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하지 못한 새 식구 맞이
드디어 다옹이가 집에 오는 날이다.
M네 부부가 집으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병원 검사에 접종까지 해서 보내주는데, 집에까지 오게 하는 게 미안해서 고3 수험생 아들의 귀한 시간을 쪼개서 데리고 M네 아파트로 갔다.
M이 보내준 사진과 나눈 대화를 통해 웬만한 용품은 M이 돌보면서 하나둘씩 마련한 게 미루어 짐작돼서 미리 준비하기보다는 보고 나서 부족한 걸 보충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대신 며칠이나마 정든 고양이를 보내고 마음이 허전할지도 모를 M을 위해 홀케이크를 사 가지고 갔다. (M은 케이크를 좋아한다.)
“엄마, 나중에 밥 한 끼 사드려야겠다.”
두 보따리의 고양이 물건들을 보면서 아들이 한 마디 거들었다. 이제 이런 것도 생각할 줄 알고, 염치를 아는 사람으로 자랐구나 우리 아들. 집에 와서 커다란 보따리를 열어 보니 생각한 것 이상으로 웬만한 용품이 다 있어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겠다.
그렇게 우리 집에 새 식구 다옹이가 합류했고, 이틀 동안 나는 빨간 토끼 눈이 되었다.
나에게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지인 중에 고양이를 세 마리나 키우는 분이 있는데, 그 집에 가면 5분이 채 안 돼서 눈이 가렵고 재채기가 나와서 그 댁에 갈 일이 있으면 품위 유지를 위해 미리 알레르기약을 먹고는 했다. 알레르기는 고양이 데려오기를 망설였던 큰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예상보다 내 면역체계는 훨씬 더 심각하게 반응했다. 남편과 아들이 안구까지 빨갛게 부어오른 내 눈을 보면서 이래서 계속 키울 수 있겠냐고 걱정했다.
향후 15년 정도를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지금이라도 물러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지만 처음이라서 적응하느라 그러는 것일 거라고 가족들과 스스로를 달래면서 항히스타민제를 물과 함께 꿀꺽 삼켰다.
게다가 지금은 환절기니까.
다옹이를 데리고 올 때, M의 남편은 집에 가면 바로 넓은 공간에 꺼내놓지 말고 좁고 아늑한 공간부터 적응하게 한 다음에 서서히 반경을 넓혀주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24시간 언제든지 괜찮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아무 때나 연락하라고 덧붙였다. 정말이지 마음씨 고운 부부다.
그러나 당부를 듣지 못한 아들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실에서 홀랑 이동장을 열어버렸다. 갑자기 튀어나와 무방비상태로 새로운 환경에 노출된 고양이는 소파 밑에 숨어버렸다. M네 고양이 마롱이는 이렇게 사나흘 동안 숨어서 나오지 않았다고 했지만 다옹이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금세 나와서 침착하면서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탐색을 시작했다. 사람도 그렇지만 고양이도 역시 성격이 제각각인 모양이다. 내 눈엔 마치 매물로 나온 집을 구경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어디 하나 놓치는 곳 없이 꼼꼼하게 살피려는 것 같았다.
‘어떻게... 집이 좀 마음에 드시나요, 고양이님?’
생각보다 적응력이 좋아 보여서 안심이 됐던 건지 아까 다옹이가 들어갔던 소파 밑에 뽀얗게 쌓여있던 먼지들이 자꾸 떠올랐다. 그곳이 당분간은 고양이의 애착공간이 될 것 같은데, 얘한테 먼저가 들러붙지는 않을까 신경이 쓰였다. 고양이들이 소리에 예민한 거 정도는 알고 있지만 청소기가 너무 돌리고 싶었다. 갈등하던 나는 결국 진공청소기를 들어 먼지를 깨끗이 없앴고, 내 시야에서 고양이도 없앴다. 나는 이렇게 가끔 경솔하다.
이후에 약 1시간 정도 다옹이를 볼 수 없었다.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침대 밑, 소파 밑, 집안 구석구석 살피느라 무릎이 나갈 지경이었다. (내 기준이긴 하지만) 있을 만한 곳을 다 살펴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아서 어딘가 창문이 열려있어서 밖으로 뛰어내린 건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아니면 혹시 집 안에 블랙홀이라도 있는 걸까? (이건 집 안에서 물건들이 사라질 때마다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울음소리라도 한 번 들려주면 좋을 텐데... 소파 밑 먼지 정도는 평소처럼 그냥 흐린 눈으로 볼걸 그랬다. 놀라게 해서 미안한 마음에 후회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 엎질러진 물. 에라 모르겠다. 이렇게 된 마당에 그냥 로봇청소기도 돌려버렸다.
'어차피 새롭게 적응하는 김에 네가 우리 집 패턴에 맞추거라. 다옹아'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에 그래도 어디선가 애옹거리면서 나타나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다옹이의 울음소리는 ‘야옹’보다는 ‘애옹’에 가까운 것 같다.
"애애옹, 애옹"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다옹이의 등장에 호들갑 떨지 않고 짐짓 모른 체를 했는데, 나의 노력이 무색하게 잠시 존재만 확인시켜 주고는 또 홀연히 사라져서 한동안 보이지 않았다. 이런 밀땅의 고수를 보았나. 내 생애 이런 숨바꼭질은 처음이었다. 그래도 집 안에 무사히 존재하고 있으니 때가 되면 나오겠거니 하고 애써 조바심을 떨쳐냈다.
숨어서 안 나오는 것보다 밥을 도통 먹지 않고, 똥오줌을 아무 데나 싸는 게 더 큰 걱정이었다. 하긴 다옹이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하루 동안 동물병원과 낯선 집을 두 군데나 거쳤고, 아직은 집 구조가 익숙하지 않을 테고, 식기랑 화장실은 떨어져 있어야 한대서 내가 화장실 위치도 한 번 바꿨고, 로봇청소기까지 돌아다녔으니 충분히 그럴 만한 거 같기도 하다. 나였어도 식음을 전폐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전혀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양이 똥은 냄새가 정말로 지독하다. 강아지 똥 냄새랑은 차원이 다르다. 특히 모래에 싸지 않은 응가 냄새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신경이 쓰여 잠을 설쳤는데, 새벽에 거실에 나와 살펴보니 그래도 밥그릇이 아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좋은 시그널 같았다. 내일부턴 고양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생각이 맞았다. 다음 날부터는 숨바꼭질을 끝내고 대소변을 화장실에 잘 보고, 아주 놀라운 먹성을 보여주었다. 사료를 꺼내면 "이이야아아아오옹~~~" 하고 울음소리가 길어지고 커지는 게 누가 들어도 이건 빨리 밥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이 분명했다.
‘그런데 밥을 얼마나 줘야 하지?’
모르는 것 투성이인 초보 집사는 챗GPT에게 개월 수와 몸무게를 말하고 적정 사료 배급량을 물었다. 80g(종이컵 1개 분량)을 서너 번에 나누어주라고 하는데, 먹어도 먹어도 계속 달라고 보채는 통에 정량의 1.5배는 주고난 그날 밤에, 자면서 나는 밤새 모래에서 고양이 똥을 캐는 꿈을 꾸었다. 깨어나서도 지독한 구린내가 코에 맴도는 것 같았다. 휴우...
나는 아직도 생각하는 것들이 곧잘 꿈에 나오곤 하는데, 지금 나에게 이 새로운 존재의 이미지는 '똥 냄새가 지독한 귀여운 먹보'쯤 되는 모양이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거실로 나가보니 다옹이는 여러 개의 방석 중에 다솜이가 쓰던 방석 위에 얌전히 앉아서 너 나왔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하필 거기 앉아있네. 너도 다솜이의 꼬순내가 포근하게 느껴졌구나!’
이건 왠지 '타샤' 나 '나타샤'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다. 낭창낭창한 앞발이 발레하는 러시아 공주님 같은 다옹이♡ 나는 벌써 팔불출 집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