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묘생대역전
나는 사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처음은 아니다. 20대 초반 하얀 페르시안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다. 모피코트를 입은 것 같은 풍성하고 화려한 자태, 아몬드처럼 예쁜 눈, 조화롭게 균형 잡힌 얼굴을 가진 수고양이었는데, 잠들었을 때만큼은 그런 고급스럽고 세련된(?) 이미지가 온데간데없이 싹 빠지고 술 한잔 걸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는 푸근한 옆집 아저씨 같았다.
도도해 보이는 외모가 무색하게 어찌나 겁이 많은지 택배 아저씨만 오면 저승사자라도 온 것처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후다닥 세탁기 속으로 숨곤 했다. 그러다가 거기서 나오는 걸 잊어버리는 건지 그대로 그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렇게 쫄보이면서도 사람 구경은 굉장히 좋아해서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당시에 살던 빌라 2층 발코니에서 창밖을 관찰하는 우리 집 고양이와 자주 눈이 마주치기도 했었다.
그때도 난 비염이 심해서 아침이면 연신 재채기를 하고 코를 풀어댔다. (비염은 참 사람을 추접스럽게 만드는 질환이다.) 일본에서 살던 엄마가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였다. 그런 코찔찔이가 사는 집에서 고양이의 그 하얀 털 뭉치가 식탁 위를 두둥실 떠다니는 것이 엄마에게 목격된 이후에 고양이와 나는 1년여 만에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당시 나의 모든 재원은 엄마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뜻을 거스를 수 없기도 했지만 거둔 생명을 끝까지 책임질 강한 의지가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전자와 후자의 비율을 따지자면 80 대 20 정도라고 생각한다. 만일 엄마의 결사반대가 없었다면 고양이의 여생은 쭉 나와 함께였을 가능성이 훨씬 높긴 했을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 좀 개겨보기라도 할 걸 그랬다.
행복하게 잘 살았기를...
아무튼 그러니까 다옹이는 나에게는 두 번째 고양이다. 그런데 처음 같은 두 번째다. 그냥 처음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완전히 새롭다.
가장 먼저 의문이 생긴 건 다소 민망한 소재이지만 생식기 문제였다. 앞서 말했듯 예전 고양이는 수고양이었고, M에게 다옹이는 암고양이라고 들었다. 아...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얘는 암캉아지였던 다솜이가 있던 자리에 그것이 없다. 모래를 치워보면 오줌을 누긴 누는 모양인데 도대체 어디로 쉬를 하는 걸까 얘는?
대화도 할 겸 M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오늘도 G선생(AI)의 도움을 받기로 한다. 「암고양이 생식기는 어디에 있나요?」(나는 인공지능에게도 예의를 갖추는 편이다.)
“아...!!”
마흔 살이 넘도록 몰랐던 사실이다. 고양이는 그래도 인간과 꽤나 친근한 동물인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암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 암고양이의 생식기가 어디에 있나 궁금해하는 게 더 부자연스러운 일인 것도 같다. 역시 경험만큼 좋은 학습은 없나 보다.
요즘 나에게 챗GPT는 고양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최근 나의 질문 이력이다.
고양이 만지는 부위
고양이 적응 환경 만들기
고양이 사료 급여량
고양이 스트레스 반응
고양이 자세 상태 분석
고양이 용변 실수 원인
고양이 알레르기 가능성
암고양이 생식기 위치
고양이 양치 필요성
고양이..., 고양이..., 고양이...
챗GPT가 '요즘 이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고양이인가보군' 할 것 같다. 그러든지 말든지 나는 AI의 답변과 다음의 패턴들을 통해서 다옹이가 우리 집에 90% 정도는 적응했다고 판단한다.
- 배를 드러낸다. (심지어 만져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 깃털 낚시 놀이에 환장한다. (다른 욕구들이 충족되지 않으면 놀이에 반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나에게 꽤나 꼼꼼한 그루밍을 해준다. (내가 팔에 털이 많아서일지도 모르겠다.)
- 발바닥 젤리(패드)를 만져도 꽤 오래 참아준다. (나중에는 살짝 깨문다.)
- 자기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 가져와서 지그시 바라보거나 볼을 문지른다.
이 정도면 백 퍼센트 적응으로 봐도 무방할 것도 같지만 나머지 10%는 나란 인간의 조심성이다. 앞으로 일어날 어떠한 변수를 가정한...
이렇게나 우리 집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다옹이를 보면 쟤가 과연 숲 속에서 굶어 죽어가던 고양이가 맞나 싶다. 행운처럼 주어진 ‘묘생대역전’의 삶을 아무런 의심 없이 만끽하는 모습이다.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밥 달라고 목청껏 울어 젖힐 때는 나도 모르게 ‘쟤는 되게 뻔뻔스럽다’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 뻔뻔함이라는 것이 어딘가에 적응하는 데 있어서는 크나큰 장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거기에 귀여운 외모까지 더해지면? 세상 날로 먹을 수 있는 거다. 다옹이처럼.
길거리 출신 고양이를 보면서 뻗어나간 시답지 않은 생각이지만 시작한 김에 조금 더 나아가서 내가 다옹이라면 어땠을지 가지를 하나 더 뻗어보자면,
“아유, 거둬주신 것만도 감사한데요, 밥은 생각날 때 주시면 아껴서 조금씩 먹겠습니다. 제 사료값 버느라고 고생이 많으세요. 출근하신 동안 제가 쥐라도 잡아다 놓을까요?”
나는 손사래 치며 사서 눈칫밥 먹는 매력 없는 타입 같다.
너의 그 밉지 않은 뻔뻔함이 부럽구나, 다옹아~
아무리 그래도 식탁 위에 올라가는 건 뻔뻔함 초과란다. 이것만큼은 너와 사이가 멀어진다 해도 어쩔 수가 없다.
"(쓰읍) 안 돼!! 다옹이,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