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스팩트럼 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중1, 2 때 내가 담당하던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했었다. 그 2년 동안 나는 책과 관련된 활동을 하곤 했었는데 이 학생도 당연히 우리 동아리였기 때문에 얘를 위한 활동도 준비하곤 했었다. 다른 학생들이 청소년 소설을 읽을 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이 독후활동을 할 땐 컬러링 페이퍼와 색연필을 준비해주기도 했다. 축제 때 동아리에서 하는 행사에도 최대한 소외되지 않게끔 역할을 주곤 했다.
그 당시 나는 이 학생이 최소한 소외된다는 느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학생이 ‘소외감’, ‘서운함’ 등을 얼마나 디테일하게 느끼는지도 잘 몰랐다. 또 하나는 이 학생이 우리 동아리 시간에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다른 학생들도 당연하게 여기고 잘 이해해 주길 바랐다. 나는 동아리 첫 시간에 쉬는 시간 동안 도서관에서 음악을 틀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음악 선곡권을 학생들에게 상품으로 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러나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학생은 생각보다 소음에 민감했고 음악 소리를 과한 자극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동아리 학생들에게 한 친구가 음악 소리를 불편하게 생각하니 쉬는 시간 음악은 없던 걸로 하자고 얘기했더니 다 이해해 주며 괜찮다고 했다. 덥고 추워서 에어컨이나 히터를 켜는 것도 장애 학생이 기준이었다. 그때 그런 것들을 받아들여준 학생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폐성 장애 딸을 가진 작가가 있다. 나는 그 작가의 강연에서 “자폐를 가진 학생이 주위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내가 최선을 다하는 건지, 학부모로서 특수학급 말고 학교에서는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질문한 적이 있다. 작가는 “그냥 반갑게 인사해 주면 됩니다. 그냥 하루하루 매일 반갑게 인사해 주는 걸로 저는 학교에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어요.”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맞춤형 교육이랄지, 개별화 교육이랄지 어떤 세부적인 요구사항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인사를 해주면 된다고 하니 어째 고개가 갸우뚱했지만 왠지 그 정도는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강연을 듣고 난 후 나는 더 열심히, 더 반갑게 인사를 했다. “OO아 안녕, OO이 어서 와, OO아 잘 가, OO이 주말 잘 보내.” 2년 동안 인사는 정말 진심을 다했다.
그 중학교에서 2년을 보내고 나는 인근 고등학교로 전보 발령을 받아 왔다. 1년 후 그 학생이 우리 고등학교로 진학을 해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교과서 배부가 있던 입학식 첫날, 교과서를 받으러 도서관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과한 액션은 내려두고 늘 그렇듯 “OO아 안녕, 오랜만이네.” 인사를 건넸다. “곽설영 선생님이죠?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하는데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나를 기억 못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름까지 외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오늘 1교시가 끝날 때쯤, 도서관 입구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해서 고개를 빼들어 봤더니 그 아이가 들어오고 있었다. “OO아 안녕, 무슨 일 있어?” 물었더니 조심스럽게 접시를 하나 내밀었다. 계란물을 묻혀 구워낸 와플팬케이크였다. “OO이가 만든 거야? 나 먹으라고? 아이고 너무 고마워.”하며 감동의 눈으로 받았다. “네.”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조금의 침묵이 흘렀다. 아마 그 아이는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잘, 잘, 잘.” 잘 먹겠습니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잘’만 반복하다가 또다시 멈추고 있었다. “‘맛있게 드세요.’하면 돼.”라고 좀 끼어들었더니 “맛있게 드세요.”대답하고는 쿨하게 퇴장했다.
그 아이가 다시 통합반으로 돌아간 후 특수선생님이 이내 도서관으로 왔다. 특수선생님 얘기로는 걔가 자진해서 곽설영 선생님한테 갖다 주겠다고 자원했다고 한다. “저 너무 고맙게 받았는데, 제가 고마워하는 마음을 잘 표현을 못한 것 같아요. 너무 고맙고 감동했는데. 너무 감사합니다.”
다시 우리가 같은 학교에 있는 동안 마주치면 나는 인사를 건네고, 안부를 묻을 것이다. 대답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대답이 없다고 해서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의 일방적 인사가 아니었음을 그 팬케이크를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는 2년 동안 나눈 우리의 인사가 들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