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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n 29. 2024

브런치 하시던데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본명을 사용하려는 의지

살짝 늦었다. 이러다 버스 놓칠라. 출장을 가기 위해 급히 사무실에서 나오던 중 옆 부서 선배를 마주쳤다.


“브런치 하시던데요?”


선배가 말했다.


네? 무슨 뜻이지. 브런치라니, 아점(아침 겸 점심)을 말씀하시는 건가? 그때까지 나는 그게 ‘브런치스토리’를 뜻하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브런치 하시던데요?”


선배가 웃으며 되물었다. 그제서야 선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아, 내가 올린 브런치 글을 보셨구나. 갑자기 뭔가 부끄러워진 나는 얼른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나는 구독자가 한 명도 없는 무명 작가이고, 내가 쓴 글은 조회수가 100개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내 글을 보신 걸까.


이후 버스를 타면서도, 출장지(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면서도 선배의 말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내 내면이 담긴 글들을 아는 사람이 보다니!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그리고 슬 걱정이 되었다. 이러다가 내가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을 직장 사람들 모두가 알게 되지는 않을지! 또 그 중 누군가는, 나를 ‘일은 안 하고 엉뚱한 거나 하는’ 직원으로 생각하지는 않을지!


그럼 선배는 어떻게 글쓴이가 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 이유는 별 거 없다. 내가 작가명을 내 본명인 ‘김정현’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내가 5급 공무원이라는 것, 철도 안전 분야에서 일한다는 것을 이미 밝혀놨다. 그러니 글쓴이가 나라는 것은 특정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렇게 아는 사람에게 내가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을 들키는 건, 사실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것이었다. 단지 예상보다 더 빨리 들켰을 뿐.


그래서 예전에 처음 브런치 작가명을 정할 때, 본명을 할지 필명을 할지 잠시 고민했던 적이 있다. 아는 사람에게 들키는 상황 때문이었다. 본명을 쓰게 되면, 내 아는 사람이 내 글을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괜히 신경 쓰일 수 있다. ‘일은 안 하고 엉뚱한 거나 하는 직원’으로 내 이미지가 박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본명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고,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선배에게 들킨 지금도 말이다.


왜냐고? 본명을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 석 자를 걸기 때문에, 글에 책임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또, 그만큼 나의 진정성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것이 쌓여 나에게 커리어가 되어줄 수도 있다. 물론 커리어가 쌓이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되어 준다. 그리고 나에게 있어 이러한 장점들은,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물론 막상 들키니 잠시 혼란스럽기도 하였지만, 나는 앞으로도 계속 본명을 사용할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욱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브런치를 하게 되는 걸 알게 될 때, 나는 그들에게도 브런치를 통한 나의 모습을 진솔하게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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