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그는 긴 쪽 침상 중앙에 털썩 걸터앉았다. 전투화 발에 짓밟혔던 등짝이 쑤셨다. 그는 상체를 비스듬히 뒤로 젖혀 침상을 짚었다. 담배를 한 개비 피워 문 그는 초점 없는 눈으로 어느 한 점을 응시했다. 내무반 인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들은 신병 하나가 내무반에 앉아 내일 제대할 말년모양 방약무인한 자세로 담배를 피워대는 현장을 오롯이 지켜보아야 했다.
딱 일주일 전이었다. 지프차가 부대 정문에 도착했을 때는 날이 약간 어스름해지고 있었다. 노랗고 검은 사선이 교대로 칠해진 철제바리케이드 뒤, 콘크리트 심 겉에다 누리끼리한 호박돌을 쌓아 붙인 정문 기둥에는 누런 목 간판이 걸려 있었다. 정문 기둥 뒤편 위병소 앞에 M16을 우경계총 한 위병이 서 있었다. 그 위병의 왼쪽 가슴에는 노란 날개만 좌우로 펴진 작은 기장―육군 항공기장―이 붙어 있었다. 그 위병은 정찰대원이 아니었다. 살쾡이가 눈알을 희번덕거리며 신병들에게 모종의 지령을 내렸다. 지프차로부터 출동한 신병들이 위병소로 접근해 갔다. 경계근무를 서던 항공대 상병은 응당히 이등병들의 방문목적을 물었다. 희미한 반말이었다.
“신병이다. 이 새끼야.”
유기철이 확실한 반말로 욕까지 붙여 대답했다. 불끈한 위병이 유기철의 멱살을 잡으려 했고 유도대―정확히는 유도학교―휴학생은 망설임 같은 것 없이 곧장 그 병사를 메어꽂았다. 소총이 땅바닥에 팽개쳐졌다. 위병소에서 뛰어나온 병장이 소총을 주워 들고 유기철에게 달려들 때였다. 동기가 활약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그도 총열 덮개를 한 손으로 잡아채며 병장의 안면에 주먹을 욱여넣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끝났다. 다 늦게 김기진과 오기식이 쓰러져있는 위병들을 밟으려고 했다.
“고마 됐다. 저 새끼들 저거 쓸 만하구마.”
지프차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운전병이 히죽거렸다. 소위는 딴 데를 보고 있었다. 신병들은 자기네들이 그래놓고도 어안이 벙벙했다. 시키는 대로는 했지만, 기분은 영 그랬다. 그런 테스트가 북파공작원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막 조직에 들어가는 상황에서 이것저것 판단하고 따질 수는 없는 것이었다.
“소대장님! 이건 너무한 거 아닙니까? 한 집 쓰면서?”
병장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 볼을 우물거리며 탄원했다.
“뭐라? 한 집 쓰면서? ‘쓰시면서’도 아니고? 싸가지없는 새끼. 야, 이 새끼야. 우리가 너네 하숙생이냐?”
“그래도 이등병들한테… 아, 진짜 쪽팔리게…”
병장이 울먹였다.
“그러니까 너네 땅이라고 건방들 떨지 말고 잘들 해. 이 새끼들아. 야, 그만하고 가자.”
소위는 냉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