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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에 가다

by 채굴꾼 Jan 07. 2025
리스트 페렌츠. 1870년 사진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리스트 페렌츠. 1870년 사진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리스트 페렌츠, 또는 프란츠 리스트. 저번에는 독일 박물관이었지만 이번에는 헝가리 박물관이니 헝가리식으로 성-이름 순서로 적어주자! 28살의 리스트는 연인 마리 다구에게 '그런데 내 이름, 헝가리식으로 쓰면 페렌츠인 거 예쁘지 않아요?'라고 적어 보냈다고 하니 내가 리스트 페렌츠라고 적어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위대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이자, 교육자. 쇼팽에 비해 유명하지는 않지만 서양음악사에 쇼팽보다 미친 영향은 몇 배는 더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피아노 개량이라든가, 리사이틀의 개념 발명이라든가, 피아노를 옆으로 돌려놓고 친다든가 하는 것도 그렇지만, 바그너를 지원함으로써 영향을 끼친 것도 그렇고, 교향시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제자들을 양성해 그 제자들이 또 제자들을 낳고 그 제자들이 또 다른 제자들을 낳게 했던 사람이지 않은가. 인맥으로는 허브고, 음악으로는 종종 '중시조'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바이로이트에서 리스트를 봤을 때는 분명 '그래도 그도 인간이었고 아버지였구나...'라고 생각했는데, 헝가리에서 다시 보니 역시 인간이라기에는 너무 많은 일을 해낸 것 같다. 바이로이트에서의 그가 아버지로 죽었다면, 부다페스트에서의 그는 천재이자 예술가로 살았다.


젤라졸라 볼라 쇼팽 박물관 방문일이 2024년 6월 17일이었고 부다페스트 리스트 기념관/박물관 방문일이 2024년 6월 18일이다. 폴란드/헝가리 여행을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 부다페스트로 가기 전에 잠깐 다시 바르샤바로 돌아가 보자.

쇼팽 보드카 실물영접.쇼팽 보드카 실물영접.

바르샤바 쇼팽 공항의 가장 유명한 기념품 중 하나는 '쇼팽 보드카'다. 보드카의 원산지가 체코인지 폴란드인지는 아직도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폴란드 측에서는 보드카는 폴란드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실제 쇼팽은 건강상 문제로 인해 그런 독한 술은 마시지 못했던 것 같지만 어쨌든, 쇼팽 공항에 가면 1992년 처음 만들어진 '세계 최초'라는 프리미엄 보드카, 쇼팽을 잔뜩 팔고 있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거니와 유리로 된 병을 안전하게 한국까지 들고 갈 자신도 없어서 사지는 않았지만, 폴란드를 가는 애주가들은 반드시 사 오는 술이라고 들었다. 공항에 가 보니까 쇼팽 말고 다른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폴란드 총리였던 (이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랍다) 파데레프스키 보드카도 팔고 있었다. 2001년 '쇼팽 공항'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라운지 이름도 전부 바꿨는지, 프리미엄 라운지들이 죄다 '폴로네즈' '마주르카' '에튀드' '프렐류드' 같은 이름을 붙이고 있다. 내가 바르샤바에 갔던 2024년이 바로 이 쇼팽 공항이 오픈 90주년을 맞는 해였다. 덕분에 '바르샤바 쇼팽 공항 90주년 기념'이라 적힌 LED 조형물도 볼 수 있었다. 앞선 두 곳의 쇼팽 박물관을 운영하는 주체인 쇼팽 인스티튜트가 박물관과도 실제 협력 관계인데, 아쉽게도 공항에서 주의사항을 설명해 주는 캐릭터들이 쇼팽이거나 하지는 않다.

쇼팽 박물관 9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쇼팽 박물관 90주년을 기념하고 있었다.
라운지명 상태가... 이게 쇼팽 공항의 위엄이다.라운지명 상태가... 이게 쇼팽 공항의 위엄이다.

사실 여행 계획을 깔끔하게 짜려고 마음먹었으면, 부다페스트에서 크라쿠프로 갔다가 바르샤바에서 여행을 마무리하고 프랑크푸르트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었다. 또는 반대로 바르샤바에서 크라쿠프로 갔다가 부다페스트에서 마무리하는 방법도 있었고. 그러나 나는 꼭! 리스트와 쇼팽 공항을 연결하는 비행기를 한 번 타 보고 싶었다. 세계에 베네치아 마르코 폴로 공항처럼 사람 이름들이 붙은 공항 가운데 클래식 작곡가 이름이 붙은 공항은 우크라이나의 프로코피예프 공항,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트 공항, 파르마의 베르디 공항, 아르헨티나의 피아졸라 공항 외 몇 개가 안 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국가를 통째로 대표하는 공항은 극소수이며, 그 극소수의 국가를 대표하는 작곡가 공항 가운데 생전에 알고 지냈던 작곡가 두 명의 공항은 리스트 공항과 쇼팽 공항이 유일하다시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스트 공항은 2011년에 리스트 공항이라는 이름을 얻었고, 하마터면 그로부터 1년 뒤 헝가리 국적 항공사가 망하며 공항의 존속이 위험해질 뻔했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무사히 운영 중이다.


리스트 페렌츠 공항은 채광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내린 터미널 가운데에는 피아노가 한 대 있었는데 두 번째로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날 누군가가 피아노에 앉아 리스트의 그 유명한 '헝가리 광시곡 2번'을 치고 있었다. 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듣는 헝가리 출신 작곡가 리스트 페렌츠의 헝가리 광시곡이라! 폴란드에서 손쉽게 '영웅 폴로네즈' 오르골을 구입했던 것처럼 헝가리의 '헝가리 광시곡' 오르골도 쉽게 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들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타기 전 한 가지 꼭 보고 가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공항의 리스트 조각상이다. 200E 버스 탑승장 근처에 있는 이 조그만 조각상은 공항이 리스트의 이름을 달게 된 해이자, 리스트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2011년 만들어진 미니조각상으로, 정말 내 손바닥만 한 크기의 조각상이라서 그냥 지나쳐버리기 쉽다.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리스트는 본인의 여행가방을 깔고 앉아 있고, 발치에는 아주 조그만 종이비행기가 하나 놓여 있다. 영국부터 페르시아, 러시아까지 종횡무진 연주여행을 다녔던 리스트가 공항에 있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 같기도 했다. 앞서 바이로이트 박물관에서 '리스트라면 먼 길을 떠나온 여행자에게 곁을 잠깐 내주는 것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와 마찬가지로 공항에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도 방랑했던 여행자 리스트에게 아주 적절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리스트 박물관이나 리스트 공항에서 이 조각상을 인형, 키링 등 작은 굿즈로 제작해서 팔아 줬으면 좋겠는데 조각상을 만든 작가도 최근 작가고 해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 건지 뭔지 팔지 않는 것 같다. 아쉬운 일이다.

부다페스트 공항의 리스트 조각상. 귀엽다.부다페스트 공항의 리스트 조각상. 귀엽다.
그리고 정말 작다... 하트 아래 있는 것이 리스트 조각상이다.그리고 정말 작다... 하트 아래 있는 것이 리스트 조각상이다.

200E 버스를 타고 지하철이 있는 곳까지 진입해서 지하철을 타고 내가 처음 향한 곳은 세체니 온천 역이었다. 부다페스트의 유명 관광지, 세체니 온천이 있는 시민공원 한쪽 끝에는 (안타깝게도 세체니 온천의 반대편이다) 리스트-쇼팽 스마트 벤치가 있다. 이 벤치는 2023년 폴란드와 헝가리의 수교를 기념하면서 만들어진 벤치인데, 앉는 부분이 건반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고 쇼팽과 리스트의 곡 10곡 정도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며 서먹해진 리스트-쇼팽 관계와는 달리, 헝가리-폴란드 두 국가 사이의 관계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쭉 돈독하다고 한다. 사실 관계가 전혀 맞지도 않는 '쇼팽 전기'를 써낸 리스트와 자기의 친분관계를 기념하는 의미로 스마트벤치를 만들었다고 하면 리스트는 손뼉 치고 쇼팽은 뒷목 잡고 쓰러질 노릇일 것 같다. 하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을 위해서 쇼팽이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리스트-쇼팽 스마트 벤치.리스트-쇼팽 스마트 벤치.

부다페스트 곳곳에는 리스트를 기념하는 동상들이 있다. 내가 찾은 것만 한 세네 개가 되는데, 특히 머리카락을 휘날리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동상은 다른 정적인 작곡가 동상들과는 달리 그 역동적인 멋이 있으니 한 번 찾아가 보시기를 권한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중에서는 피아노를 치기 위해 두 팔을 벌리고 앉아 있는 리스트의 다리 위에 앉아 일명 '공주님 안기' 포즈로 사진을 찍은 사람도 있었는데, 리스트 팬이고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면 나였더라도 해 봤을 것 같다. 이 동상 바로 뒤편에는 프란츠 리스트 음악 아카데미가 위치하고 있다. Zeneakadémia라고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이 아카데미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콘서트홀의 뛰어난 음향과 아름다운 인테리어로 인해 구글 지도 평점 4.9라는 놀라운 별점을 유지하고 있다. 클래식 작곡가들을 주제로 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클래시컬로이드'에서 리스트 엔딩 카드의 배경으로 등장한 장소가 바로 이 프란츠 리스트 음악 아카데미 내부 콘서트홀이다.

리스트 음악아카데미 근처의 리스트 조각상.리스트 음악아카데미 근처의 리스트 조각상.

그리고 프란츠 리스트가 1875년 설립한 이 음악아카데미는 현재 리스트 박물관을 관리하고 있는 주체기도 하다. 리스트 박물관은 한국 기준 1층과 2층이고, 그 위는 리스트 연구소와 리스트 아카데미 학교 교실로 사용되고 있는 듯했다. 한국 기준 3층이었나 4층이었나를 올라가자 '이 공간은 리스트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연습을 위해 사용하므로 출입을 삼가 주십시오'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1881년부터 86년 사이 리스트가 부다페스트에 살 당시에도 이미 건물 2층이 살롱 겸 리스트의 마스터클래스 교실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위층에 연습실이 있는 건 과거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한 것이라고 납득했다.

프란츠 리스트 음악 아카데미. (풀처:Budapestconcert.com, 사진은 S.Stringer)프란츠 리스트 음악 아카데미. (풀처:Budapestconcert.com, 사진은 S.Stringer)


놀랍게도 입구에 들어가면 누군가가 종이에다가 고풍스러운 글씨체로 '박물관 2층'이라고 한국어로 적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엄청나게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데도 한국어가 적혀 있는 경험은 프라하에서 스메타나 박물관과 드보르작 박물관을 간 뒤 처음이었다. 어라, 이거 혹시 리스트 박물관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는 거 아니야? 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서 2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올라가는 길 계단 바로 왼쪽 벽에는 리스트의 인생을 간단하게 설명해 놓은 액자가 몇 개 걸려 있었지만, 이미 앨런 워커의 벽돌만 한 리스트 전기를 읽어봤던 나는 그런 설명문은 일단 생략했다. 참고로, 1층에는 리스트의 제자들과 스승으로서의 리스트 특별전시를 하고 있었지만 내가 궁금했던 건 박물관 본 전시실이었기 때문에 1층은 2층을 다 둘러보고 난 뒤 보기로 했다.


1층에서 혹시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을까 기대했는데, 다행히도 한국어 오디오가이드가 있었다. 오디오가이드를 위해서는 1,000 포린트를 추가로 내야 하지만 오디오가이드가 없다면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각 물품에 얽혀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디오가이드는 꼭 추천한다. 오디오가이드 없이는 10분이면 다 둘러보는 박물관이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둘러보면 1시간 분량으로 늘어난다. 오디오가이드 없이 A4용지 한 장 짜리 안내문을 주기는 하지만, 안내문만 가지고는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악기 소리를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작곡가보다는 음악에 더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오디오가이드를 구입해야 한다. 솔직히 추가금을 내야 한다는 점이 돈을 어떻게든 더 떼먹으려는 모습으로 비치어지긴 하지만... 차라리 좀 더 비싼 돈을 내더라도 오디오가이드를 티켓 값에 포함해 주는 편이 더 좋다. 매표소 안쪽으로는 방 3칸이 있고,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방은 소장품보다는 리스트의 인생을 압축적으로 요약해 주는 데 사용된다.


오른쪽 방은 리스트의 서재처럼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노란색 벽지가 전체적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풍겼고 작은 스피넷 정도, 3~4옥타브 크기의 피아노 두 대가 놓여 있었다. 위에는 아담 리스트, 리하르트 바그너처럼 리스트의 인생과 관련이 깊었던 인물들의 초상화와 사진이 걸려 있고 안쪽에는 리스트의 가구들이 잔뜩 놓여 있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기도대. 리스토마니아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여자들을 실신시켰던 미남 아이돌 피아니스트였던 시절을 지났더니 사제가 됐다, 만화에서도 안 쓸 법한 설정인데 실제로 그런 사람이 있다. 어릴 적부터 리스트는 종교에 귀의할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고 결국 카롤린과의 결혼이 무산된 이후 아예 성직의 길로 빠져버렸다. 리스트가 사제가 됐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고 하는데, 나 같아도 1군 아이돌이 갑자기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갔다고 하면 '퍽이나 종교생활을 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테다. 사위도 "무슨 중죄를 지었길래 성직에 들어가야만 씻길 정도인 걸까"라는 식으로 말했고 바그너도 비웃었다고 한다. 하지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리스트는 진심이었고, 그 진심은 리스트의 편지나 일기를 읽어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아내가 될 뻔했던 카롤린이 후일 정통 가톨릭 시점에서는 이단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책을 출판하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기도 했고, 신학적인 내용으로 싸우다가 유리창을 주먹으로 부순 적도 있다고 전해진다. 태어나서 신의 존재를 한 번도 믿어 본 적 없는 내게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이야기지만, 무엇인가를 열정적으로 믿는 것이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의 열정은 그런대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하고 있다. 기도대 바로 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옆에는 리스트가 수단 안쪽에 꿰매고 다녔던 사제 서품 임명장 같은 것이 놓여 있다. 설명을 들은 지 시간이 꽤 흘러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슴과 가까운 위치에 꿰매고 다녔던 것이라면 분명 리스트에게 소중한 종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스트의 기도대. 영상 스크린샷이라서 화질이 좋지 않다.리스트의 기도대. 영상 스크린샷이라서 화질이 좋지 않다.

그 바로 옆의 의자와 침대도 전부 리스트가 실제로 쓰던 것들이다. 소박한 싱글베드, 그리고 의자들은 대개 얇고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져 '리스트' 하면 떠올리는 폭풍과도 같은 비르투오소의 이미지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리클라이너, 책장, 램프 등 모든 것이 진품이라서 혹시라도 걸어가다가 가구에 스치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고 잔뜩 긴장하게 된다. 리스트의 작곡책상 맞은편에 있는 캐비닛에는 접시, 나이프, 포크를 비롯한 식기와 촛대, 리스트의 머리카락이 들어가 있는 액자, 촛불 끄개, 넥타이 핀, 지팡이, 장갑, 모자 그리고 리스트의 수의가 있다. 박물관에서 수의를 볼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보통 작곡가 박물관에 오면 나는 이런 소소한 일상생활 용품들을 보고 가장 많은 감동을 받는데, 사실 이 벽장 안에 있던 물건들 가운데서는 수의가 너무 강렬해서 다른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의가 왜 바이로이트가 아니라 이곳에 있는 것일까. 무덤은 바이로이트에, 수의는 부다페스트에.

리스트의 머리카락, 장갑, 수의. 마찬가지로 스크린샷이라서 화질이 좋지 못하다.리스트의 머리카락, 장갑, 수의. 마찬가지로 스크린샷이라서 화질이 좋지 못하다.

그러나 이 모든 진품 가운데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리스트의 일명 '작곡 책상'으로, 카롤린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선물 받은 책상이라고 한다. 그냥 작곡만 한 책상이기만 했어도 꽤 특별했을 텐데, 서랍을 쓱 열면 나오는 건반이 바로 이 책상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리스트의 책상'이라고 만들어주는 요소다. 베를리오즈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작곡가들이 피아노를 가지고 작곡했지만, 리스트와 쇼팽, 낭만주의 피아노의 양대산맥이었던 둘에게 피아노는 다른 작곡가들보다 세네 배는 더 중요한 것이었을 테다. 작곡책상 위에는 한스 폰 뷜로의 사진, 리스트가 쓰던 딥펜과 잉크펜들, 문진,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안경집과 안경이 있다. 맨 왼쪽과 붉은 접근제한 줄 바로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리스트의 서재를 그린 그림이 있다. 노란 방의 인테리어는 최선을 다해서 이 사진 속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벽시계의 위치, 커튼과 책장의 위치, 탁자와 의자의 위치가 모두 재현되어 있어 정말 리스트의 집을 방문한 손님이 된 기분이 든다. 안 그래도 매표소에서 박물관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갈 때 보면 '프란츠 리스트 박사님과의 면담 약속은 여기서 잡을 것. 면담 가능 시간 몇 시부터 몇 시'라고 적혀 있는 판이 붙어 있었는데, 문제의 '프란츠 리스트 박사님'이 없다는 점만 빼면 나도 과거의 화려한 생활은 뒤로 하고 이제는 후학 양성에 힘을 쓰기로 한 '살아 있는 전설'을 만나러 온 손님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 (물론, 이제 리스트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전설은 아니지만. 그냥 전설이지.)

리스트의 부다페스트 거실을 그린 그림. (출처: bridgeman images)리스트의 부다페스트 거실을 그린 그림. (출처: bridgeman images)
현재 박물관의 전시 모습.현재 박물관의 전시 모습.
리스트 방문 가능 시간을 적어놓은 판. 박물관 입구에 있다. (출처: Flickr)리스트 방문 가능 시간을 적어놓은 판. 박물관 입구에 있다. (출처: Flickr)

반대쪽의 파란 벽지 방은 노란 방에 비하면 훨씬 화려하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우리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커다란 피아노 두 대와 벽에 붙어 있는 하모니움 (오르간과 비슷한 것으로 보인다) 두 대다. 건반은 모두 덮개로 덮여 있지만, 어떤 소리가 나는지는 오디오가이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하모니움은 확실히 오르간 소리라 그런지 내게 익숙지 않은 소리가 났지만, 피아노 두 대는 내가 아는 피아노와 거의 다르지 않은 소리가 났다. 쇼팽 박물관 인스타그램에서 가끔 연주해 주는 플레옐 피아노의 조용하고 약간 물 먹은 듯한 소리에 비하면, 리스트 박물관의 피아노는 리스트 본인이 피아노를 부수어가며 훨씬 견고하게 만든 덕분에 (...) 현대의 그랜드피아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파란 벽지 방에 전시되고 있는 대부분의 피아노나 하모니움은 리스트가 구입한 것이 아니라 선물 받은 것이었다. 아무래도 피아노의 전설로 자리매김한 사람이니까 피아노 협찬은 끝도 없이 받았던 모양이다.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에는 건반이 있는 악기가 총 일곱 대 있는데, 내가 설명을 제대로 들은 것이 맞다면 한 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로 리스트가 소장하던 악기들이다. 그 가운데 내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악기는 방 한가운데, 카울바흐의 1857년 리스트 전신 초상화 바로 앞에 놓여 있는 그랜드 피아노다. 하지만 그전에 1857년 전신 초상화 이야기를 잠깐 해 보자.

1857년 카울바흐가 그린 리스트의 초상화. (출처: Kunstuniversitat graz)1857년 카울바흐가 그린 리스트의 초상화. (출처: Kunstuniversitat graz)

클래식 작곡가를 오랜 기간, 깊이 좋아하다 보면 (좋아하는 작곡가의 초상화나 사진이 여러 점/장 있다는 가정 하에) 좋아하는 초상화나 사진이 생긴다. 1857년 카울바흐가 그린 리스트의 초상화는 앞서 몇 번 언급했던 리스트 팬이자 콘트라베이스를 배우고 있는 친구가 좋아하는 리스트의 초상화 가운데 하나로, 마치 토가처럼 멋들어지게 대각선으로 늘어뜨린 검은 천과 왼손 약지의 반지가 매력적이다. 1856년 카울바흐의 초상화 속 리스트는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57년 초상화는 확실히 멋있게 그려졌다는 데에 동의한다. 리스트는 카울바흐가 그린 그림 가운데 '훈족의 전투'라는 그림을 보고 무척 감명을 받아 교향시까지 썼다. 리스트의 음악은 미술과 음악과 문학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건 다른 쪽 벽에 걸려 있는 리스트 교향시와 관련이 깊은 그림 두 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예전 오스트리아 빈 제체시온에서 음악, 미술, 건축이 하나 되었던 통합적이고 전일적인 예술을 리스트도 꿈꿨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예술은 그 방법만이 다르고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일까, 아니면 아예 속성마저도 다른 것일까...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이다.


다시 피아노로 돌아가서, 방 한가운데의 거대한 검은 그랜드 피아노를 보면 아주 화려한 보면대가 눈에 띈다. 보면대 팔 양쪽으로는 양초를 네 개나 꽂을 수 있고, 가운데에는 화려한 금세공 장식이 시선을 잡아끈다. 금세공 장식 한가운데는 리스트의 측면 초상이 새겨져 있고, 리스트의 바로 위에는 베토벤의 흉상이, 바라보는 사람 기준 왼쪽에는 슈베르트, 오른쪽에는 베버가 있다. 리스트와 베토벤의 연관성은 바로 떠올랐지만, 리스트와 베버의 연관성은 베버를 거쳐서만 떠오르고 리스트와 슈베르트의 연관성은 베토벤이나, 슈만이나, 말러 등을 거쳐서만 떠올랐기에 왜 저 세 명을 골랐는지는 아직도 궁금하다. 리스트가 독일어를 사용했으니 독일 작곡가로 포섭한다고 해도 엄연히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작곡가 아닌가. 독일 낭만주의 전통을 가장 강하게 구성하는 선대 작곡가 세 명을 골랐다고 보는 것이 역시 제일 적절할 것 같긴 하지만 내가 리스트에게 선대 작곡가 세 명을 새긴 피아노를 선물해 줘야 한다고 한다면 슈베르트와 베버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지는 않다. 솔직히 낭만주의 사람들이 늘 그렇긴 하지만, 아직도 사람 얼굴이 나를 바로 마주 보게 조각하고 싶지는 않아서... 내가 리스트였더라면 선대 작곡가 세 명이 나를 빤히 바라보는 보면대가 달린 피아노는 정말 쓰지 않으려 온갖 애를 다 썼을 것 같다. 그뿐이 아니다. 방을 둘러보면 베토벤 조각상과 리스트 조각상이 여러 개 더 있는데, 정말 낭만주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남의 흉상을 자기 집에 두고 싶어 했던 것일까? 생각해 보면 멘델스존네 서재에도 괴테와 바흐 흉상이 있고... 브람스 집에도 베토벤 흉상이 있고... 윽. 그 시선이 부담스럽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천재의 '기' 뭐 이런 걸까? 나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는 자리에는 인형조차 놓지 않는데. 하긴, 리스트의 당당함이면 아무리 많은 천재들의 눈에 감시당하고 있어도 조금의 부담도 느끼지 않았을 것 같다. 리스트는 언제나 본인의 모토인 '지니 오블리제' ('천재의 의무'라는 뜻으로, 리스트는 바그너를 지원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천재가 다른 천재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보았다. 이외에도 예술에 헌신하는 것을 마치 사제가 신을 섬기는 것과 같은 종교적 행위로 보았다. 천재에게 일종의 '목적'을 부여하고 범인들과 구분하는, 영웅주의적이고 낭만주의적이었던 그의 가치관을 한 번에 압축해 주는 말 같다.)를 실천하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천재였으니까.

피아노에 달려 있던 보면대. (출처: 리스트 기념관 부다페스트)피아노에 달려 있던 보면대. (출처: 리스트 기념관 부다페스트)

파란 방 벽에 걸려 있는 월계관 쓴 리스트의 측면 양각 부조 양옆으로는 리스트와 쇼팽 부조 메달이 마주 보는 형태로 한 개씩 걸려 있다. 쇼팽의 동의는 받고 만들어졌는지 궁금하다. 바이로이트에서도 리스트와 쇼팽의 관계를 다루는 섹션이 있었고 현대의 교양서에서도 리스트와 쇼팽의 이름은 묶어서 종종 언급되는데, 쇼팽은 이걸 정말 싫어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야기 앞머리로 돌아가서, 다시 리스트와 쇼팽 이야기를 한 번 해보자. 리스트는 쇼팽을 정말 좋아했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써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리스트가 호명한 본인의 '낭만파 형제들'에는 멘델스존, 베를리오즈, 힐러, 쇼팽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쇼팽이 낭만주의의 포문을 열었던 베토벤은 자신을 불안하게 한다고 말하고 완벽한 고전시대 작곡가 모차르트를 우상 삼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쇼팽과 리스트는 베토벤과 모차르트만큼이나 달랐을 뿐 아니라 맞지도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쇼팽의 음악에 낭만주의적인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낭만주의적인 부분만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바르샤바 쇼팽 박물관에서 봤듯이, 쇼팽은 거창한 이상보다는 그 순간과 현실에 집중한 사람이었다. 솔직히 본인이 추구한 이상을 향해 불도저처럼 쉬지 않고 달려가는 리스트보다 훨씬 인간미 있다. 그러니 거창한 리스트와 소박한 쇼팽은 어울리지 않는다. MBTI N이 S를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원리다. 리스트의 '내 친구 쇼팽'이 쇼팽보다는 리스트에 대해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고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리스트가 쓴 쇼팽 책은... 리스트가 본 '쇼팽'에 관한 책이 아니라 '리스트가 본' 쇼팽에 대한 책이었던 것이다. 벽 한쪽 코너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 베토벤과 리스트 조각 세트는 서로를 이해했겠지만 마주 보고 있는 리스트와 쇼팽 부조는 서로 이해해 본 적이 없다는 데 100원을 걸겠다. 아마 리스트는 본인이 쇼팽을 이해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천재만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리고 세상에 천재는 얼마 없으니 본인처럼 천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천재의 해석이 필요하다 봤을 것이고, 본인이 해석한 쇼팽을 세상에 내놓는 것이 천재의 의무라고 생각했던 것 아닐까 생각이 든다. 쇼팽은 리스트의 해석 잔뜩 들어간 연주에 불만이 많았다는데... 말년까지 학생들에게 쇼팽 곡을 많이 연주해 줬던 리스트의 교습 방식에 대해서는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 만일 리스트가 살아 있던 당시에도 쇼팽 부조가 벽에 걸려 있었다면 쇼팽의 날카로운 시선을 의식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젊은 시절의 비르투오소적 기교를 점점 버리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잘 보이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큰 리스트 부조 오른쪽이 쇼팽, 왼쪽이 리스트다.잘 보이지 않겠지만 가운데의 큰 리스트 부조 오른쪽이 쇼팽, 왼쪽이 리스트다.

또 캐비닛이 나온다. 여러분도 눈치채셨겠지만 리스트 박물관들은 무한한 소장품의 보고라도 있는 건지 캐비닛이 나오기만 하면 캐비닛 안에 다른 박물관이었으면 방 스무 개에 걸쳐 하나하나 전시해 놓았을 물품을 한꺼번에 쑤셔 넣는 버릇이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캐비닛 안에는 리스트가 쓰던 지휘봉 두 개와 대관식 미사곡 악보, 그리고 공연 당시 받은 헝가리 색 리본, 리스트가 제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여행가방, 수통, 지팡이, 그리고 소리가 나지 않는 모조피아노까지 한꺼번에 담겨 있다. 뒤에 있는 캐비닛도 마찬가지라서 리스트가 투어를 돌며 받은 각종 기념품, 술잔, 핸드캐스트 (손 석고본), 메달, 라이터, 은 쟁반 등이 놓여 있다. 후일 바이마르 리스트 박물관까지 다녀온 뒤 돌이켜 봐도, 부다페스트의 리스트 박물관만큼 리스트를 '영광스럽게' 묘사하는 공간은 없게 느껴진다. 바이로이트의 리스트 박물관에서는 어딘가 모를 서글픔이 느껴졌고 바이마르 리스트 박물관은-그건 29편에서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자. 아무튼,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은 스승으로서, 예술가로서의 리스트가 가장 부각되는 공간이다. 부다페스트가 기억하는 리스트는 대담한 예술가였고 멋진 스승이었음이 틀림없다.


리스트를 향한 사랑과 존경이 가장 많이 묻어 나오는 소장품은 응접실의 가구 네 점이다. 헨리 2세 양식의 의의자 네 개에는 복잡하고 화려한 자수가 놓여 있는데, 이 자수는 전부 리스트를 무척 존경한 부다페스트의 숙녀 15명이 손수 놓은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테이블보나, 커튼, 카펫의 장식도 그분들이 수놓은 것이다. 사랑하고 존경해 마지않는 이에게 무엇인가를 선물해 줄 수 있음이란 얼마나 기쁜 일인가! 200년은 '늦덕' (*늦게 입문한 덕후.) 이 되어버린 나는 그들을 만날 수도 없고 선물도 해줄 수 없는데 말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행복했을 것이 틀림없다. 사랑과 애정을 주고받는 관계란 원래 그런 법이다. 리스트가 죽자 모든 가구는 원래 수를 놓았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갔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리스트 박물관은 가구를 한 점 한 점 찾아서 박물관으로 다시 가지고 왔다. 그 또한 사랑이다. 부와 권력이 아닌 애정과 존경이 들어간 가구들은 아무리 화려해도 질리지 않고 궁궐의 가구들과 다르게 밉지도 않다. 자수가 전통 헝가리 문양이라는 점도, 평생 전 세계를 헤맸던 리스트에게는 자신을 잡아주는 단단한 뿌리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리스트 박물관의 헝가리 전통문양 자수가 놓인 가구들.리스트 박물관의 헝가리 전통문양 자수가 놓인 가구들.

리스트가 부다페스트를 '집'으로 생각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다녀온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에서는 그 작은 크기에도 불구하고 따스함과 행복, 애정이 느껴졌다. 물론, 박물관의 안내문들이 좀 덜 수제작 한 티가 나고 돈을 더 써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에서 한스 폰 '뷜로'를 '부로우'라고 읽은 것도 (Bülow에서 u 위에는 점이 두 개 붙어 'ㅜ' 발음이 아닌 'ㅟ' 발음이 나야 한다) 고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그 허술함조차 귀엽게 받아들여지는 공간이었다. 트립어드바이저 리뷰에서는 '이곳에서는 그다지 음악적 영감을 얻지 못했다'는 평이 많았으나, 난 부다페스트 리스트 박물관은 어차피 '박물관'인 만큼이나 리스트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도시 부다페스트가 그를 기념하는 '기념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 공간은, 리스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만큼이나 리스트를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이 박물관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리스트에 대해 많은 사전지식을 갖추고 가야 좋다... 는 뜻이다.


최종 평가

브런치 글 이미지 19
명칭: 리스트 페렌츠 기념관 (Liszt Ferenc Memorial Museum)
운영시간: 일 휴무, 토요일/국경일: 9:00~17:00, 다른 모든 날 10:00~18:00
입장료: 성인 3000 포린트, 할인가 1500 포린트, 오디오가이드 추가 1000 포린트 (단, 헝가리 국경일에는 무료다. 5월 15일, 8월 20일, 10월 23일)
사이트 링크: Liszt Ferenc Memorial Museum and Research Centre | Liszt Ferenc Memorial Museum and Research Centre

1. 도시 접근성:

일단 공항이랑 도시 접근성부터가 좋은데,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서 비행기가 꽤 많이 다닌다. 수도가 접근성이 안 좋으면 그것도 문제다!


2. 도시 내 접근성: ★★☆

부다페스트가 생각보다 컸다. 지하철역 가운데 Oktogon이나 Kodaly Korond에서 내려 도보로 5~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대로변에 있지만 다른 박물관들과 달리 '나 박물관이요' 하고 홍보하는 깃발이 없으므로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3. 소장품:

이게... 맞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장품이 눈 돌아가게 많았다. 한 방에 들어가면 그 방에 있는 물건의 75%가 리스트가 쓰던 물건인 수준이다. 오히려 너무 많은 소장품이 실제 리스트가 쓰던 물품이다 보니 손도 못 움직이겠고 어디 앉아도 전부 진품 물건에 앉는 꼴이 되어버려서 앉을 수가 없음에 주의. 내가 살다 살다 수의를 전시하는 박물관은 처음 봤다. 악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악기가 7개나 있는 박물관이고, 초상화들은 물론이고... 아니, 커튼까지 진품인 미친 박물관은 처음이다. 아,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헝가리 전통복식을 입고 있는 리스트의 유명한 초상화는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 있고 여기 있는 것이 아니다. 리스트의 사브르도 마찬가지인 듯하니, 리스트의 진성 팬이라면 부다페스트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리스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오페라 극장, 아카데미, 리스트 기념관과 국립박물관까지 전부 둘러보고 오기를 권해드린다.

이 초상화는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이 초상화는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앞의 사진에서 진품을 표시해 봤다.앞의 사진에서 진품을 표시해 봤다.

4. 언어 지원: ★★☆

굉장히 많은 언어가 지원되는 편이다. 독일어, 폴란드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 체코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튀르키예어 정도가 지원된다. 안내문 자체가 별로 없어서 안내문 번역은 거의 되어 있지 않지만, 오디오 가이드가 다 잘 설명해 준다. 음악이 길게 나와서 나는 별로였지만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한스 폰 뷜로를 '부로우'라고 말한 소소한 실수를 제외하면 퀄리티가 대체로 괜찮았다. 조-금 어색하긴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한국어는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판이라서... 4.5점 준다.


5. 가성비: ★★

국제학생증이 있으면 1,500 포린트 (약 6천 원), 없으면 3,000 포린트 (12000원)에 입장할 수 있다. 오디오가이드 1000 포린트 (4천 원 상당)가 유려하는 것이 뭔가 나를 크게 손해 보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을 주는 지점이다. 국제학생증을 챙겨가서 오디오가이드를 빌려도 10,000원이라는 싸지 않은 가격이 나오는데... 슈베르트 박물관 (당시 할인 입장료 6천 원 상당) 만한 크기에 10,000원이라... 음, 소장품이 많고 오디오가이드 퀄리티도 괜찮지만, 절대적으로 너무 작은 사이즈로 인해 너무 비싸게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심지어 나는 할인을 받은 건데도!


6. 규모: ★★☆

오디오가이드를 빌리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10~15분 안에 관람을 끝낸다. 그 정도로 작다. 오디오가이드를 빌린 사람들은 아무리 적어도 40분 이상 관람한다. 그 정도로 물리적 '규모'와 실질적 규모가 크게 차이나는 곳으로, 리스트 팬은 2시간도 쓸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규모가 작아서 몇 사람만 들어와도 박물관이 북적이게 되는 데다가, 앉을자리도 없어서 오랜 시간 관람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미리 적어둔다. 나는 적정관람시간을 약 40분~1시간 정도로 잡고 싶다.


7. 상호작용: ★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기계가 딱 하나 있었는데, 작동하지 않았다. 그 외에는 전부 설명문과 오디오가이드인 데다가, 진품뿐이라서 어디 손도 못 대므로 상호작용은 1점을 주겠다.


8. 굿즈: ★

바이로이트 박물관에 비해 그다지 상태가 낫지 않았다. 하긴, 방 3개짜리 박물관에 뭔가 기대하는 게 잘못된 일일 테다. 리스트 흉상은 몇 개 팔았던 것 같은데 가격이 너무 비쌌고, 엽서와 악보 등을 팔고 있었다. 엽서를 사려고 했으나 엽서는 헝가리 포린트 현금으로만 결제가 가능했고 나는 하루이틀 여행으로는 환전을 하지 않는 성격이었기에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었기에 엽서 구매는 눈물을 머금고 포기해야만 했다. 악보나 앨범은 좀 더 있던 것 같다.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한다면 악보 구입 한 개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 뭐 이렇게 길게 이야기했지만, 그다지 소비욕을 자극할 만한, 오타쿠 저격 물품은 없다. 공항과 연계해서 공항 피규어 팔아주면 당장 사는데... 아쉽다.


9. 큐레이팅: ★★★

뭐 큐레이팅이랄 게... 따로 없다고 봐야 한다. 인생사보다는 각각의 소장품들에 있는 의미를 설명해 주는 곳이라서, 어떤 전시의 질서나 논리는 없고... 일단 작곡가의 방을 재구현하는 것이 중심인 듯하다. 딱히 좋다 나쁘다 하기가 어렵다.


10. 총평: ★★★★

공부를 하고 갈수록 알차지는 작은 박물관.

최대 장점: 리스트 초가삼간 다 뜯어온 수준의 소장품, 괜찮은 퀄리티의 한국어 오디오가이드 지원

최대 단점: 물리적으로 너무 작은 박물관 크기, 굿즈 없음, 뭔가 비싸게 느껴지는 가격

추천 여부: △, 리스트라는 사람을 좋아하고 뼛속까지 공부했다면, 헝가리 국회의사당과 어부의 요새 야경을 희생해서라도 가야 하지만 리스트의 음악만 좋아하거나 리스트에 대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이곳을 제외한 리스트 음악아카데미, 헝가리 오페라 하우스 등을 갈 것


굉장히 많은 전시품에 비해 내가 사진을 극히 일부밖에 올리지 않아 아쉬울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영상을 첨부한다. 문제가 있을 시 즉각 게시를 취소하겠다.


24화 예고: 7월 1일 출국까지 D-6. 교환학생의 마무리는 역시 멘델스존과 함께하고 싶었던 오타쿠는 세 번째로 라이프치히행 기차를 탄다. 하지만... 좋은 것은 마지막으로 미뤄 두자. 멘델스존 부부의 이웃, 슈만 부부의 라이프치히 집을 찾아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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