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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철희 Sep 25. 2024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귀 이(耳)

가 귀의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문자라는 데에

이견을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耳”에 대해서는 별로 얘기할 거리가 없다.

“耳”가 들어간 한자들에 대한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귀는 소리를 듣는 기관이다.

그러니 소리 성()”에 “耳”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聲”에서 “耳” 위에 있는 글자는

“소리 성(声)”과 “몽둥이 수(殳)”다.

“声”은 돌로 만든 석경(石磬)이라는 악기다.

따라서 글자 “聲”은

“돌로 만든 악기를 몽둥이로 두드려서 나는 소리를 귀로 듣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들을 청()”도 “耳”의 듣는 기능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글자로,

“이(耳)”와 “임(壬)”과 “덕(德)”의 일부가 합쳐진 글자다.

시라카와 시즈카는

“壬”을 “발돋움하고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이라고 보고는

“聽”을 그런 사람을 가리키는 “壬” 위에

큰 귀를 더해 귀가 밝다는 의미를 첨가하고,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총명한 덕을 德이라고 하기 때문에

德의 일부를 합쳐 “듣다”라는 뜻의 글자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관청 청()”

“聽” 위에 건축된 구조물을 가리키는 집 엄(广)”을 얹은 글자다.

앞에서 설명한 “聽”의 뜻을 반영하면,

관리들이 일하는 곳인 관청은 “신성한 신의 소리를 듣는 곳”이다.

“廳”의 글자 구성을 놓고 보자면,

관청은 백성들이 찾아와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들을 토로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바라는 것을 얘기하면,

그러니까 백성들이 신성한 소리를 내면

관리들이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곳이다.

오늘날, 관청에 근무하는 이들은 이 글자 풀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반대로 생각하면, 관청을 찾은 민원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하나같이 신성한 말일까?


“직업(職業)”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글자인 벼슬 직()”

“지식(知識)”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글자인 알 식()”

찰흙 치()”라는 글자를 공유하고 있다.

갑골문에는 “창 과(戈)”로만 표시된 “戠”는

고대에는 긴 창이나 막대에 깃발을 달아

그걸 앞세운 종족이 누구인지를 구별하는 표식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그리고 그런 표식 앞에

그 표식이 대표하는 사람들을 부르는 “소리(音)”을 붙여

“표식”이라는 의미를 더 분명히 한 글자가 “戠”이다.

그러고서 “표식”이라는 의미가 분명해진 “戠” 앞에

듣는 “귀(耳)”를 붙이면 “벼슬”이라는 뜻이 되고

“말(言)”을 붙이면 “지식”이라는 뜻이 된다.


“신성(神聖)하다”와 “성인(聖人)” 같은 단어에 들어있는

글자 “성스러울 성(聖)”에도 “耳”가 들어있다.

“聖”에 대한 시즈카의 설명은 앞서 소개한 “聽”에서 이어진다.

시즈카는

“발돋움해서 신에게 기도하고 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을

“聖”이라 한다고 주장했다.


“총명(聰明)하다”에 들어있는 귀 밝을 총()”도 같은 맥락에 속한 글자다.

“耳”와 “총명할 총(悤)”이 합쳐져서 생겨난 이 글자의 뜻은

“신의 소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이다.


“치욕(恥辱),” “수치(羞恥)” 같은 단어에 들어있는

부끄러워할 치()”에도 “耳”가 들어있다.

시즈카의 설명에 따르면,

“恥”는 마음에 부끄러운 것이 있으면 귀가 먼저 붉어지기 때문에,

그러니까 부끄러움이 귀에 나타나기 때문에 생겨난 글자다.


“耳”가 들어있는 “聖,” “廳,” “職” 등의 글자를 보며 생각해 보게 된다.

성스러운 것, 관청, 직업처럼 딱히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어들에

공통으로 “耳”가 들어있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耳”가 (廳은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왼쪽 위”라는,

한자(漢字)에서는 제일 처음 시작되는 위치에 배치돼 있는 건

무슨 이유에서 일까?

순전히 글자의 미학적 측면 때문에 “耳”를 그 자리에 배치한 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백성을 위해 봉사하는 곳의 바람직한 모습,”

“생계를 위해 전문적으로 하는 일”이

모두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소리를 귀담아듣는 것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그렇게 배치된 건 아닐까?

그런 글자들이 뜻하는 바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에서부터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남이 하고 싶은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삶의 자세라는 게 아닐까?


헤드폰으로, 이어폰으로

남이 하는 얘기와 주변에서 나는 소리를 차단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런 모습이

“남들이 하는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이야기만 중요하다”는 생각을 표출한 것이 아니기를,

그런 걸 걱정하는 내 생각이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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