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욱래 장편소설 《이탈-그 여름의 추억록》 제2부
지프차는 슬레이트처럼 굴곡진 회색 양철 외벽의 창고 같은 건물 앞에 섰다. 신병들이 내렸을 때, 소위나 운전병과 마찬가지로 흉장 없는 민무늬 군복에다, 공정대 출신이었다고 볼 수 없는 어설픈 근골의 병장들 일군이 무슨 희한한 구경거리라도 벌어진 것처럼 왁자지껄 몰려들었다.
“얘들이야? 이놈들 쓸 만하게 생겼는데? 이번 애들도 괜찮은 거 같어.”
합죽이처럼 생긴, 이마에 굵은 가로 주름들이 파여서 노인네의 얼굴을 한 병장이 신병들을 앞뒤로 둘러보며 품평했다.
“야들 ×나게 살발(벌)해요.”
그 짓을 시켰던 운전병은 남의 일처럼 그렇게 일러주고 창고처럼 보이는 행정반으로 들어갔다.
합죽이와 그 동료들의 인상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들은 강해 보이기는커녕 어딘지 경박스러웠다.
“느그들. 북한 담배 첨 보지? 저번 침투할 때 한 갑 사 온 거 내 특별히 푼다. 어여 한 대씩 빨아 봐.”
그중 키가 멀대 같은 병장이 능글대는 눈짓으로 담뱃갑을 하나 뜯어 내밀었다. 담뱃갑 중앙에 빨간 별이 큼직했고 그 밑에 ‘평양담배’라고 박혀 있었다. 소위와 운전병은 그러려니 치고, 그는 크게 자세 나오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적이 실망했다. 그래도 북한 담배는 신기했다. 어쩌면 북으로 침투시키기 위해서 오히려 후줄근해 보이는 인원들로 추렸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정찰 임무의 특성상 흉장은 불필요할 수도 있었다. 다른 병장들의 성화 속에서 신병들은 북한 담배를 맛볼 새도 없이 행정반 옆, 노란 장판을 붙인 나무 벤치 위에 시멘트 바벨이 걸려있는 작은 마당으로 떠밀려갔다. 날은 더 어두워졌고 백열 외등이 들어왔다.
소대가 서로 다른 그들이 누가 태권도 2단과 3짜리냐고 물었다. 김기진은 쿵후, 유기철은 유도로 왔기 때문에 오기식과 그가 관등성명을 댔다. 3소대는 태권도 3단짜리를 원했는데 실력을 보기 위해 신병 둘에게 겨루기를 주문했다.
둘은 서로 충분한 간격을 벌리고 재면서 원을 그렸다. 그들을 둘러싼 병장들이 원숭이 같은 소리를 질러 대었다. 둘이 서로 계속 돌고만 있자 병장 하나가 꽥 소리 질렀다.
“이 새끼들! 공격 안 해? 한 따까리 하고 할까?”
그때였다. 오기식이 움찔했다. 그는 갑자기 오기식의 눈에 적의에 찬 투지가 어리는 것을 보면서 일순 아연해졌다. 오기식이 오리처럼 튀어나온 둔중한 엉덩이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간격을 좁혀 왔다. 오기식이 휘두른 긴 다리가 윙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 쪽으로 오기식의 군홧발이 던져져 왔다. 전형적인 앞돌려차기였다. 머리를 젖혀 피한 그는 오기식의 쉼 없는 연결 발차기를 뒤로 빠지면서 무작정 막아냈다. 갑자기 그의 오른 팔뚝 한 군데가 확, 쓰렸다. 오기식의 군화 밑창에 벗겨진 피부에서 몽글몽글 피가 배고 있었다. 오기식의 옴팍한 뱀눈이 어쩐지 그는 처음부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그는 그때 서야 오기식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진짜로 자신을 쓰러뜨리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순간 야수적인 분노가 치솟았다. 오기식의 오른발 앞돌려차기가 컴컴한 하늘로 뻗쳐오르는 순간 그의 왼발 뒤 후리기가 허공을 가로로 갈랐다. 그는 떡, 하고 군화 뒤축에 무언가 붙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내려다보았을 땐 왼쪽 얼굴이 벌겋게 부푼 오기식이 앞으로 쓰러져 있었다.
이게 뭐 하자는 건가! 항공대 병장을 내지른 데다 가 동기까지 쓰러뜨린 그는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병장들의 주문과 욕설과 위협에 눌려 진짜로 동기를 쓰러트리려 했던 오기식의 의지에 대해서는 씁쓸했다. 그는 오기식의 오리 궁둥이와 그 엉덩이를 흔들던 스텝이 경멸스러웠다. 발차기란 그렇게 막 휘둘러댄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한 발 당 적어도 수만 번의 단련을 해야만 제대로 된 한 방을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원래 그게 무도(武道)였다. 오기식은 대충 해도 됐었다. 녀석은 군홧발에 제 의지를 실었었어…, 그는 오기식에게 남았던 약간의 안쓰러움을 접었다.
3소대는 그를 골랐다. 동기들은 1소대와 2소대로 갈렸다. 유기철은 1소대로, 2소대엔 김기진과 아직 멍해져 있는 오기식이 배치되었다.
행정반의 낡은 테이블에서 신병들이 ‘나의 20년 사(史)’라는 제목의 긴 작문을 마쳤을 때는 밤 11시였다. 그들이 내무반으로 계원을 따라 들어갔을 때, 어렴풋한 붉은색 취침 등 아래 민무늬 군모에 붙은 하얀 공수 윙들이, 옅은 회색으로 보이는, 각목과 합판으로 된 관물대 상단에 정렬된 방탄헬멧들 위에서 일렬로 빛나고 있었다. 긴 쪽 침상의 양 끝 총기대에는 K1A기관단총들, 총열 덮개와 개머리판이 나무로 된 AK자동보총 열 정가량과 RPG-7* 두 개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북한군 화기들이 정렬된 총기대 옆에 침낭 네 개가 펴졌다. 역시 밤도 쪘지만, 침낭을 끌어올린 그는 뒤척이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암담한 가슴을 두 손으로 누르면서.
*북한에서는 7호 발사관이라고 부르는 대전차 로켓포. 발사 후 후방 45° 각도로 30m까지 강력한 후폭풍을 분사하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사수가 죽을 수도 있다. 최소한 후방 5m 내에 아무도 없어야 하며 실내에서 사용할 경우 매우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