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류유산으로 너를 보내며(8)

소파술을 하다.

by 로투스

10월 22일 화요일에 계류유산 판정을 받고 3일 후인 10월 25일 금요일에 소파술을 하기로 하였다.


수요일과 목요일 수술을 기다리는 이틀간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뱃속에 더 이상 뛰지 않는 심장을 가진 생명체가 들어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제까진 나에게 최고의 기쁨을 주었던 그 생명체가 이제 생명을 다한 채로 내 몸 밖으로 꺼내어지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들에서 도피하듯 나는 잠만 잤다.

한낮의 빛나는 태양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아 암막커튼을 치고 어둠 속에 나를 가두었다.


밥을 먹는 것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있다가 잠들고 또 일어나서는 멍하니 있다 잠들고를 반복하였다.


내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믿고 싶지 않았다.


멈춘 아기의 심장이 혹시 다시 뛸 수는 없는지 검색해 보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으며 그렇게 된다고 해도 정상적인 태아로 자라기 힘들다는 결과가 보였다.


'왜 하필 저입니까..? 제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온종일 하늘을 원망했다.


금요일이 되어 수술을 하러 가는 날이 되었다.

내 마음처럼 날씨도 흐렸다. 하루종일 비가 내렸다.

남편이 연차를 쓰고 보호자 역할을 해주었다.


수술은 오후 4시이지만 오전에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병원에 가니 자궁경부를 열어주는 약인 싸이토텍 2알을 먹고 병원 근처에서 대기하다가 수술 1시간 전까지 수술실로 오라고 하였다. 싸이토텍을 먹으면 싸르르한 복통이 생길 수 있고 출혈이 발생하기도 하므로 생리대를 착용하고 있으라고 하였다. 혹시나 피가 너무 많이 나면 바로 진료실로 오라고 하였다.


다행히 나는 출혈과 통증이 심하지는 않았다. 병원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이 되어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에는 보호자가 동행할 수 없으므로 수술실 문 앞에서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들어갔다.


탈의실에 들어가 수술복을 갈아입고 머리망을 썼다. 얇은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니 오한이 들었다. 금식을 한 탓에 배도 고프고 목이 탔다. 무엇보다 내가 수술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웠다.

거울 속 수술복을 입은 내 모습을 마주하니 내면에 슬픔과 긴장감이 몰려왔다.

'요셈아.. 이제 정말 안녕이구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수술대는 차가웠다. 수술대에 누우니 참아왔던 눈물이 흘렀다. 곧이어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이었다. 나처럼 머리망을 쓴 모습이었다. 오들오들 떨고 있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며 "저예요."라고 나지막이 말씀해 주셨다. 낯선 수술방에서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문득 내가 처음 이 주치의 선생님을 고를 때 얼마나 신중하게 고민을 했었던가 떠올랐다. 실력이 있는지, 세심한지, 나와 잘 맞을 것 같은지, 열 달 동안 나와 아기의 몸을 맡겨야 하니 신중하게 며칠을 고르고 골랐다. 훌륭한 선생님들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무엇보다 친절하고 따뜻하기로 유명한 선생님을 골랐다. 이런 순간을 마주할 줄은 모르고 한 선택이었지만.. 그 결정이 이 날의 나에게 엄청 큰 도움이 되었다.


간호사가 나의 양손을 묶어 침대에 고정하였다. 소파술은 수면 마취로 진행되는 수술인데 혹시라도 수술 중에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조용한 가운데 따뜻한 의사 선생님께서 다시 한 마디를 하셨다.

"이제 재워드릴게요. 금방 끝날 거예요."


눈에서 또 눈물이 흘렀다.

'.. 이제 자고 일어나면 다 끝나겠구나. 자고 일어나면 더 이상 내 몸에 아가는 없겠구나..'


눈을 떠보니 나는 회복실에 누워있었다.

수술은 정말 금방 끝났다.

추워서 계속 오들오들 떨다가 잠이 와서 조금 더 잤다. 간호사가 나를 깨워 혈압을 재고 엉덩이에 진통제 주사를 놓아주었다. 이제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가면 된다고 했다.


멍하게 수술실 밖으로 나오니 복도의 작은 소파에서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2시간 정도를 그 작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고 한다. 그 사이에 다른 아기들이 태어나 신생아실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보았다고 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창 밖을 때리는 빗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아침에 병원으로 향했던 우리는 깜깜한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친정엄마가 미역국을 한 냄비 끓여다 주셨다.

"유산 후에도 출산한 거랑 똑같이 몸조리를 해야 해. 꼭 수면 양말 신고 있고 몸 따뜻하게 하고, 조금 질리더라도 당분간은 미역국을 먹어."


오늘의 첫 끼라 뭘 먹어도 맛있었겠지만, 엄마가 끓여준 미역국은 정말 감동의 맛이었다.

'아기를 낳고 먹었으면 더 좋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미역국과 함께 꿀꺽 삼켜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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