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류유산이라니..
드디어 임신 10주 차가 되었다. 두 자릿수 주차가 되었다는 것이 왠지 모르게 기뻤다.
그렇게 느리게 가던 9월에 비하면 10월은 여전히 느리기는 하지만 그보다는 빨리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임신 8주 차까지는 이슈가 많아 매주 병원을 다녔다. 그런데 8주 차 검진에서 이제는 2주 후에 병원에 오라고 하였다. 나도 슬슬 안정기에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9주 차에는 입덧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고 느꼈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음식이 전보다 잘 들어가서 식사량이 늘었다. 퇴근하고 나면 잠이 쏟아지던 것도 많이 좋아져서, 저녁에 30분씩 산책을 하기도 하였다.
'아싸! 이제 입덧도 좀 끝나가는 건가? 체력도 좀 올라오나 보다!' 하고 생각하였다.
10주 차 검진날이 되었고, 그날은 나 혼자 병원에 가기로 하였다. 병원 가는 날마다 남편이 회사를 뺄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9-10주가 되면 젤리곰처럼 짧은 아기 팔과 다리도 보인다고 하던데.. 오늘 젤리곰을 볼 수 있는 걸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요셈이를 보러 갔다.
"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배초음파로 볼게요. 치마는 안 갈아입으셔도 돼요.^^"
질초음파를 보다가 이제부터는 배초음파를 보겠다는 말이 이제 곧 안정기가 되어간다는 말 같아서 괜스레 기쁘고 설레었다.
바지를 약간 내리고 아랫배에 초음파 젤을 발라 초음파를 보기 시작했다. 초음파 기기를 배 위에서 움직이자 화면에 언뜻언뜻 요셈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갑자기 "음.. 질초음파를 봐야 할 것 같아요. 치마로 갈아입고 와 주세요."라고 하셨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했다.
"왜요? 뭐가 잘 안 보이나요?"
"조금 자세히 보아야 할 것 같아서요."
나는 별 일 아니기를 바라며, 탈의실에 들어가 검진 치마로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질초음파를 보는데, 요셈이의 모습이 이상했다. 크기와 모양은 지난번보다 조금 큰 듯이 보였으나, 별처럼 깜박이는 심장이 보이지 않았다...
"아.... 이 아이도 심장이 멈춘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네.....?"
너무 놀라 어떤 말도 하지 못하였다.
"일단은 중요한 문제이니... 더블 체크를 위해서 다른 의사 선생님께 지금 바로 한 번 더 초음파를 보도록 해 드릴게요.. 그분께 한 번 더 확인한 후에 진료실에서 이야기 나눕시다."
다시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간호사님이 다른 선생님 진료실로 안내를 해주셨다. 그 앞에서 내 순서를 기다리는데 눈에서 계속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따위는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냥 계속 눈물이 나왔다.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음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제가 보기에도.. 심장이 멈춘 것 같네요.. 다시 주치의 선생님께 돌아가셔서 진료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멍하니 대기실에 앉아서 또다시 내 순서를 기다렸다.
남편에게도 엄마에게도 전화할 자신이 나지 않았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그저 평범한 10주 차 정기 검진날이 될 줄 알았는데....
"아기가 잘 크고 있네요. 2주 후에 또 볼게요."하고 진료가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계속 두 뺨에 눈물이 흘렀다.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소파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아기의 심장이 멈춘 시기는 8주 3일 정도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일주일도 더 된 것이다.
8주 0일 차에 남편과 함께 병원에 와서 쿵쾅대는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었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산후조리원을 예약하고, 기대에 차 다음 달엔 베이비페어도 가보자고 약속했었다.
그런데, 그날로부터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아기의 심장이 멈추었다니... 그것도 모르고 난 열흘이 넘도록 배 속에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있는 줄 알고 종종 혼자서 말을 건넸다.
"아가야, 오늘 엄마는 친정 가족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많이 먹고 왔어."
"아가야, 내일 병원 가는 날이네. 내일 만나자." 하며....
짧은 순간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기의 심장이 멈추었다고 추정되는 8주 3일 차가 하필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한 날이었는데... 아침부터 야외에서 체육대회 지도를 하느라 유난히 피곤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체육대회가 무리가 되었을까? 그래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쌍둥이 중 먼저 심장이 멈춘 한 아이가 살아있는 다른 한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지난주에 입덧이 덜 하다고 느낀 것은 아가의 심장이 멈추었기 때문이었을까...? 난 그것도 모르고... 입덧이 없어져 간다고 좋아만 했었다니...'
짧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가고 아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계속 눈물을 흘리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티슈를 건네셨다.
계류유산이 된 경우 자궁에 남아 있는 수태물을 제거하기 위한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한다.
첫째, 자연 배출을 기다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언제 배출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기다림이 길어질 수 있고, 너무 길어질 경우 오염과 감염의 위험도 있다.
둘째, 약물을 통한 배출이다. 자궁 경부를 열어주는 약을 먹거나 질에 삽입한 후 일정시간이 지나면 피가 나면서 수태물이 배출된다고 한다. 보통 임신 극초기에 유산되어 아기집이나 수태물의 크기가 작을 경우에 시도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수술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마취를 하지 않아도 되고 수술 부작용도 피할 수 있지만, 깨끗하게 배출되지 않는 경우에는 다시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셋째, 자궁 소파술이다. 자궁경부를 열어주는 약을 먹고 몇 시간 후, 자궁에 있는 수태물들을 물리적으로 빼내는 수술을 하는 것이다. 수면마취를 한 후 진행하며 옛날에는 긁어내는 방식을 이용했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스포이트 같은 기구로 흡입해 내는 방식을 이용하여 자궁에 상처가 나거나 유착되는 부작용의 위험을 줄인다고 하였다.
나의 경우에는 쌍둥이라서 아기집도 2개인 데다가, 완전 극초기도 아닌 임신 10주가 되었기 때문에 약물을 통해 배출을 하면 피가 너무 많이 날 거라고 소파술을 권유하셨다. 소파술을 하고 나서 보통 1달에서 2달 안에 생리를 할 것이며, 생리를 1~2번 정도 한 후에 다시 임신 시도를 하면 된다고 하셨다.
"저 다시 아기를 가질 수 있겠죠....?"
"그럼요. 지금은 많이 힘드시겠지만, 이런 일은 산부인과에서는 흔한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계류유산 후에 다시 건강한 아기를 가져서 출산하고 있어요. 당연히 다시 가지실 수 있어요."
"아기가 왜 둘 다 심장이 멈추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는 건가요..?"
"초기 유산의 이유는 거의 염색체 이상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하게 알 방법은 없어요. 처음부터 건강하게 크지 못할 아기였던 것이니 산모님 잘못은 없어요."
'흔한 일...'
그렇다. 나도 가까운 주변에서 임신 초기에 계류 유산을 한 사람들을 몇몇 본 적이 있다.
의사 선생님의 말처럼 흔하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일이 왜 하필 나에게 일어난 건지 하늘에 묻고 싶었다.
너무 울어 머리가 띵하였다. 빨리 집으로 가서 눕고 싶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소파술을 하려면 수술 전 몇 가지 사전 검사가 필요하니 오늘 검사를 받고 가라고 하였다. 간호사님이 엑스레이, 심전도 검사, 혈액 검사 검사실의 동선을 적은 종이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에는 휴지를 한 움큼 쥐어주며, 내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검사실로 가기 전 병원의 구석진 곳으로 가서 엉엉 울며 남편에게 전화를 하였다.
"아기가 심장이 멈췄대.. 이럴 순 없어... 이제 난 어떡해..."
수화기 너머로 남편도 충격을 받았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파술을 해야 한다고 지금 무슨 검사를 받아야 한대. 계속 눈물이 나서 울면서 검사실로 가는 중이야. 소파술 받을 날짜를 빨리 정하라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남편은 그저 한숨을 푹 쉴 뿐이었다. 빨리 퇴근하여 오겠다고 하였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며 여기로 가라 하면 여기로 가고 저기로 가라 하면 저기로 가서 필요하다는 검사들을 겨우 겨우 받았다. 병원에 머무르는 시간들이 가혹하게 느껴졌다. 이후에 생각해 보니 무슨 정신으로 검사를 받았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 나는 분명 임산부였는데, 반나절 만에 아기를 잃은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아기의 잔여물을 얼른 꺼내야 한다고 소파술 받을 날짜를 빨리 정하라고 한다.
'너무 가혹하다....'
이 모든 것들이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과 다시 한번 통화하여 상의한 후 3일 후에 소파술을 받는 것으로 날짜를 예약하였다.
이 모든 게 꿈인지 생시인지...
당장에 쓰러지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엄마가 우리 집으로 오셔서 남편과 엄마와 함께 셋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괜찮아.. 아기는 또 가지면 돼.. 너 몸만 생각해.."
엄마가 위로해 주셨다. 하지만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 도대체 나일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교감선생님께 연락을 하여 상황을 말씀드리고 열흘 간의 유산휴가를 신청하였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든 남편을 옆에 두고 뒤척이다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기대어 앉아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한번 터진 눈물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남편과 엄마 앞에서는 차마 엉엉 울지 못했다. 애써 괜찮은 척했다. 괜찮을 수 없는 일인데 괜찮은 척을 했다.
하지만 난 괜찮지 않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깜깜한 밤 홀로 나는 눈이 퉁퉁부을 때까지 목놓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