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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Oct 23. 2024

13.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에 가다

모차르트 미완성 초상화. (출처 :위키백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하지만, 이미 한 번 나온 작곡가기도 하고 별도로 여러분들께 사과를 드려야 할 테니 오늘은 모차르트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으니 지난주 월요일과 화요일에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과제가 몰아닥쳤다는 말로 설명을 끝내겠다. 가끔 나 자신의 재능을 과대평가하고 모차르트처럼 눈 깜짝할 사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하는데, 이미 수 차례 경험해서 제시간에 절대 과제를 끝낼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머리로 알고 있으면서도 그때그때 주어지는 과제를 미루지 말고 해야겠다는 결심을 제대로 지킨 적이 없다. 그런 시간관리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글을 기다리고 있었을 모든 독자분들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스럽다. 독자들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상기시키며 나는 모차르트가 못 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적어두겠다. 천만다행으로 이다음의 글들은 대부분이 내가 쓸 말을 대략 정해놓은 박물관들이므로, 이런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여러분 모두 안심해 주시기를. 펑크를 두 번 이상 낼 정도로 책임감 없는 작가는 아니다.


독일에서 내가 가장 잘 이용하고 다녔던 티켓은 49유로에 고속열차를 제외하고 모든 기차를 탈 수 있는 49유로 (학생은 할인받아서 25유로였던) 도이칠란트 티켓이었다. 이 도이칠란트 티켓은 독일 내의 도시들에서만 통용되지만, 스위스 바젤처럼 타국이더라도 독일 국경에 인접해 있는 경우 별도의 요금을 추가로 내지 않고도 고속열차를 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갈 수 있는 도시가 몇 곳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는 '소금 성'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현재는 소금보다 다른 것들로 훨씬 유명하다. 모차르트, 사운드 오브 뮤직, 그리고 카라얀. 그 때문인지 도시의 슬로건이 '음악의 도시'다. 솔직히 음악의 도시라고 한다면 빈이 가져갔어야 할 것 같은 슬로건이지만 아마 빈은 굳이 '음악의 도시' 같은 수식어 따위 없이도 충분히 유명한 도시라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클림트랑 프로이트도 있는 도시에서 굳이 음악으로 이미지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하면 잘츠부르크는 확실히 오직 음악으로만 유명한 도시가 맞긴 하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잘츠부르크는 예의상 다녀와야지'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번에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모차르트보다 더 중요했다. 모차르트에게는 미안하지만 잘츠부르크로 기차를 타고 가는 길에도 모차르트 곡은 거의 듣지 않고 사운드 오브 뮤직 플레이리스트만 열다섯 번쯤 반복재생했던 것 같다. 기차는 58분 연착됐고 (독일의 보상규정에 따르면, 1시간 이상 연착이 되어야 티켓값의 25%를 환불받을 수 있다. 기가 막히게 2분이 모자란 바람에 환불을 받지 못해 꽤나 아까웠다) 내가 사운드 오브 뮤직 하면 기대했던 맑은 하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로 가기 전날과 갔다 온 다음날 모두가 맑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니 하늘이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다른 도시에서 오지, 난 미라벨 정원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라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 처졌다.

내가 마주한 잘츠부르크.

독일 국경을 넘고 약 15분 만에 잘츠부르크에 도착했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원래 아우크스부르크 출신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차르트는 오스트리아문화권보다는 남독일 문화권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독일 역사와는 다르게-이건 내 독일에 대한 편견인지 모르겠지만-내리자마자 느껴지는 역사의 깨끗함과 널찍함이 '오스트리아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오스트리아를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마 지금 찾아보면 독일보다 오스트리아가 더 살기 좋은 나라라고 평가받고 있을 것이다. 모차르트, 이 축복받은 놈아.


역에서 중심지까지는 버스를 타고 가기도 애매하고 걸어가기도 애매한 25분 정도 거리였다.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오스트리아에서는 도이칠란트 티켓으로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허락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모차르트의 집에 가기 전 미라벨 정원에서 시간을 좀 보내고, 그 유명한 도레미송의 계단 뛰어올라가기도 해 보고, 사운드트랙을 한 번 더 반복재생한 뒤에야 느릿느릿 모차르트의 집으로 향했다.


모차르트의 집은 미리벨 정원과 반대편에 있다. 사랑의 자물쇠들이 또 다리 무게를 짓누르며 달려 있는 다리를 지나가면 구시자기가 시작된다. (참고로 이 강을 건널 때 구시가지와 잘츠부르크 성이 동시에 들어오는 구조가 정말 예쁘다. 내 휴대폰에 있던 사진은 전부 날아가 버려서 보여줄 수가 없음이 아쉽다.) 가로지르기 불편하게 되어 있는 도로를 가로질러 살짝 경하진 면을 올라가면 18세기, 17세기에 건축되었을 법한 건물들이 프라하와 빈처럼 늘어서 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사람들이 소소하게 무리 지어 있는 노란 외벽의 건물이 나오는데, '모차르트 생가' (Mozarts Geburthaus)라 적혀 있으면 제대로 온 것이다.

모차르트 생가는 이렇게 생겼다. (출처: 위키피디아)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다 안쪽에 들어와 있었다. 훅 더워졌다. 1층과 2층 사이 작은 층에서 티켓을 팔고 있다.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 박물관이 두 곳 있는데, 나는 어차피 두 곳을 다 갈 것이었기 때문에 콤비 티켓을 사고 오디오가이드를 다운로드한 뒤 2층으로 올라가 관람을 시작했다. 와이파이가 통 터지지를 않아서 음성가이드를 다운로드하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비가 와서 유독 그랬던 건지 모차르트 집에서 와이파이가 (네 칸이 뜨는데도) 잘 안 터지던 것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귀여운 플레이모빌 모차르트와 인사를 나누고 나면 정말로 모차르트가 살던 집이다. 모차르트 생가는 3층으로 올라가기 직전 있는 모차르트 집안의 부엌으로 시작된다. 아무리 봐도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봤던 부엌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옛 유럽인들 집이면 뭔가 이것보다는 좀, 더 이국적일 줄 알았다. 구석구석 샅샅이 훑어본 뒤 올라가면 모차르트 집의 가계도가 그려져 있다. 볼 것이 많지는 않기 때문에 바로 안쪽으로 들어갔다.

거대 모차르트 플레이모빌. (출처: Angie Kunze)

관람은 모차르트가 태어난 방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모차르트 가족 설명이 이어진다. 이 방에는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 초상화가 있는데, 모차르트를 좋아하는 지인 분께서 모차르트 초상화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초상화라고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났다. 열 살도 안된 아기라 그런지 몸이 엄청나게 짧았다. 정면을 바라보면서 짓고 있는 미소가 꽤나 인상적인 초상화였다. 후대 작곡가들을 보면 웃고 있는 초상화나 사진이 잘 없는데 이 어린 시절의 모차르트에게서는 묘한 자신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는 모차르트가 태어나 약 7살 때까지 지냈던 집이다. 얼핏 보기에 '7살이면 기억도 못 하겠는데?' 싶겠지만 우리는 모차르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모차르트가 7살이면 이미 전 세계적으로 신동 인정을 받고도 남았을 시점이다. 그러니까... 흔히들 미디어에서 모차르트를 '유년시절에서 정신적 성장이 멈춰버린 천재'라고 묘사할 때 모차르트의 기억은 이 집에 머물러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다음 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장품 전시실이다. 베토벤에 비해 모차르트의 인생을 잘 모르는 내게 모차르트도 똑같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가장 잘 느끼게 해 주는 것은 모차르트가 가지고 있던 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품들이다. 조명이 다 꺼진 어두컴컴한 방에는 모차르트가 실제로 살아 있었던 흔적들이 남아 있다. 개중 내 시선을 가장 잡아끌었던 것은 자개로 만들어진 모차르트의 옷 단추였다. 모차르트의 편지 가운데 유명한 축에 속하는 편지가 하나 있는데, 바로 남작부인에게 은근히 비싼 명품 옷 사달라고 졸라대는 편지다. 대충 번역해 보자면,


"(...) 아름다운 붉은색 외투가 제 가슴을 너무나 자비 없이 간질이고 있어, 그 외투를 어디서 구할 수 있고 가격은 얼마 정도인지 알려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그 아름다움을 보느라 정신이 팔려 가격이 얼마인지 알아보는 것을 잊었거든요. 만일 그 외투를 가지게 된다면 외투에 걸맞은 단추가 당연 필요할 텐데, 마침 오래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던 단추가 있습니다. 밀라노 정반대 편 Kohlmarkt의 Brandau 단추공장에서 한 번 봤던 것들인데, 자개로 만들어져 가장자리의 흰 돌 몇 개 가운데에 아름다운 금빛 돌이 박혀 있답니다. 전 좋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은 가지고 싶어 하거든요! 어째서 그런 것들을 살 돈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에 전 재산을 쓸 준비가 되어 있는데, 살 돈이 있는 사람들은 사지 않는 걸까요?"

문제의 자개 단추. 역광이라서 사진이 예쁘지 않지만 실물은 무척 반짝거린다.

...이니, 겉으로만 보자면 자기가 그 아름다운 외투를 사겠다는 내용이지만 실제로는 남작부인에게 그런 옷 좀 구해다 달라고 졸라대는, 부끄럼도 없는 내용이다. 이 가운데 모차르트의 '좋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모든 것들' 부분은 꽤나 여기저기서 쓰이는 말인데 이 말이 진실이라면 모차르트는 꽤나 탐미주의자였음이 명백해 보인다. 산더미처럼 쌓인 자개단추를 보자 문득 베네치아에서 내 로망이었던 딥펜, 잉크와 공책을 산다고 무려 15만 원을 아무 생각 없이 써버렸던 기억이 나며 모차르트의 결점이 확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모차르트는 보통 일반인은 범접할 수 없는 천재, 신동의 이미지가 강한 바람에 나도 개인적으로 친밀감이 없는 작곡가였는데, 확실히 그 사람이 사용하던 소지품을 보면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다. 이외에도 지갑, 반지, 담뱃갑 등의 개인소장품들이 남아 있는데 내가 사진을 잃어버렸음이 한스럽다. 나처럼 작곡가를 인간으로서 가깝게 느끼는 데에는 흥미가 없는 사람이더라도 모차르트의 바이올린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에 충분히 흥미가 있을 만한 소장품 전시공간이었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정말 멋진 소장품이었어, 하고 다음 방으로 갔더니 더 귀중한 소장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초상화였다.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모차르트가 남편을 가장 닮았다고 평했던 그 초상화! 글 시작 부분에 삽입한 초상화가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초상화이다. 박물관에 갈 때 미리 소장품을 다 확인하고 가는 편이 아니었기에 이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는 사실은 내게 기분 좋은 놀라움이었다. 미안하지만 그 초상화를 보는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는 빈 모차르트 하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박물관으로 각인되었다. 그 초상화는 우리가 평상시 많이 보는 초상화들과는 다르게 감상자가 아닌 캔버스 바깥을 바라보고 있다. 난 그런 초상화들을 참 좋아한다. 앞에 하프시코드와 악보를 놓고 있는 자세로 그려지게 됐을 초상화에는 깊은 생각이 묻어난다. 어두운 초상화의 분우기와 완성되지 못한 캔버스의 여백이 담담하고 일상감을 불어넣는다. 거듭 이야기하게 되지만, 난 이처럼 작곡가들의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모습이 담긴 소장품들이 좋다.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생가에서는 확실히 모차르트의 생애 극초반에 집중하고 있다. 모차르트가 아주 어린 시절에만 살던 집이니까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35년이라는 짧은 시간 이 세상에 머물렀던 사람이었기에 기실 모차르트의 인생에 대한 설명은 그리 길지 않다. 방 두세 개를 보고 났더니 금세 모차르트가 죽어버렸다. 모차르트가 죽은 뒤의 이야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시작된 기분이었다. 모차르트가 신격화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모차르트가 죽고 30년도 지나지 않아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모차르트는 금세 비운의, 요절한, 신동, 천재 등등 각종 좋은 수식어와 수식어는 다 붙어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지고 한 존재로 격상되었다. 이 방에서는 모차르트, 그리고 모차르트 그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 그의 아내 콘스탄체, 그의 아들 프란츠. 평생 모차르트의 꼬리표를 뗄 수 없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누군가는 그 꼬리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누군가에게 그 꼬리표는 압박이었다. 박물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으나 자연히 모차르트의 꼬리표가 가장 질기게 따라다녔을 살리에리 생각이 났다. 

모차르트의 머리카락.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 아래서 ㅁ자형 건물을 돌아 2층으로 내려가면 인간 모차르트의 이야기는 이미 끝나 있다. 2층은 오페라 작곡가 모차르트의 야이가였다. 초연 때부터 현대까지 이어지는 세트장들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고, 각각의 세트나 각각의 곡들에 얽혔던 이야기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두 시간은 거뜬히 머무를 수도 있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캐릭터 디자인, (비록 초연 의상은 아니지만) 의상까지 전시되어 있다.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 말고는 본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없었기에 정직하게 말하자면 심심했다. 모차르트에게 중요한 장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애초 오페라에 흥미가 없어서 아무리 열심히 보려고 해도 무리였다.


다행히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 줄 1층이 아직 남아 있었다. 모차르트가 아주 어린 시절 살던 집이니만큼 모차르트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매일 마차를 타고 여행 다니던 시절을 전시하고 있다. 3층의 전시가 좀 더 정석적인 박물관 전시 형태였더라면, 1층 전시는 위에 비해 훨씬 편안한 공간이 되어 있다. 유선형 의자와 밝고 채도 높은 벽지들, 체험형 전시와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오히려 좋았다.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전시공간이라고 해도 좋겠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가 여행을 하며 가지고 다녔던 손그림 트럼프 카드를 볼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모차르트 가족들이 여행을 다니던 때 가지고 다녔던 약재를 다른 여행용품 옆에 전시해 둔 것도 좋았다. 여행용 약병이나 연고 같은 물건들을 통해서 어린 모차르트가 다니던 여행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이었는지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하루에 열몇 시간, 어쩌면 그 이상을 마차에서 보냈을 모차르트. 모차르트 생가에서 그가 살았던 시간이 마차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짧을지도 모르겠다. 전시실 한구석에는 당시 모차르트 가족의 방을 재구성해 놓은 공간이 있었지만 모차르트에게 익숙했던 것은 그 방이 아니라 마차였을 것이라 생각하니, (모차르트에게 별 감정이 없는 내게는 드문 일인데) 마음이 약간 욱신거렸다. 

박물관 내 모차르트 가족의 주거환경을 재구현해놓은 방이다. 동시대 가구들을 사용했고 관람객이 들어갈 수는 없다. (출처:Expedia)

가벼운 색감, 가벼운 주제, 그러나 그 속에 들어 있는 무거운 함의를 느끼고 다시 나오면 박물관 MD샵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티셔츠, 우산부터 시작해 모차르트 굿즈만으로 살림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은 MD샵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모차르트쿠겔른과 사운드 오브 뮤직 굿즈도 팔고 있지만, 내 관심사는 오직 오르골을 사는 것 하나뿐이었다. 베토벤 박물관에서 봤던 것과 같은 종류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2종, 터키행진곡과 '마술피리' 2종의 오르골이 판매되고 있다. 딱 기대했던 만큼 좋은 박물관이었다.


모차르트 박물관을 벌써 다 둘러봤다 생각하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나와도 또 모차르트 천지다. 모차르트가 자기 얼굴을 팔아서 만든 모차르트쿠겔른을 손에 들고 홍보하듯 서 있는 1:1 크기 입간판부터 '아, 여긴 모차르트의 도시구나'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홀린 듯이 박물관 바로 맞은편, 입간판으로 내 시선을 강탈한 가게로 들어갔더니 세상에, 박물관보다 더 심각하게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 술병도 너무 많이 판매되고 있어서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었다. 사방에서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듯한 모차르트 초상화의 시선을 피해서 바로 가게를 나오려던 찰나 눈에 오르골이 들어왔다. 아니, 오르골들이 들어왔다.


클래식 작곡가가 좀 있다 하는 도시를 가면 언제나 보게 되는 양산형 오르골들이 있다. 앞서 요한 슈트라우스 박물관에서 한 번 등장했던 오르골인데, 사각형 종이껍데기에 작곡가들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종이껍데기를 누르면 안쪽에 들어 있는 값싼 오르골이 언제라도 박살 날 수 있을 것처럼 연약하게 감싸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는 오르골은 아니지만 한 가지는 인정해 줘야 했다. 정말 다양한 곡을 판다. 바흐, 슈베르트, 베토벤, 하이든, 슈만, 슈트라우스 2세, 쇼팽까지야 그렇다 치더라도... 차이콥스키, 라벨, 라흐마니노프, 비제, 거기다가 무려 스메타나를 팔고 있었다. 아주 잠깐 프라하에서 그 개고생을 하며 오르골을 찾아 돌아다녔던 내 시간을 생각하자 허탈감이 밀려왔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스메타나 오르골을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한쪽 벽을 채우고 있는 오르골들을 보고 느꼈다. 잘츠부르크가 비록 음악의 중심지는 아니었고, 작곡가를 사랑하는지 팔아먹는지 분간이 잘 가지 않는 곳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모차르트 덕분에 이 도시 사람들의 삶에는 음악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은 잘 느껴졌다. 그랬기에 나는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라 적힌 마그넷을 집어 들었다.


명칭: Mozarts Geburtshaus (모차르트 생가)
운영시간: 매 9:00~17:30 (30분 전 입장마감)
입장료: 성인 15유로, 할인가 12유로
사이트 링크: Mozart birthouse | Museum in Salzburg | open to visit | International Mozarteum Foundation | Mozarts birth place

1. 도시 접근성: ★★

잘츠부르크는 독일에서도, 오스트리아에서도 접근성이 좋은 대도시다. 나름 지도에서도 꽤 크게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환승역으로도 자주 이용되는 곳이라서 접근성이 훌륭하다. 역사도 깨끗하고 넓다!


2. 도시 내 접근성: ★

도보로는 30분이 걸린다. 그러나. 잘츠부르크에 와 놓고서는 모차르트 박물관에 안 갈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접근성을 그냥 4점 주도록 하겠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가서 내리면 도보 5~10분 정도로 줄어든다.


3. 소장품: 

위에서 적었듯 모차르트의 자개단추와 담뱃갑, 지갑, 어린 시절 초상화와 미완성 초상화, 어린 시절 쓰던 바이올린과 나중에 사용한 하프시코드, 머리카락 등이 전시되어 있다. 모차르트가 고전 시대 작곡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굉장히 많이 전시되고 있는 편이다. 몇 전시품들의 경우 '모차르트 생가에 전시되어 있다'라는 정보를 듣고 가도 '잘츠부르크 댄싱 마스터 하우스에 전시되고 있다'는 실망스러운 안내문을 마주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4. 언어 지원: ★★★

한국어가 지원되고 있다. 그러나 박물관 안에서만 어플을 재생할 수 있다는 점이 치명적인 단점이다. 이번 리뷰를 쓰면서도 모차르트 박물관 소장품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기 위해 어플을 깔아보려고 했는데, 박물관 와이파이가 아니면 아예 이용할 수가 없다 보니 연결 상태가 불안정한 날에는 애로사항이 무척 많이 생긴다.


5. 가성비: ★★★☆

베토벤하우스는 비싸다고 느꼈는데 모차르트 하우스는 왜 안 비싸다고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아, 생각해 보니까 알 것 같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었던 가격인 빈 베토벤 박물관들과는 다르게 빈 모차르트 아파트먼트 가성비가 정말 죽여주게 나빴기 때문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면 베토벤하우스 가성비가 조금 더 좋은 것 같으니 3.5점을 주겠다. 


6. 규모: ★★★☆

바흐박물관과 비슷한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총 3층의 박물관으로, 층별로 약 3개 정도 방이 전시실로 사용된다.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라서 박물관이 비좁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3층, 모차르트 소장품 전시실과 모차르트 사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공간에는 종종 사람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더 좁게 느껴질 것이다. 


7. 상호작용: ★

2층 오페라 섹션에서는 군데군데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또 1층에는 '모차르트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모차르트의 곡에 사용된 악기를 악기별로 음량을 조절해 가며 악기별 음향과 합쳐졌을 때의 효과를 체험할 수 있게 되어 있는 섹션이 있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이렇게 다섯 칸이 있는데, 가운데 칸에 올라가면 모든 악기가 동시에 동일한 음량으로 연주되고, 남쪽에 서면 타악기만 연주되고, 동쪽에 서면 목관악기만 연주되는 식이다. 내게는 별로 재미없었지만 누군가는 재미있게 체험하겠지 하는 심정으로 기록을 남겨놓는다. 또 3층에서 2층으로 넘어갈 때 모차르트 악보 자료 분석과 함께 곡을 들을 수 있는 미디어스테이션이 있긴 하지 이 공간은 좁은 복도 한구석에 마련되어 있는 데다가 늘 사람들이 붐비기 때문에 그 미디어스테이션 체험할 시간에 유튜브로 모차르트 한 곡 더 듣는 것을 추천드린다.


8. 굿즈: ★★

모차르트 박물관인데 굿즈가 아쉬우면 그게 더 이상하다. 비록 세련된 미감을 보여준다고는 죽어도 말 못 하겠는 굿즈들이었지만 일단 있는 게 어딘가.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굿즈는 오르골을 제외하면 모차르트 곰돌이였다. 난 이미 빈에서 그 곰돌이를 구입했지만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곰돌이는 무려 파란색 쥐스토코르를 입고 있는 버전이 있어서 하나를 더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깜찍했다.

하지만 결코 굿즈가 세련됐을 거라는 기대는 갖지 말라고 다시 한번 못 박아 두겠다. 박물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시내 어느 상점에 가도 똑같은 미감이니 '예쁜 굿즈를 사야지'라는 목적이 아닌 '굿즈를 사야지'라는 목적으로 방문하기를 강력히 권고한다. 


9. 큐레이팅: ★★★☆

각 층이 모차르트의 인생, 모차르트의 오페라, 연주여행을 다니던 모차르트의 어린 시절이라는 테마로 확실하게 구분이 되어 있다. 개인적으로 작곡가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2층도 모차르트 인생 이야기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누군가는 나와 다른 기준으로 박물관을 관람할 테니까 아쉽긴 해도 개선해야 하는 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 참고로 모차르트가 살던 시대의 빈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에서는 천장에 당시 빈의 지도가 요철을 다 세세하게 고증해 붙어 있으므로 가끔은 천장도 올려다봐주기를 바란다.


10. 총평: ★★★★

잘츠부르크의 꽃, 빈에서 풀지 못한 한을 풀어줄 곳

최대 장점: 전체적으로 모든 것이 우수하기 때문에 하나를 꼽기 힘들다.

최대 단점: 조금 비싼 가격

추천 여부: O 


14화 예고: 설마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사랑이 박물관 한 곳으로 끝날 것이라 생각했는가? 잘츠부르크에는 모차르트 박물관이 두 곳 있다. 모차르트의 유년기를 봤으니 이제 소년기로 넘어가자. 돈을 좀 번 레오폴트가 옮긴 집, 댄싱 마스터 하우스로 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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