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너를 그리워해
우리 가족은 각자의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은 새로운 생명체의 등장이 낯설었다. 특히 아들은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토로했다.
“엄마... 나는 다옹이 존재가 왜 이렇게 이질감이 들지?”
“그래? 왜애?”
“나는 한밤중에 나 혼자 깨어있을 때 있잖아. 그때만의 그 고요함이 좋은데, 쟤가 있으니까 뭔가 불편하네. 다솜이는 원래 거기 있던 애니까 괜찮았거든... 엄마... 얘 그냥 돌려보내면 안 돼?”
'이질감'이란 단어가 그야말로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아들과 미리 의논을 안 한 것도 아니었고, 얼마 전부터 강아지, 고양이 심심찮게 노래를 불러서 다옹이가 오면 제일 좋아할 것 같았던 아들 입에서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말들이 나오니 이를 어쩌나. 난감했다.
밤에 혼자 무슨 은밀한 시간을 보내기에 그러나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도 들고, 막상 보니까 고양이가 좀 무서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더 어릴 때도 배고픈 길고양이들에게 편의점에서 먹을 걸 사다가 먹이곤 했던 아들이라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음 날 함평 외삼촌 댁에 놀러 가 있는 친정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야아, 너네 노라네꼬(일본말로 길고양이란 뜻, 엄마는 일본에서 30년 정도 살다 와서 일본어 어휘를 더 편하게 쓴다.) 데려왔다매?”
“어, 어떻게 알았어?”
“내가 다 알지. 내가 카메라로 다 보고 있어.”
어떻게 알았는지 머리를 굴리느라 재미는 없지만 웃으라고 한 엄마의 농담에 웃어주지도 못했다.
“니 아들이 전화했어. 나보고 할머니가 고양이 좀 데려가면 안 되녜.”
- 할머니, 할머니 알레르기 있어?
- 응, 있지.
- 어느 정도야? 심해? 개나 고양이 털 알레르기도 있어?
무서운 빨간 눈이 된 엄마를 걱정하는 마음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나와 의논도 없이 할머니에게 데려가라고 한 건 분명 얘 마음에 새 식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구나 싶었다.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정말로 못 키우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효지야~ 내보내라, 고양이~ 너 아들 대학 못 가면 어떡할라고 그러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모의 목소리에 괜히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일단 알겠노라 하고 전화를 끊은 후에 가만히 생각하니 다옹이를 처음 데리고 오던 날, 아들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우리 말티즈도 한 마리 같이 키우면 안 돼?”
“얘도 그렇게까지 키우고 싶어서라기보다 가여워서 거둔 건데 다른 종 두 마리를 어떻게 키워?”
“내가 할게. 엄마는 고양이 맡고, 내가 강아지 맡으면 되지."
당시엔 철없는 소리 한다 생각하고 흘려들었던 그 말속에 담긴 아이의 마음을 이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나랑 비슷한 마음이었구나, 너도...'
다옹이가 오기 전날 밤, 나는 버리지 않고 잘 안 보이는 곳에 1년 넘게 꽁꽁 묻어 두었던 다솜이의 물건들을 꺼냈다. 그쪽 공간이 정리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선뜻 손이 가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고양이가 새로 오기로 했으니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을 것 같아서 마음을 먹고 팔을 걷어붙였다.
물건들을 하나씩 꺼냈다. 다솜이가 즐겨 앉던 작은 직사각형 모양의 방석, 입던 옷들, 지금은 배롱나무 화분에 뿌려졌지만 뼛가루를 담았던 뚜껑 있는 작은 항아리 등이 나왔다. 다솜이 옷은 세탁을 해둔 상태였지만 아직도 꼬순내가 남아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데 체취가 남아있다는 게 어쩐지 신기했다. 다솜이가 없는데 있었고, 또 있는데 없었다. 갑자기 손에 잡힐 것 같은 존재감이 느껴지자 그리움이 나를 단숨에 덮쳤다. 보고 싶고, 안고 싶고, 쓰다듬고 싶었다.
보내고 나서 일 년 내내 생각날 때마다 울었고 이제는 많이 덤덤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아직 너를 웃으면서 추억하기엔 이른가 보다.
그건 아마도 내 마음이 너에게 미안함이 더 많아서일 것이다.
다솜이는 귀에 염증을 달고 살았는데, 나중에는 아예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된 것 같았다. 병원에서는 귀찮아서 반응하지 않는 거라고 했지만 생활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건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점점 감각이 떨어지고 먹고 자고 싸는 일만 되풀이하는 노구가 되면서 이제 교감보다는 그저 뒤치다꺼리가 되어버린 루틴들이 나는 지겹기도 했었다. 지겨워했던 그 마음이 내내 미안함과 후회로 남아 좋았던 추억까지도 집어삼켜버리고 만다. 그게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마치 다솜이와 지내는 내내 학대하면서 키운 기분마저 느끼면서.
'조금 더 쓰다듬어줄걸. '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줄걸. '
다옹이가 오고 난 후에도 새 식구가 반갑고 귀여웠지만 자꾸만 자꾸만 다솜이가 그리웠다.
실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생각할 때에도 비슷한 감정을 느껴왔다.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젊어서 귀를 세게 맞아서 고막이 다쳤다는 할머니는 다솜이처럼 귀가 잘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와 대화하려면 같은 말을 두 번 세 번 말해야 하니 힘들고 답답했다. 짜증이 났다.
잘 못 들으니 사람들이 바보 취급한다면서 유명하다는 교수님을 찾아 2년을 대기해서 진료를 받았지만 고칠 수 없다는 말에 할머니는 작고 처진 눈꺼풀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호주머니에 지퍼가 달린 팬티를 가지고 있고, 옷을 좋아하고, 씻고 나오는 나를 보면서 자기 눈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이쁘다고 말해주던 사람.
엄마가 일본에 있어 혼자 외갓집에 놀러가면 자기 입에는 밥만 못한 끈끈한 빵(피자)을 사주고, 장손인 사촌동생이 병어 더 없냐고 찾아도 없다고 잡아떼고 내 몫을 남겨뒀던 사람. 나에게 오롯이 사랑만 준 사람.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치매 진단을 받고 요양병원에 계시던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다. 기억이 오락가락해도 친정엄마가 일곱 살 먹은 내 아들을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으니, "효지야 아들" 하고 말하면서 재밌다는 듯이 할머니는 웃었다.
그립다. 외할머니도, 다솜이도.
그리고 미안하다.
아들에게 다솜이는 어떤 의미였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다솜이는 이미 우리 가족이었으니 아이의 열여덟 해 인생에서 다솜이 없이 지낸 기간은 최근 일 년간뿐이다. 자기가 태어난 순간부터 쭉 너무도 당연하게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존재였을 것이다. 다솜이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어쩌면 아이에게 더 커다란 의미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나온 김에 자랑을 좀 하자면, 다솜이는 원조 육아견이었다. 갑질 이슈로 요즘엔 방송에서 볼 수 없는 개 전문가가 말티즈가 크기만 컸으면 맹견으로 분류됐을 거라고 했는데, 그 말에 나는 전혀 동의를 못했다. 꼬맹이가 멋모르고 꼬집고 주물러도 한 번도 깨물거나 으르렁대지 않고, 다 참아주면서 톡톡히 누나 노릇을 해준 이 순둥한 댕댕이가 내겐 말티즈의 전부라서 말이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 아들 말대로 말티즈를 한 마리 더 데려온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죽은 강아지를 대체하기 위해 비슷한 강아지를 새로 입양하면 키우던 강아지와 비교하고 실망하게 된다고 들었다.
고민 끝에 나는 휴대폰에 있는 다솜이의 사진들을 인화지에 출력했다. 아이와 다솜이가 함께 보낸 일상이 담긴 사진들도 같이 뽑아서 여기저기 잘 보이는 곳에 놔두었다.
"이런 사진이 있었어? 언제 찍은 거야?"
"애옹아, 다옹이는 다솜이를 꼭 대체하는 건 아니야. 다옹이가 왔다고 다솜이랑 우리가 보낸 추억이 없어지진 않아. 다솜이는 다솜이대로 마음에 남겨둬도 돼. 네가 그래도 그래도 다옹이가 받아들여지지가 않으면 파양은 좀 그렇고 할머니한테 부탁해 볼게."
아들에게 고마웠다. 나만 이런 그리움을 느끼는 게 아니라서. 다솜이를 함께 그리워하고 추억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떠난 것들에 대해 그리워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줘서.
며칠 안 걸려서 아들은 덤덤하게 말했다.
"엄마, 얘 보니까 사람들이 무슨 맛에 고양이 키우는지 알겠다."
다행이었다. 우리 아들은 이제 그리움을 추억으로 남기는 법을 조금 배웠으려나? 그런데 나의 그리움은 마냥 좋기만 했던 아들의 그리움과는 결이 조금 달라서 아마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
고다옹씨는 온 지 이틀차에 바로 집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는 조금 늦은 속도로 새로운 식구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