고 거기서 목줄을 풀었다. 개는 쏜살처럼 튀어나갔다. 그 개는 특이하게 풀냄새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식물학자 될 거니?”

  그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부산 결혼식―일요일이었다―주례 핑계로 오랜만에 한 번 토요일까지 내처 쉬어보리라 계산했다.

  오늘 신랑 신부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것이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완성이라는 얘기다. 서로 자기완성을 향해 가는 한편을 돕고, 또 각자 자기의 완성을 향해 가는 아름다운 두 사람이 돼 주었으면 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무슨 채무 관계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니다. 서로가 돕지는 못할망정 스스로의 완성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훼방하고 원망해서는 안 된다. 어느 누구에게도 그러할 권리란 없는 것이다……. 

  수련 잎들이 빼곡히 들어찬 크지 않은 저수지 둑길의 노랗고 하얀 꽃들에는 그 개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둑길을 왔다 갔다 내닫다가는 또 멈춰서 풀―특히 뿌리 쪽―종류들을 이것저것 관찰하느라 열심인 그 하얀 개를 그는 혀 차는 소리로 불렀다. 그럴 줄 그는 믿었다. 잠시 머뭇대었지만 착하게 개는 돌아왔다. 마음이라고 불리는 것이 실재한다면, 그는 그게 있을 것 같은 부위께가 좀 편해졌다. 오랜만에 멀찍하게 나오니 개 역시 편해졌는지 비탈 풀밭을 앞발로 긁었다. 매번 웃기는 녀석이었다. 머리통만 저쪽으로 하면 제 모습이 남에게 안 보이는 줄로 아는 모양이었다. 등을 활모양으로 만든 다음 네 발을 한데 모으고서 방둥이는 이쪽으로 훤히 드러낸 채 힘을 준다. 그런 천진스러움이 그는 우스웠다. 땀이 그의 등골을 타 내리고 있었다.




  그는 그 약속 생각을 할라치면 적이 부담되었다. 생활의 길과 내면에의 길, 현실의 길과 내면 현실로의 길 그 두 갈래에서 여전히 그는 혼란을 느꼈다.     

  닭 배달이나 하고 있는 주제에 내가? ……아니다. 그래도 난 삶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서로에 있어서 자기 계발이 오래가는 매력의 열쇠인 것이다. 가벼운 예를 들자면……, 남자의 경우엔 특히 배가 나오면 매력 없는 것이다. 틈틈이 복근 운동을 해서 오래도록 남성적 매력을 유지하기 바란다. 그리고……. 

  중고등학생들이 등교하는 중이었다. 

  그저 계속 생산되어 여기 이 소비사회로 공급되는 소년 소녀 학생들, 특히 지금 교복 스커트 자락을 나풀대며 자박이는 다리들, 저 여학생들……! 

  두 번째 이야기는 소비생활에 대한 것이다. 신혼집은 아파트로 얻었나?―거의 다 그러니까 그렇다고 하겠지?―집은 커야 한다. 돈 벌어라. 나중엔 커다란 개인 주택에 살아라. 아파트는 소비만 조장하는 구조다(인테리어 등에 관한 호기심으로 그는 새 아파트 모델 하우스들이 있으면 가끔 들어가 보았다.). 베란다를 터 없앤다, 주방 싱크대다 뭐다 유행 바뀔 때마다 새로 인테리어 한다. 쓸 만한 가구 죄다 내다 버리고 새 걸로 들여놓는다―그래 봐야 역시 키치다―. 멀쩡한 화장실 리모델링에 또 어디 어디 공사, 그러다가 새로 지은 아파트로 또 이사, 다시 이사, 그래도 답답증에 별 볼 것도 없는 여행을 자꾸 나다니게 된다―(아니, 여유 땅 많은데 왜 다들 대롱대롱 공중에 매달려서 위태위태하게 산단 말인가. 스카이뷰가 어떻다고? 웃기지 말라 그래라.)―. 그러면―(나처럼)―돈을 모을 수 없게 된다.

  남자도 요리를 좀 해야 한다. 술안주도 스스로 만들어 먹을 줄 알아야 하고 자기 밥은 자기가 해 먹을 줄 알아야 늙어서 ‘삼식이’라고 서러움을 받지 않게 된다. 

  그런데 그는 아파트 생활양식으로 인한 소비구조와 남자의 요리 어쩌고 하는 얘기는 너무 구구절절할 것 같아 생략하기로 했다. 아무리 바른 얘기래도 두 사람이나 하객이 지루해지면 곤란할 것이었다. 그 지론에 동의하지 않는 축들도 물론 대다수일 터였고. 그리고 이런 얘기도 빼기로 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지 말고 서로 책을 읽으세요. 노후에는 커다란 위안과 지혜로 남을 겁니다.”

  다음 말은 꼭 넣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부부는 나중에는 어쩌면 의리로 사는 것이다. 그게 인간의 도리다―(가끔 실수가 있을 때도 있지만.)―. 

  그리고 이렇게 얼버무리면 된다.

  이상 외의 것은 도저히 막막할 때마다 물어주면 주례를 선 책임감을 가지고 아는 한도 내에서 애프터서비스를 해 주겠다. 

  그는 끝에 생각했다. 특히 소비를 그만두어야 한다. 그게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거다. 노예로!

  그는 세상 대부분이 탐탁지 않았다. 물론 세상은 그를 관계치 않고 흘러왔고 다시 흘러갈 터이지만.




  제시간에 돌아오자면 서둘러야 했지만, 어렵사리 다시 찾게 된 일정, 그는 커피 타임은 챙겨야 했다. 철로 상공을 둥그렇게 넘는 구름다리를 내려가 그 편의점 앞에 그는 트럭을 받쳤다. 냉 캔 커피를 하나 사 들고 나오면서 그는 건너온 그 구름다리를 무심코 돌아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세상이 텅 빈 것 같았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고 햇볕은 선선했다. 구름다리의 내리막길 양쪽 가의 가로수 잎사귀들이 따로 천천히 한들거렸다. 가을 냄새 같은 것을 머금은 오른편의 강바람이 그의 얼굴 살갗을 나른하게 쓸면서 갔다. 그 길에 일체 그를 뒤쫓아 오는 차들은 없었다. 고즈넉한 풍경 속에 그는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꿈에 나온 어린 시절의 옛 고향과 같은, 고교 때 등교하지 않았던 어느 날처럼 이상스레 한적하고 아련한 여름 한가운데에. 아늑하고 호젓한, 텅 뚫린 공간 속에서 그는 천천히 한 모금씩 커피를 삼켰다. 트럭의 비상 깜빡이가 꽁무니에 매달려 하릴없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자신은 이제껏 앞길만 보고 달렸었다. 이렇게 몸뚱이로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은 처음인 듯했다. 텅 빈 그 길은 평화로웠다. 평화롭고 고즈넉하게 그리 살아야 하는 것인데 어쩌지 못하고 이리 살아온 자신을 그는 흡사 남한테 그러는 듯 생경스럽게 훑어보았다. 

  ‘생활은 두 가지뿐’인 것이다. 산들거리며 길을 건너오는 강바람 속에서 그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런저런 어려움 같은 것, 지내놓고 보니 따질 필요 없었지 않은가. 그렇다. 두 가지밖에는 없다. ‘하고 싶으나 할 수 없는 것’, 그리고 ‘할 수 있으나 하지 않는 것’. 인생 가운데 할 수 있는 시간, 하기 힘든 시간을 굳이 가려야 했었던가. 그럴 만큼 다른 이들의 성취는 다 완벽하던가. 그다음에……. 

  그는 이번에는 일한 돈을 받게 되면 파라솔 세트를 살 생각을 했다. 사람 많은 한길에서 네모난 플라스틱 테이블 상판 위에다 좌대를 받쳐 서슬 퍼런 긴 칼을 뽑아 놓을 생각이었다. 그 길고 퍼런 칼 옆에 앉아있을 자신 정도의 풍채나 분위기라면 시선을 여럿 끌 수 있을 듯했다. 묻는 사람이 있다면 만들어 놓은 그 쪽지를 자연스레 나눠줄 수 있을 터였다. 강남 그 사내는 겨우 돈 문제로 미래가 보이지 않았고, 미래가 안 보여서 그러했단 말인가. 그는 생각했다. 

  칼 장수가 되는 거다. 매무(賣武)를 해서라도……! 

  방광은 꽉 차 있으나 술이 너무 취해서 영 빼낼 수가 없을 때, 반드시 누겠다는 의지를 다 해서 아랫배에 힘을 주다 보면 힘 있는 줄기를 내보낼 수 있었던 예전 경험들이 그는 생각이 났다.      




  “벌써 주례 서달라고 불러?”

  장닭은 동글동글한 눈망울들을 멀뚱거렸다. 

  저녁엔 자갈치시장에서 식구들 좋아하는 생선구이도 좀 시키고, 올라올 땐 경주도 오랜만에 한 번 들려야지…….

  “……알았어. 대체근무해, 다음번.”

  그다음 일요일에 또 나오라는 거였다. 한 번 쉬어 볼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세상이 온기가 전혀 없다는 생각이 그는 들었다. 모든 게 과잉 생산되는 세상. 도계 공장마다 수천 마리 닭이 한꺼번에 거꾸로 매달려 기절하고 목이 절단된다. 그 닭들은 몸집만 컸지 사실 생후 30일밖에 안 되는 병아리다. 과잉생산에 과잉공급, 피로한 사회. 

  삶이란 차마 긴박한 우연일 수 있다. 바로 그날 돌아오는 길, 그 편의점을 지나 구름다리 못미처 교통신호 위반, 과속단속 카메라가 달린 횡단보도 정지선께서처럼. U 시 어름 치킨집에 물건을 넣어두고 그가 냉동 탑 안을 봤더니 치킨 무 한 상자가 덜렁 남아 있었다. 시내를 빠져나오면서 한 군데에 그걸 빠트린 것이었다. 도로 그 상자를 넣고 들어가려면 웬만해선 밟아야 했다. 

  처음엔 앞 트럭은 막 바뀐 황색등에 그냥 지나가려는 듯했다. 그도 따라붙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 트럭은 횡단보도를 반쯤 먹으면서 급제동했다. 지그재그로 미끄러지는 자기 트럭 타이어 소리가 요란했다. 가게 암탉의 인상부터 시작해서 그 순간 그는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이상하게도 철판 우그러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충격도 없었던 듯했다. 그는 트럭에서 내렸다. 두 트럭 틈새는 정말 깻잎 한 장을 찢어지지 않게 가까스로 빼낼 수 있을 듯한 정도였다. 메뚜기 마빡처럼 닳아빠진 타이어래도 여차했으면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했을 판국이었다. 

  아니, 저 자식은 왜……? 식은땀이 그의 등골을 타고 흘렀다. 앞 트럭에서 벌겋게 삶에 그을린 운전자가 내렸다.

  “다친 데는 없으시죠?”

  그는 그것은 그렇다고 했다.

  “많이 놀라셨어요? 아이고 미안합니다. 안 세우면 괜히 돈 나가잖아요? 벌점도 또 엄청 세고.”

  이런 우라질……. 앞차 운전자는 제 돈만 알고 뒤차의 돈이며 그 외 여러 사정은 갈음하지 않는 것 같았다.

  새 직원은 이틀 후 들어왔다. 그가 자전거를 세우고 내리는데 나이 지긋하고 알 넓은 금테 안경에 근엄해 뵈는 상당한 배불뚝이라 어디 거래처 사장쯤인가 했다. 새 직원은 중국집을 오래 했었다고 했다.     

토요일 연재
이전 05화 5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