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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un 09. 2024

어긋남

여행 이틀차에 휴대폰 고장 ?!

2022.11.17

Day 2. 숙소 - 덤보 - 스타벅스 - 브루클린 브릿지 - 타임스퀘어에 있는 여행사 - 매그놀리아 베이커리 - 라디오시티 - 할랄가이즈 - 센트럴파크 - 플라자호텔 - 월그린 - 숙소



시차적응이 덜 된 덕에 3시간 잤는데도 쌩쌩했다. 예약한 프로그램들을 제외하고는 무계획이었기에 일어난 김에 오늘자 여행 코스를 내가 하고 싶고 먹고 싶은 걸로 잔뜩 채웠다. 나날이 지하철 방면 찾는 것도 늘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고 나섰다. 웬걸 현관문 열쇠가 안 빠지는 것이다. 혼자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봤는데도 안 돼서 호스트를 깨울까도 고민했지만(사실 열쇠 소리가 너무 짤랑거려서 깼을 것 같다.) 몇 분 간 다시 돌리고 돌리고 하니까 해결이 되었다. 예쁘게 입고 싶은 나머지 얇게 입고 나갔다. 패딩 입은 사람들을 마주하고 차디찬 공기를 느끼고서야 바로 추위에 굴복했다. 힘들게 문 잠가놓은 주제에 코트 가지러 또 숙소에 들어갔다왔다. 참고로 내 숙소는 유대인 마을에 위치해있다. 거리로 나가보니 초등학생들 등교시간이었다. 죄다 검정 옷이라 놀랐다. 나도 검정 코트 입어서 졸지에 드레스코드 맞춰버렸다.

지하철을 한 번 갈아타고서 덤보가 있는 지역인 브루클린에 입성했다. 길은 잃었지만서도 강아지랑 뛰어노는 사람들, 아니 뛴 건 강아지다. 높고 초록빛인 나무들과 푸른 들판에서 뛰어노는 강아지를 보자니 기분이 좋아져서 뜻밖의 선물을 만난 느낌이었다. 길을 제대로 들고서야 그냥 사람들이 모두 향하는 곳을 가면 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덤보를 찾기까지 또 많은 길을 헤맸다. 구글맵이 있어도 나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여기는 건물 간판이 확실히 드러나는게 아니라서 위치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길을 헤매다 아주아주 예쁜 장소를 만났다. 브루클린 브릿지, 맨해튼 브릿지,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구도까지 완벽한 곳이었다. 이렇게 예쁜 곳에 오려고 내가 길을 잃었던 거라 생각하면서 삼각대를 세팅해 혼자 사진을 찍었다. 이때 내가 간과했던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뉴욕 강인지 바다인지의 바람은 매우 매섭다는 것과 또 하나는 휴대폰이 떨어져도 한 번도 고장난 적이 없어 별 생각없던 안일함이었다. 갑자기 돌풍이 불면서 삼각대가 넘어지고 내 폰 액정 필름은 아작이 나고 검은 화면에 삼색 줄만 보였다. 인천공항에서는 보조배터리 충전기 잃어버리고, 첫째 날엔 경유지에서 길 잃고 울고, 한국 유심칩도 잃어버리고, 오늘은 폰도 깨먹었다. 평안한 하루가 하나도 없다. 망연자실한 채로 걷다보니 내가 찾던 덤보가 보였다. 멘탈이 깨진 상태라 별 감흥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곳에 있어도 결국 중요한 건 마음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대로 진행하냐 마냐 결정하기 전에 서럽고 춥고 배고파서 일단 걷다가 눈에 보이는 스타벅스에 갔다. 먹고 싶은 메뉴도 핸드폰에 저장해뒀는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났다. 그래서 한 번도 시도해 본 적 없는 차이티 라떼와 미국식 달달한 베이커리가 궁금해서 더블 초코칩 브라우니를 시켰다. 내 차례가 다 되어갈 때쯤 “토니”라고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뭐냬서 한국이름인 “성희”라고 했는데 토니라고 적혀 있었다. 그 덕에 웃겨서 마음이 좀 유해졌다. 차이티는 생강맛이 났고, 브라우니는 파파존스 브라우니랑 비슷한 당도였다. 따뜻한 음료와 극도로 달콤한 것이 들어가니 조금은 안정이 되었다.

휴대폰 없다고 계획을 날려먹기는 아까워서 브루클린 브릿지가 보이는 곳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마그넷, 키링 파는 곳이 위치마다 가격 차이가 있다더니 거의 똑같았다. 나는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그냥 뉴욕 느낌 하나도 안 나는 키링을 골랐다. 지폐가 안 세어질 만큼 손이 어는 바람에 결국 주인분이 대신 돈을 가져가주셨다. 너무 친절하셔서 더 사고 싶었지만 뉴욕 굿즈들이 다 내 취향이 아니다. 풍경은 너무 예뻤고 모두들 사진 찍기 바빴다. 그 속에서 울면서 풍경 구경은 열심히 하는 나. 1일 1울음 실천 중이다. 덤보가 있는 방향에서 시작점이 구도가 젤 예쁜 것 같다. 걷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싶어서 사람들이 가는 곳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거리가 참 예뻤다. 시청이 그렇게 예쁜 곳은 첨 봤다. 배터리파크도 온 김에 구경하려다 나중에 어둑어둑할 때 길 헤매면 무서울 것 같아 바로 여행사가 있는 타임스퀘어로 직진했다. 지하철 지도가 무료라는 사실을 알고 와서 참 다행이었다. 지하철 지도를 받고 지하철을 이용했다. 구글맵으로 찾는 것보다 덜 헤맸다. 지하철 타고 가면서도 매일 사건사고가 일어나는 내 상태에 대해 원망하고 또 서러워서 울었다. 맞은편 앉아있던 학생이 내가 우는 걸 자꾸 쳐다봐서 괜히 안 운 척 했다.

그렇게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타임스퀘어는 내가 고등학생때 너무 가고 싶어서 사진을 프린트해 다이어리에 끼워뒀던 곳이다. 그만큼 제일 오고 싶고 기대했던 곳이었다. 예쁘고 상상 그대로지만 마음이 안 좋아서 큰 감흥을 못 느꼈다. 공항에서 예약했던 투어의 여행사가 타임스퀘어 2층에 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나서 무작정 왔지만 타임스퀘어, 2층 이 두 가지 정보만으로 여행사를 찾기엔 무리였다. 한참을 뛰어다녀도 보이지 않아 한국인을 찾아다녔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 날 따라 동양인도 안 보였다. 결국 또 울면서 뛰어다니다가 담배 피는 중국인들을 봤다. 지나가는데 한국말이 들려서 뒤돌아보니 한국분들이셨다. 상황을 설명하고 구글맵을 빌렸다. 아저씨가 설명해주신대로 갔지만 못 찾았다. 혼자 이리저리 다니니 필리핀 여행사 직원이 문 열고 나와서 길 찾는 걸 도와줬다. 찾고보니 2층도 아니였고 간판도 없는 7층이었다. 여행사 직원분은 너무 친절하셨다. 밥 먹으려던 참이셨는데도 티켓 프린트도 해주시고, 노트북도 흔쾌히 빌려주셨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네이버 다 로그인이 안 되었고, 가족들에게 이 소식을 알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대강 에어비앤비 체험 장소 위치만 그림 그려갔다. 그 모습을 보고 구글맵으로 위치도 같이 추측해주시고 내일 또 오면 체험 진행 장소로 가기만 하면 되는지도 확인해준다셨다. 그저 생명의 구세주, 나의 빛. 아무튼 지쳤지만 숙소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여행사에서 만든 맛집 지도만 보고서 무작정 걸었다. 길 잃은 건데도 가고 싶었던 매그놀리아 베이커리도 우연히 발견했다. 센트럴파크가서 먹어야겠다 생각하고 위로 걷다 할랄가이즈 본점도 찾아버렸다. 거긴 떨어진 음식 주워먹는 비둘기들이 넘 많았다. 8달러였고 현금만 가능했다. 가다가 나홀로집에 2에 나오는 라디오시티 간판도 봤다. 많은 인파를 뚫고 센트럴파크에 무사히 도착했다. 센트럴파크 안내데스크에서도 지도를 받을 수 있었다. 어디든 지도가 잘 비치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원했던 아날로그 여행+영화 ‘나홀로집에’의 주인공 케빈 따라하기가 시작되었다. 비둘기 아줌마는 없었지만 갭스토우 다리는 영화 속 모습보다 훨씬 예뻤고 가을 빛이 많이 남아있었다. 갭스토우 다리랑 맨해튼 건물을 배경 삼아 매그놀리아에서 산 바나나 푸딩을 먹었다. 푸딩이 젤리 푸딩이 아니라 크림이 겹겹이 발린 카스테라였다. 나는 단 거 잘 먹어서 그런지 하나도 안 달았고 맛있고 새로운 조합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앉아 그 풍경을 멍하니 바라봤다. 넘 춥고 콧물이 질질 흘러나와서 다시 타임스퀘어로 향했다. 센트럴파크를 더 둘러 보고 싶었지만 넘 추웠다. 낮인데도 높은 건물들 덕에 해가 안 들어서 그런가 무척 추웠다. 그리고 가다가 월그린이 보여서 멜라토닌 2개, 수첩, 물을 샀다. 딱 필요한 것만 샀다. 왜냐면 이 날 내가 쓰기로 정한 돈은 많이 남았지만 살만한 게 없어서다. 그냥 약 종류 많고 화장품 파는 마트다. 크지 않은 마트인데도 물건 종류가 진짜 많았다. 직원분께 카메라 필름 있냐고 여쭈어봤는데 자기는 일한 지 얼마 안 됐다고 다른 직원분께 가서 친히 물어주셨다.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이 다 친절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케빈이 머물렀던 호텔도 원래 볼 계획이었다. 걸으며 호텔 이름을 간신히 기억해냈지만 위치를 몰랐는데 센트럴파크 바로 앞에 있었다. 진짜 영화에서처럼 벨 보이들이 호텔 문 앞에 대기하고 계셨다. 안에 들어가보고 싶지만 부담스러워서 멀찍이서만 봤다. 지나고보니 케빈이 다녔던 코스여서 마음에 들었다. 그렇지만 넘 춥고, 발도 아프고 지쳐서 숙소로 갔다. 지도에 익숙해져서인지 아님 폰이 없으니까 플래그를 더 유심히 보게 돼서인지 숙소까지 잘 찾아갔다. 숙소 찾고 나서 폰 고장난 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지하철역 바로 옆에 코닥이 보이길래 갔다. 필름도 다행히 팔았다. 정말 행운아다. 근 20달러였다. 요새 필름값 올라서 한국이랑 비슷한 가격이다. 0.1센트는 받을 생각도 없었지만 안 돌려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디서든 느낀건데 "Sorry"를 참 많이 쓴다. 지나가다 부딪힌 것도 아닌데 동선이 겹칠 뻔했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나도 사과를 잘하는 편이라 정서가 맞다고 생각했다. 숙소에서는 씻고 싶은데 얼음장만큼 차가운 물로 샤워할 엄두가 안 났고 사 온 음식(할랄가이즈)도 냉장고 넣어야 되는데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허락도 못 맡은 상태였다. 그래서 방문 앞을 왔다갔다하며 머뭇거리다가 얼른 씻고 쉬고 싶어서 똑똑 문을 두드리고 "Hello?"라 그랬는데 묵묵부답이었다. 어쩔 수 없이 쪽지를 써서 문 손잡이에 붙여뒀다. 그러고 너무 피곤해서 잠이 들었다. 똑똑 소리가 들리더니 "송희?"라고 부르셨다. 나가자마자 갑자기 화장실 불 켜는 법이랑 따신 물 켜는 법을 알려주셨다. 프로필 사진으로는 몰랐는데 키가 너무 크셔서 놀랐다. 왠지 물건이 다 위에 있더라니. 설명 다 하시고는 갑자기 "Nice to meet you"라고 인사하셨다. 잠결이라 얼레벌레 대답하고 다시 바닥에 코트 깔고 한시간 가량 자다 일어났다. 드디어 따신 물로 씻을 수 있겠거니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잠결에 들어서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났지만 이리저리 돌려보니 화상 입을 만큼 뜨거운 물이 나왔다. 또 조금 돌리니 얼음장같이 찬 물이 나왔다. 중간이 없는 온도였다. 미국식 화장실은 원래 이런걸까? 진짜 불편하다. 숙소도 라디에이터 하나 없고, 고속도로 바로 옆인데다가 창문과 방 사이에 있는 천 하나가 바람을 막아주는 유일한 장치라 너무 추웠다. 하루종일 추운 곳에서 벌벌 떨고 왔는데 찬 물로 씻어야 했고 잠자리마저 추웠다. 휴대폰 디스플레이 나간 건 둘째치고 당장 모든 게 편안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너무나 지친 나는 곤히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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