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짓기
남편은 경제적으로 손해 보는 상황을 싫어하는 성격이다. 다솜이와 살았고 또 함께 보내도 주었기 때문에 반려동물이 언젠가(반드시는 아니지만 높은 확률로 우리보다 먼저)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모든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도 잘 안다.
다솜이를 보내고 아직 무언가를 길러보자 하고 마음을 먹은 것도 아닌 상황에, 예뻐서 데려오는 것도 아닌 버려진 고양이를 데려다 키우는 일에 쉽사리 동의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었다.
“키우고 싶어? 그럼 데려와.”
예상 밖으로 쉽게 동의해 주었다. 진심인가? 그래, 솔직히 내심 남편의 강한 반대를 기대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불편한 마음 없이 외면할 수 있는 반대가 있다면 그건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니까.
의외의 반응에 내가 망설이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깨달았다. 잘 못 먹고, 제대로 크지 못한 상태라서 병이 있을까 봐, 사실 처음부터 무엇보다 그게 걱정이었다.
「주무관님, 남편이 데려와도 된대요. 근데 걔 상태는 괜찮은 거죠? 건강하지 않을까 봐 걱정돼요...」
「우와, 정말요? 잘 먹고 잘 싸고 겉모습이 깨끗한 거 보면 괜찮은 거 같아요. 안 그래도 며칠 있다가 동물병원 데려가서 검사해 보려구요.」
나흘 후인 금요일 M의 남편이 휴무이니 ‘말라깽이 클레오파트라’(이름을 짓기 전까지 이렇게 부른다.)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우리 집에 데려다주겠노라 했다. 이제 돌이키기엔 너무 많이 온 것 같다.
사실 내가 얘를 데려오고 싶었던 이유 중에는 남편의 우울증이 큰 몫을 했다. 남편은 2년 간의 투병으로 회사에서 승진이 밀리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다. 자신이 쓸모없다는 극단적인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나로서는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지만 남편은 자기의 가치를 그렇게 수치화나 등급화된 것들에 두고 있는 사람으로 타고났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므로 함부로 비난할 수도 없다. 그저 인지적 공감력을 발휘해 남편의 감정을 수용해 주고 위로해 주는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즐거운 상황은 아니다.
나에게는 새로운 (건강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생명체를 집에 들이는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고 싶은 음흉한(?) 마음도 있었다. 잠깐 보았지만 ‘말라깽이 클레오파트라’가 사람을 많이 따르는 소위, ‘개냥이’였기 때문에 남편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걸었다.
입양을 마음먹고 기다리는 동안 M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말라깽이 클레오파트라’의 상태를 매일 체크했다. 조금씩 살이 오르면서 미모가 살아나는 것을 보며 둘이 같이 감탄했다.
「주무관님, 얘 진짜 예쁘죠? 우리 엄마가 얘 최지우 닮았대요.」
「그러니까 말이야. 아이라인은 도대체 어디서 했대요? 너무 궁금하다.」
다행히 건강에 특별한 이상은 없는 것 같아서 안도했다. M은 ‘말라깽이 클레오파트라’에게 각종 용품들을 마련해 주면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모래에 똥을 싸고, 스크래처를 벅벅 긁는 모습을 보면서 신기해하고 기특해했다. 나는 그런 M이 신기하고 기특했다.
‘말라깽이 클레오파트라’의 사진을 보면서 얼마 전에 뜨개질하고 남은 캐시미어 털실의 빨간색 이미지가 떠올랐다. 아이라인이 진한 고등어 무늬를 가진 이 고양이에게 그 선명한 빨간색이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붉은색이 잘 어울릴 거 같으니까 <베니(‘붉은 홍’의 일본어)>라고 할까?’
‘가을의 시작과 함께 만났으니 <단풍이>라고 할까? 단풍에는 붉은 이미지도 있으니까.’
남편과 고3짜리 아들은 의견을 구해봐도 이런 식이다.
남편: “<애옹이(아들 애칭)>라고 해”
아들: “<다솜이(무지개다리 건넌 반려견 이름)> 어때?”
역시 도움이 안 된다. 두 사람에게는 기대를 버리자.
내 창의력에 한계를 느끼고 챗GPT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을 추천해 달라고 하니, 털 색깔과 이미지를 고려해 ‘모카’, ‘초코’ ‘도도’등의 이름을 추천해 주며, 성격을 묻는다. 사람을 좋아하는 수다쟁이 암고양이라고 정보를 주니 ‘미야’, ‘수다’, ‘라라’등의 이름을 다시 추천해 주었다.
항상 느끼지만 GPT는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도록 유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현혹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추가로 어떤 정보를 줄지 늘 궁금해진다.
「혹시 ‘따뜻+귀여움’ 쪽이 더 좋으세요, 아니면 ‘따뜻+우아함’ 쪽이 더 끌리세요?」
‘귀여움’을 고른 내게 GPT가 쏟아낸 이름들은
‘라떼, 카푸, 밀크, 쿠키, 카라멜, 밤비, 해나, 누리, 토피, 솔라...’
챗GPT, 너의 창의력도 아직은 한계가 있나 보다. 그래도 그중에 <모카>는 꽤 마음에 들어 후보에 올리기로 했다. 남편과 아들의 반응은 보나 마나여서 여덟 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투표에 부칠 생각이었다.
그전에 J와 먼저 대화를 하게 됐다. J는 그 단톡방의 여덟 명 중에 한 명이다. J에게 고양이를 데려오게 된 경위와 이름 짓는 것을 고민 중이라고 이야기했다. 평소 상냥하고 착한 성격답게 내가 후보에 올린 ‘베니, 단풍이, 모카’ 모두 예쁘다고 칭찬해 주고 덧붙였다.
「혹시 제가 하나 추천해도 되나요?」
의외였다. 평소 결정장애가 심해서 카페에서 음료도 가장 나중에 고르는 J가 추천이라니...?
「당연하죠.」
「다옹이요. 다솜이+야옹이.」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의미도 귀여운 어감도 마음에 든다. 투표는 안 해도 되겠다.
다옹이, 다옹이, 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