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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굴꾼 Oct 08. 2024

12. 본 베토벤 하우스에 가다

아직 '악성' 이라 부르기에는 조금 젊은 베토벤. (출처: 위키피디아)

루트비히 판 베토벤. 이제 더 할 이야기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베토벤에 관한 짧은 소개는 건너뛰고 바로 베토벤이 태어난 도시, 본에 대한 소개를 해 보자. 베토벤 전기를 읽다 보면 '독일 촌동네에서 올라온' '촌스러운 억양' 같은 말들이 보이는데, 본이 그렇게 촌동네인가? 지금은 인구 30만명 정도의 어엿한 중소도시 정도는 되지만 베토벤이 살던 당시 본의 인구가 12,000명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를 보면 촌이라는 말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본의 위치는 독일 서부. 후일 베토벤이 주 활동 무대로 삼는 빈과는 약 800km 거리가 있다. 같은 독일어권이라고 해도 빈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본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큰 차이가 있었으리라. 그러나 그것은 1770년대의 본 이야기고, 우리는 2020년대의 본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쾰른 근교의 작은 도시 본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벚꽃, 그리고 베토벤. 1980년대 대규모로 조성된 벚꽃거리는 4월 중순이 되면 본을 북적이게 하는 중요한 관광지다. 한국 여의도나 석촌호수와는 또 달리, 본의 벚꽃은 우리가 흔히 왕벚꽃 또는 겹벚꽃이라 부르는 한 송이송이가 크고 풍성한 짙은 분홍빛이다. 매년 개화시기가 되면 분홍빛 또는 자줏빛으로 하늘조차 뒤덮는 본의 벚꽃축제는 내가 교환학생을 가며 카니발, 네덜란드 튤립축제만큼이나 기대한 축제였다. 따라서 본 베토벤 박물관을 가는 시기도 4월 중순으로 이미 결정된 셈이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의 영향인지 뭔지, 3월 말부터 벚꽃이 피는 날씨가 되어 SNS에 벚꽃 가득한 본 사진이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쾰른에 있던 지인에게 '벚꽃 폈냐'라고 묻자 '지금 절정인가 본데요? 아주 만개했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절망스러웠다. 이미 이탈리아 비행기랑 체코, 오스트리아 기차를 다 예매해 버려서 본을 가는 일정을 휴일 중에 끼워 넣을 수도 없었다.

이상적인 본 벚꽃거리의 모습은 대략 이렇다. (출처: Kirschebluete-bonn.com)

결국 이탈리아를 다녀온 지 2주일이 되는 날에서야 공강 시간 짬을 내 본에 다녀올 수 있었다. 이미 벚꽃은 거의 다 졌을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한 송이라도 남아 있으면 된다는 절박한 마음가짐이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있던 만하임에서 본까지는 고속열차로 1시간 30분이면 충분했지만, 내가 끊어놓은 정기권으로는 고속열차를 탈 수 없었기에 나는 무려 3번의 환승을 거쳐 4시간 동안 지역열차를 타 본에 도착했다.


본 벚꽃 거리는 내 희망사항과는 달리 막 녹음으로 변하기 직전이었다. 아직 벚꽃이 다 지지는 않았지만 온전히 나무에 매달려 있는 송이를 찾기가 힘들다, 딱 그 정도였다. 흔히 정석 사진 구도로 꼽히는, 거리 샷을 찍어도 예쁘지가 않았다. 이파리와 벚꽃 비율이 1: 3이었더라면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겠지만 3:1인 화면에는 썩 매력이 없었다. 일주일만 일찍 올걸, 하고 뼈저리게 후회하며 기념품 사냥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벚꽃은 놓쳤지만 다른 거라도 놓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슈만 부부의 무덤에 들렀다가 베토벤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주일만 더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이날로부터 일주일 전 나는 프라하 아니면 빈에 있었을 것이다.
슈만 부부의 무덤이다.

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거리, 벚꽃거리에서는 15분 정도 거리인 지점에 중앙광장이 있다. 본 중앙광장을 장식하고 있는 인물은 역시나 베토벤이다. 독일도 한국의 I.Seoul.You 이런 것처럼 도시마다 슬로건이 있는데 예를 들어 튀빙겐은 "Universitatstadt Tubingen" 즉 "대학도시 튀빙겐"이다. 본의 슬로건은 당연히 "Beethovenstadt"이다. 시 로고가 베토벤 얼굴인 건지 기차역부터 베토벤 얼굴이 붙어 있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부터 베토벤 얼굴을 보게 되니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본 중앙광장의 베토벤 기념비는 1845년 베토벤 축제와 함께 세워진 기념비다. 1830년대 이전까지 독일에서는 왕족이 아닌 위인들의 기념비를 세운다는 발상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독일 문학계의 기념비적 시인 실러조차도 1839년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베토벤이 1827년 죽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죽고 18년 만에 기념비가 세워진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베토벤 축제는 사실 예산부족으로 고꾸라질 위기에 놓여 있었지만, 베토벤 축제가 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은 프란츠 리스트 (1811~1887, 헝가리 태생의 작곡가이자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는 당장 달려가 모금을 시작했다.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지며 쇼팽은 리스트와 함께 무대에 서서 모금을 하고, 멘델스존은 '엄격변주곡'을 쓰는 등 다양한 작곡가들이 동참해 우여곡절 끝 행사가 열릴 수 있었다. 어딘가 어정쩡하고 행정적으로도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많았던 행사였다. 당시 신문사에서 평론위원으로 일하고 있던 베를리오즈 (1803~1869, 프랑스의 작곡가이자 지휘자) 또한 축제에 참석했는데 참석자에 비해 미비했던 숙박시설로 인해 잘 곳을 구할 수 없었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난간을 넘고 주먹질을 해야 했으며 사방에서 도둑질이 만연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심지어 베토벤 동상도 공개하는 날 반대편을 보고 있어서 무척 민망한 상황이 연출됐다고 한다. 게다가 낭만주의 시대에서 보수파를 대표하는 멘델스존과 쇼팽, 슈만이 모두 참석하지 않으며 (셋이서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다 각자 다른 이유로 불참했다) 베토벤 축제는 마치 진보파의 축제처럼 비치기까지 했다. 뭐, 그런 우여곡절이 있긴 했어도 결과적으로는 본의 상징이 됐으니 잘 된 일인가. 작은 규모에 비해 얽힌 이야기는 많은 곳이다.

리스트가 세운 베토벤 기념비.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다.

벚꽃도 봤고 베토벤 동상도 봤으니 본 여행의 하이라이트, 베토벤하우스로 갈 시간이었다. 본 베토벤하우스는 3개 층과 몇 개의 부속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A4용지만 한 티켓을 들고 들어가자 직원분이 제일 먼저 독일어로 설명을 듣고 싶은지 영어로 설명을 듣고 싶은지 물으셨다. 티켓 체크를 한 뒤 베토벤하우스 내부에 들어가면 1층 왼쪽 방으로 자연스레 발걸음이 향한다. 사전조사를 그리 많이 하지 않고 왔었기에, 방에 들어가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그 유명한 베토벤의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파스콸레티 하우스에서 봤던 베토벤의 흉상, 젊은 베토벤, 늙은 베토벤, 스케치, 유화, 조각... 베토벤만큼 이미지가 자주 재생산된 작곡가는 없을 것이다. 방에 들어서는 순간 앞, 옆, 뒤로 베토벤의 눈 몇십 쌍을 마주하는 기분이란! 어떤 것은 모조품이었던 것 같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영화나 드라마에서 아이돌이나 배우를 좋아하는 캐릭터는 꼭 벽에 브로마이드나 포스터를 잔뜩 붙여 두곤 하지 않는가. 마치 그런, 누군가의 보물창고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0층은 베토벤 본인과 베토벤의 음악 자체와는 크게 연관이 깊지 않다. 이전 하일리겐슈타트 박물관에서 1관 'Arriving'처럼 본 베토벤 박물관도 베토벤이 살던 때의 본에 대해서 자세히 다루고 있었다. 베토벤의 출생기록이 적혀 있는 책 모조품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베토벤이 궁정에서 일하던 시절 연주하던 비올라가 전시되어 있지만, 딱히 구미가 당기는 것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이동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1층으로 올라가면 베토벤과 관계 맺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세 개의 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베토벤의 본 친구들, 빈 친구들, 후원자들, 사랑하는 이들까지 열두 개 관 가운데 네 개의 관이 베토벤의 인간관계에 할애되고 있다. 오디오가이드는 각각의 인물들이 베토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략적으로 알려준다. 오디오가이드를 다 듣긴 했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나는 작곡가 개인의 삶에만 관심이 있고 작곡가의 주변인들에게는 놀라울 정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재미없는 공간이었다. 다만 후원자 전시실에는 베토벤이 선물 받은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제2 바이올린의 목 뒤쪽에는 베토벤의 인장 'LVB'가 찍혀 있으니 놓치지 말도록 하자. 참고로 베토벤의 LVB 인장은 3층 베토벤의 일상생활 코너에서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다.

어린 베토벤의 비올라.

내게 가장 구미가 당기는 공간은 3층, 베토벤의 일과 일상생활에 대해서 다뤄주는 공간이었다. 하일리겐슈타트에서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았기에 좋아한다'라고 적었던 내용을 여러분께서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이 박물관 3층에는 베토벤이 썼던 다양한 귀나팔을 전시하고 있는데 만일 내가 아직도 베토벤을 제일 좋아했더라면 아마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그런 추태는 피할 수 있었다. 또 베토벤이 쓰던 대화노트의 일부분을 미디어 스테이션에서 채팅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꽤나 귀여운 전시방식이었다. 그 대화노트의 대화 내용은 베토벤의 청력 상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서, 오히려 베토벤이 귀가 먹은 뒤에도 일상은 일상이고 삶은 삶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베토벤의 장애는 분명 그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순전히 장애만으로 베토벤의 삶을 규정하기에는, 그는 장애라는 한 가지 요소로는 규정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베토벤의 귀나팔! 내가 마침내 이것을 보게 되다니! 

반대로 하일리겐슈타트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내가 베토벤을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베토벤의 인간미에 있다. 인간미라고 포장해 주기에는 결점이 좀... 많긴 하지만. '베토벤의 일상생활' 관에는 베토벤의 펜, 안경, 탁상종 등을 전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내게는 일명 '노다지'였다. 한 가지 한 가지 물품이 굉장히 많은 상징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진품인지 아닌지 가물가물해서 사진을 안 찍은 게 많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 아깝다. 산책을 좋아하는 베토벤을 보여주는 베토벤의 지팡이, 작곡가 베토벤을 보여주는 안경과 깃펜... 전시는 하지 않지만 베토벤의 현금상자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거기다가 베토벤이 작업하던 책상까지 있으니 감격스럽기 그지없었다. 하나하나가 의미가 큰 물품들이었다. 파스콸레티하우스에도 이런저런 자잘한 가구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알짜는 전부 본에 있는 느낌이었다. 분명 각각의 물건에 얽힌 이야기가 끝도 없을 텐데 소장품의 질에 비해 오디오가이드는 소장품 가운데 두세 개에 밖에 지원되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이었다. 혹시나 내가 한국어로 듣고 있어서 그런가 싶어 언어도 바꿔 봤는데 딱히 언어를 바꾼다고 더 많은 품목에 오디오가 지원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미디어스테이션에서는 의심병 환자 베토벤을 보여준다. 베토벤은 꽤 유명한 수전노였는데, 젊을 적에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나이가 들어 조카 키울 돈이 필요했는지 점점 더 수전노가 되어갔다. 거기다가 원래 좀 인간불신이 심해서 그런지 베토벤의 가계부와 영수증은 아주 가관이다. 베토벤이 의심병 환자인 줄은 알았지만, 가정부가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그 영수증에 맞춰서 돈을 지급해 주는 시스템이었고 품목도 하나하나 다 확인했다는 건 정말 좀 무섭고 내가 가정부였더라면 무척 불쾌할 일이었을 것 같다. 하기사 '집주인이 너무 친절해서 싫다' 며 이사한 적도 있는 사람이 인간의 호의나 정직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 같다. 베토벤은 요리를 할 때도 '정직한 마음을 가져야만 좋은 요리사가 될 수 있다' 같은 말을 했다고 하는데, 정직을 중요시하는 건 좋지만... 되려 베토벤처럼 만인을 불신하는 사람들만 세상에 가득하다면 진정한 정직의 가치는 퇴색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칸트를 그렇게 좋아했다면서 왜 칸트의 보편법칙을 본인의 행동에 적용시켜보지 못한 것일까. 사람이라는 게 원래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베토벤의 펜. 나는 작곡가들의 펜을 유독 좋아한다.

이렇게 0층, 1층, 2층을 모두 둘러보고 나면 상설전시는 끝난다. 특별전시까지는 볼 시간이 없어 보지 못했지만, 1년에 4개월씩 새로운 특별전시를 하고 있으니 여러분들은 시간을 넉넉하게 잡아 방문하기를 바란다. 3개 층이 있는 본 베토벤 박물관은 여기까지만 놓고 봤을 때는 괜찮은 박물관이라는 생각은 해도, 대도시에 있지 않으니 동선이 꼬이기 딱 좋아 추천은 고사하게 되는 박물관이었을 테다. 하지만 난 베토벤을 좋아한다면 빈보다는 본을 방문하기를 권하고 싶은데, 그 이유는 베토벤하우스의 전시 때문이 아닌 반대편 건물의 전시 때문이다. 트립어드바이저 홈페이지에서는 베토벤 박물관 평점을 5점 만점에 4점으로 주고 있는데 나는 그건 사람들이 베토벤하우스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탓이라고 본다. 베토벤하우스는 유명한 분홍색 건물만 봤다면 반만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건물의 맞은편, 베토벤이 실제로 탄생한 곳으로 향해야 한다. 정원에는 로댕의 영향을 받은 베토벤 흉상과 제체시온 분리파 전시회에서 전시되었던 베토벤 조각이 작은 버전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뒤편에는 시대악기 연주실이 있고, 지하에는 수장고가 있다.


정원 뒤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건물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빨간 의자들과 그 사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피아노 한 대가 보인다. 1818년 제조된 브로드우드 피아노다. 1818년 영국의 피아노 제조사 브로드우드는 베토벤에게 피아노를 한 대 선물해 줬었다. 베토벤은 이 피아노를 무척 귀하게 여겼던 듯한데, 앞서 하일리겐슈타트와 파스콸레티 하우스 이야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베토벤이 작곡가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도 유명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베토벤의 연주 스타일은 섬세함 따위 갖다 버린 격렬한 연주였고, 안톤 라이하와 Seyfried는 (물론 어느 정도 과장이 섞여 있었겠지만) 공통적으로 베토벤이 피아노 줄을 끊어먹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피아노를 한 연주회에 두 대 세 대씩 부숴먹기로 유명했던 전설적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가 베토벤의 제자인 카를 체르니에게서 배웠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베토벤이 실제로 피아노 줄을 몇십 개씩 끊어먹었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피아노는 아직 한창 개량되고 있던 악기였고,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아노는 약했다. '리스트랑 베토벤이 너무 격렬하게 친 거 아니야?' 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클라라 슈만조차도 피아노 줄을 끊어먹은 적이 있다는 것을 보면 당대의 피아노는 정말 약하긴 약했던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와중 브로드우드가 베토벤에게 선물한 피아노는 1818년 피아노 치고는 꽤나 견고한 피아노였던 모양이다. 현재까지 잘 살아남아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1818년이면 사실상 베토벤은 이미 거의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시점이었지만 베토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에라르 피아노보다 브로드우드를 좋아했다고 한다. 이후 베토벤이 죽자 이 브로드우드피아노는 프란츠 리스트에게 넘겨졌고 리스트는 아쉽게도 이 피아노를 헝가리 국립박물관에 기증했다고 한다. 본 베토벤 하우스에 있는 피아노는 시리얼 넘버도 거의 비슷하고 제조일자도 그리 차이 나지 않는 똑같은 종류의 피아노지만 베토벤이 친 피아노는 아니었다. 그래도 베토벤이 브로드우드로 어떤 소리를 예상했는지 정도는 느껴볼 수 있는 셈이다. 해당 피아노로 녹음해서 재생해 주는 음악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이다. 나도 예전 피아노를 아직 배우던 시절에 쳐 봐서 가슴으로 알고 있는 곡이었다. 남들은 적당히 듣고 나가는데,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1악장부터 3악장까지를 전부 다 들었다. 지금의 내가 듣는 피아노 소리보다 현이 들리는 하프시코드 같은 소리가 생경했다. 시대연주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그날은 왜 유독 브로드우드를 듣고 싶은 기분이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소나타 14번을 좋아해서일지도 모르겠고, 베토벤이 들었어야 했을 테지만 듣지 못했던 소리라는 점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해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가한 박물관의 비어 있는 공간에 울려 퍼지는 소나타의 소리가 마치 물소리처럼 울려 퍼져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정원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이번에는 지하로 내려가야 한다. 본 베토벤 하우스를 반드시 11:30~15:30 사이에 방문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장소 때문이다. 수장고. Treasury. 보물을 담은 곳. 베토벤이 직접 쓴 악보를 볼 수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이전에도 작곡가가 쓴 자필보를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이 심장이 뛰었다. 따로 '보물'처럼 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하로 내려가며 한걸음 한걸음 지상에서 멀어져 갈 때마다 음악이라는 작은 세계의 중심부에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자연광이 한 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검은 상자와도 같은 공간. 그 가운데에 베토벤의 악보가 놓여 있다. 베토벤의 자필보와 초판 인쇄본, 교정쇄 등 다 합쳐서 악보 아홉 장이 놓여 있었다. 초판 악보 같은 건 많이 봤었기에 베토벤의 스케치와 교정쇄를 위주로 봤다. 베토벤이 악보를 얼마나 지저분하게 잘 쓰는지는 유명하다. 베토벤의 손으로 벌겋게 고쳐진 악보와 흘려 쓴 연필 스케치라니, 내 눈앞에 이 악보들이 있다니. 공간이 주는 힘은 강력하다. 만일 지상층에 전시되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감명을 받지는 않았을 테다.

보물창고... 살면서 베토벤의 자필보를 볼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출처: Beethovenhaus Bonn)

수장고의 악보들은 보존을 위해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혹시라도 촬영을 하고 있지 않은지 직원이 돌아다니며 감시하고 있으니 몰래 사진을 찍기라도 할 생각은 절대 말기를 바란다. 라이프치히 바흐 박물관이 그랬듯이 주기적으로 악보를 교체하고 있으니 시기를 잘 맞춰 가면 유명한 곡들의  악보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내가 갔을 때는 내가 악보를 보자마자 알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곡은 없었다. 열심히 악보를 읽으면서 곡 공부 좀 해갈걸 하는 후회를 그때만큼 느낀 적도 없는 것 같다. 악보 아홉 개는 곡이 만들어져서 세상에 출판되기까지의 순서대로 진열되어 있다. 1번 베토벤의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시작해 마지막 초판 인쇄본까지 따라 구경하다 보면 아무것도 없던 백지, 음표 몇 개가 순식간에 불후의 명곡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 따라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전시되어 있는 악보가 나타내는 곡들은 제각각이지만 이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베토벤이 어떤 식으로 작곡했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 상시 재생되고 있다. 아마도 '함머클라비어'의 스케치부터 자필보, 교정쇄, 초판본까지가 순서대로 나와있던 것 같은데 베토벤이 잘못 썼다가 칼로 음표를 긁어내고 다시 쓴 흔적이나 교정쇄에 사용하는 특수한 자기만의 표시들을 구경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었다. 인간으로서의 베토벤에 훨씬 흥미가 많은 내게도 이렇게 눈을 뗄 수 없는 공간이었는데 천재 작곡가 베토벤을 동경하는 사람이라면 둘이 갔다가 한 사람이 껌벅 죽어도 모를 정도로 황홀한 공간일 것이다.


나는 베토벤을 만나기에는 너무 늦게 태어났고, 시간여행을 하기에는 너무 일찍 태어났다. 하지만 베토벤 연구에 힘쓰는 박물관이 소중하게 보존해 놓은 베토벤의 악보를 눈으로 보기에는 딱 좋은 시기에 태어났다. 본까지 오느라 썼던 4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행복하게 관람을 마치고 지하로 가자 내가 락커에 넣어두었던 가방이 사라져 있었다. 안에 노트북이 있었기에 완전히 겁에 질린 나는 데스크로 달려갔다. 직원분께서는 친절하게 웃으시며 다음부터는 락커를 잘 잠그라 이야기했다. 독자 여러분, 베토벤 박물관에 갈 일이 있다면 꼭 1유로 동전을 챙겨가기를 당부한다. 베토벤 박물관에는 가방을 들고 들어갈 수 없으며 무조건 락커에 넣어 보관해야 하는데, 1유로가 없이는 문이 잠기지 않는다. 나는 하필 동전이 없어서 잠그지 않고 관람을 시작했었는데, 나처럼 했다가는 운이 좋으면 약간 창피한 수준에서 끝나겠지만 운이 정말 없다면 가방을 그대로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 경각심을 일깨워 주신 친절한 직원분께는 아직도 마음속으로 감사드리고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팔고 있었다. CD나 음반, 도서는 물론이고 키링, 마그넷, 초콜릿 등이 있었다.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내가 박물관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굿즈는 오르골이다. 베토벤 박물관은 못 해도 4종류 이상의 오르골을 팔고 있었다. 오르골에 담긴 곡이 4곡이라는 것이 아니라, 원형오르골, 수동오르골, 태엽오르골 등 오르골의 형태가 4종류라는 것이다. 라이프치히 바흐박물관에서도 본 적 없는 오르골 풍년이었다. 환희의 송가 오르골을 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환희의 송가 오르골은 품절이었다. 결국 나는 베토벤이 갖고 있던 브로드우드와 거의 똑같은 브로드우드가 연주하던 월광소나타 오르골을 사서 다시 만하임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기차는 무려 한 시간이나 연착되는 바람에 도합 왕복 9시간이라는 끔찍한 당일치기 여행이 되었지만 본에 간 것에 후회는 없었다.

베토벤 박물관의 오르골. 

최종 평가

드디어 빈에서 벗어나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명칭: Beethovenhaus Bonn (본 베토벤하우스)
운영시간: 수요일~일요일 10:00~18:00, 화요일은 사전 단체 예약자만 입장가능 (수장고는 11:30~15:30에만 운영, 4월부터 운영)
입장료: 성인 14유로, 할인가 7유로
사이트 링크: Museum | Beethoven-Haus Bonn

1. 도시 접근성: ★★

쾰른이라는 대도시에서 한 시간만 가면 된다. 독일은 일반적으로 기차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ICE (고속열차) 타고 쾰른까지 갔다가 지역열차를 타고 본으로 향하면 딱 맞다.


2. 도시 내 접근성: ★

역에서 도보로 10분이 걸린다. 사실 '베토벤의 도시'를 슬로건으로 걸고 있는 박물관인 만큼 이곳을 중심지라고 봐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중앙광장에서 5분 정도는 걸어야 함으로 4점을 줬다.


3. 소장품: 

매우 준수한 편이다! 트립어드바이저의 많은 사람들이 '악보나 사진들은 죄다 모조품이었다' 하고 불평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슈베르트 박물관에 가 봐야 정신을 차릴 것이다. 그 유명한 베토벤의 초상화부터 (난 이 초상화 하나만 있었어도 갔을 것이다) 베토벤의 펜, 안경, 인장, 비올라, 바이올린, 피아노, 탁상종, 책상, 지팡이, 게다가 귀나팔까지... 비교를 하자면 드보르작보다 조금 적게 남아 있는 수준이지만 베토벤이 19세기 중후반이 아니라 19세기 초반 사람이라는 것을 고려해 보면 굉장히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이외에도 자필보를 보물처럼 보여주는 박물관이란 말이다. 박물관에서 자필보를 그리 흔하게 보여주는 줄 아는가? 박물관에서도 보통 자필보 한두개만 전시해 준다. 베토벤 박물관은 정말이지... 감격스러워서 말이 안 나왔다.

이걸 직접 눈으로 볼 기회가 있는데 보지 않겠다고?

4. 언어 지원: ★★★

한국어가 잘 지원되고 있지만, 오디오가이드 자체가 볼륨이 풍성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너무 풍성한 걸까. 많은 소장품들 가운데 일부만 설명을 해주고 있으며, 텍스트를 함께 띄워주지 않아서 듣고 있으면 굉장히 피곤하다. 이어폰도 반드시 챙겨가야 한다. 오디오가이드의 내용 자체는 훌륭하다. 어플을 깔아서 듣는 형태다. 이전에는 기기를 돈 주고 받았다는데 다행히 이제는 무료다!


5. 가성비: ★★

윽, 솔직히 말하자면 할인 없이는 비쌌다. 14유로를 내야 한다니. 하지만 규모도 크고, 소장품도 화려하고, 오디오가이드도 괜찮고, 미디어스테이션 유지하는 데도 돈이 들어갈 테고... 하지만 다른 박물관들의 학생할인이 20%인데 반해 베토벤하우스의 학생할인은 파격적인 50%이므로 내게는 좋은 가성비였다고 매기겠다!


6. 규모: ★★★★

상설전시관은 바흐박물관과 비슷한 크기다. 하지만 수장고와 정원, 시대악기 감상실이 있는 데다가 락커와 기념품샵까지 고려해 보면 규모가 상당하다! 오디오가이드를 꼼꼼히 듣고 모든 영상들을 눌러본다면 90분~120분 정도 관람하게 된다.


7. 상호작용: ★

미디어스테이션들이 군데군데 있긴 하지만 대체로 베토벤이 남겨둔 기록을 디지털화해서 재미있게 재구성해봤어요! 정도고 실제 상호작용은 많지 않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공간도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음악은 박물관에 비치되어 있는 헤드셋이 아닌, 오디오가이드 어플에서 직접 재생해 이어폰으로 들어야 한다.


8. 굿즈: ★★

내 기억이 맞다면 작은 베토벤 인형이나 키링, 엽서, 마그넷은 물론이고 CD, 서적 등이 있었다. 품목이 굉장히 많았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모차르트쿠겔처럼 베토벤 초콜릿을 파는데, 하나는 살짝 텁텁한 케이크를 닮은 맛이었고 다른 하나는 와인 향이 확 풍겨왔던 것 같다. 오르골은 정말 다양한 종류를 팔고 있는데 엘리제를 위하여와 환희의송가가 가장 인기가 많으므로 나처럼 늦게 가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굿즈를 사고 나면 종이봉투에 구매한 상품을 담아주는데, 이 종이봉투에 베토벤 월광소나타가 인쇄되어 있다. 아, 그리고 혹시 도시 마그넷을 수집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에서 사는 편이 가장 좋다는 말을 미리 해둔다. 나는 여기서 도시 마그넷을 사지 않고 다른 가게에서 사려 했는데, 파는 곳이 없다.


9. 큐레이팅: ★★★

0층에서는 베토벤을 둘러싼 논의와 역사, 1층에서는 베토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 2층에서는 베토벤이라는 인간을 다뤄줘 나름대로의 테마를 가지고 있지만 난 베토벤의 주변인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에 1층 전시 테마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토벤과 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12개 전시실 중 1개였다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주제를 살짝 잘못 배분했고 설명을 텍스트로 적어주는 대신 오디오가이드로 대체해버리려 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쁘지는 않은 큐레이팅이다.


10. 총평: ★★★★

베토벤의 명성에 비하면 조금 작나 싶지만, 그래도 훌륭한 올라운더 박물관

최대 장점: 베토벤의 자필보를 볼 수 있다. 풍성한 소장품.

최대 단점: 단점이 딱히 없다. 오디오가이드가 살짝 귀찮긴 하지만 가기를 고사하게 될 정도의 치명적 결점은 없다.

추천 여부: O. 어차피 독일 간다면 쾰른도 갈 것 아닌가. 그런데 쾰른에 볼 건 대성당 말고 딱히 없지 않은가. 그럼 베토벤도 만날 겸 본을 일정에 살짝 끼워넣는 것은...?


13화 예고: 베토벤을 보고 났으니 다시 한 번 모차르트. '설마 또 빈이야?' 아무리 나라도 그 정도로 빈에 미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모차르트와 카라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 잘츠부르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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