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주먼지 Jun 09. 2024

폭발

해외에서의 갑작스러운 잠수 ?!

2022. 11. 18

Day 3. 숙소 - 타임스퀘어 - 여행사 - 록펠러센터 스케이트장 - 배쓰앤바디웍쓰 - 그랜드센트럴터미널 - 주니어스 치즈케이크 - 블루보틀 - 록펠러센터 탑오브더락 전망대 - 파이브가이즈 - 타겟 - 숙소



오늘은 눈 뜨자마자 어제 안 먹고 냉장고에 넣어둔 할랄가이즈를 먹었다. 할랄가이즈가 여기서 지금껏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소스는 핫소스랑 하얀 소스가 있었다. 안 뿌려도 간이 짭짤해서 뿌려 먹진 않았고 소스 맛만 봤다. 핫소스는 고추장같았고, 하얀 소스는 타르소스같았다. 뉴욕 온 이후로 체력적으로 너무 지친 탓인지 입맛이 없어서 절반이나 남겼다. 여기는 길거리에도 쓰레기통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거기다가 버렸다.

그렇게 준비까지 마치고 나니 여행사에서 보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 되어가서 바로 출발했다. 업무 외의 일도 해주시는거라 어제 봐뒀던 타겟을 들러서 과자선물세트를 샀다. 지도 보고도 길을 조금 헤맸지만 헤매다보니 찾아졌다. 내가 따로 예약했었던 슬립노모어라는 극장 위치도 부탁하니까 흔쾌히 프린트해주셨다. 그저 빛, 나의 구세주. 에어비앤비 체험 위치까지 같이 추측해주시고,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연락도 해주셨다. 오늘 그 연락에 대한 답장 들으러 온 건데 답장이 없으셨다고 했다. 여기서 안 도와주셨다면 나는 연극도, 에어비앤비 체험도 노쇼했겠지. 정말 너무너무 감사했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한테 폰 고장났다는 소식을 못 전해서 걱정할까봐 피씨방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피씨방 유무도 모른다고 하셔서 포기했다. 이기적이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생각하실거라 믿으면서.

오후에 전망대를 예약해둬서 록펠러센터 위치를 미리 알아두러 갔다. 나홀로집에 2에서 나온 록펠러센터 앞의 스케이트장도 봤다. 스케이트를 잘 못 타는 아이들은 스케이트 날이 달린 거대한 핑구를 잡고 탔다. 너무 귀여웠다. 이때가 11월 18일이었는데 록펠러센터 대형 트리는 설치 중이었다. 11월이라 볼 거라는 기대는 안하고 왔지만 막상 규모를 보니 완성작을 못 봐서 아쉬웠다. 전 날 길을 헤매면서 내가 갈 예정이었던 모마미술관도 봤기에 무작정 기억 속의 모마로 향했다. 길을 또 잃어서 한참을 걷다가 맨해튼 중반부에 있는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까지 보고 왔다. 한국에서 대략적인 일정을 짤 때 원래 오늘 갈까 생각했던 곳이었다. 운명이다. 추워서 얼 것 같은 순간에 배쓰 앤 바디웍쓰도 발견해서 들어갔다. 휴대폰이 없는 여행은 발견하면 무조건 그 때 가야한다. 또 못 볼 지도 모르니까. 들어가자마자 러쉬 강남점 직원 바이브의 직원이 나한테 뭐 뿌려주면서 행사제품 홍보를 하셨다. 이런 가게는 원래 이런 성격 유형의 직원들만 뽑는건가? 향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향들이 다 강해서 맡다보니 그 향이 그 향 같았다. 에어팟 케이스처럼 손소독제 케이스도 팔았다. 그건 좀 귀여웠다. 5개 사면 8$라더니 10개 샀는데 돈 1달러 남짓 더 줬다. 세금은 불포함이었나보다. 계산할 때 나한테 여기 사냐고 물어봤다. 아니라 그러니까 이메일을 물어보셨다. 아직도 계속 광고 이메일 온다. 이메일 안 알려주는 거 추천.

길 잃는 바람에 모마 둘러볼 시간은 안 될 것 같아 모마 찾는 길에 봤던 파이브가이즈를 먹기로 계획했다. 근데 또 지하철 반대로 탔다. 지하철도 반대로 한 번 탔고 무작정 방향 없이 걷다보니 점점 타임스퀘어랑도 멀어지는 것 같았다. 도심으로 오니 다들 바빠보이고 헤드셋이나 에어팟 끼고 있어서 길도 못 물었다. 그렇게 엄한데 체력만 소비했다. 결국 지도를 펴고 스트릿 번호를 봤다. 내가 자꾸 두리번거리니까 옆에 계시던 남자분이 "도와줄까?"라 먼저 물어보시더니 친절히 길을 알려주셨다. 알려주신대로 열심히 가고 있는데 한 블록 뒤까지 쫓아오셔서 58st까지 가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다. 샀던 배쓰 앤 바디 웍쓰라도 하나 드리는건데 미처 생각도 못했다. 하는 일 모두 잘 되세요. 록펠러센터 전망대인 탑오브더락 예약시간까지는 시간이 좀 비어서 파이브가이즈를 찾아 헤맸다. 분명 봤었다. 있었다 생각한 곳에 갔지만 없었다. 오기가 생겨서 그 근방을 구석구석 다 돌았지만 결국 못 찾았다. 횡단보도에서 내 옆에 있던 소녀한테 물어봤으나 모른다고 했다. 현지인 맛집은 아닌가? 이때 발이 너무 아파서 아무리 예쁜 풍경이라도 다 필요 없고 그냥 숙소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전망대 예약은 해뒀기에 아까워서 버텼다. 돌아다니다가 160년 된 인형가게도 발견했다. 물만 부으면 눈이 되는 가루도 봤다. 갖고 싶었지만 비쌌다. 또 걷다가 오바마 대통령이 단골이었다던 주니어스 치즈케이크를 발견했다. 직원분이 예쁘게 웃고 계시고 너무나도 친절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플레인맛으로 하나 테이크아웃했다.

할 게 없어서 록펠러센터에 일찍 들어왔다. 건물 내에 블루보틀이 있길래 또 우연찮게 먹게 되었다. 우연도 우연이지만 그냥 타임스퀘어 근방에 유명한 거 죄다 몰려 있어서 그렇다. 숙소를 이 근방으로 잡으면 접근성이 좋을 것 같다. 블루보틀엔 앉을 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난 또 블루보틀을 발견할거라는 보장이 없기에 음료를 주문했다. 카페라떼가 맛있대서 그거 시키고 오트밀크로 바꿔달랬다. 오트밀크 완전 프로틴 곡물 맛이다. 그리고 이름 말해달랬는데 영어 이름 또 생각 안 나서 내 이름 마지막 글자인 “희”라고 했다. 그냥 아무 영어 이름이나 말하면 될 걸. 나도 이런 내가 이해가 안 간다. 록펠러센터 건물 안에 탑오브더락 기념품샵도 있다. 마그넷이 비싸도 살 의향이 있었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난 탑오브더락 티켓 프린트한 종이만 갖고 있었고 실물 티켓으로 바꿔야 되는 줄 알고 입구에 서계시는 직원분께 여쭈어봤다. 안내데스크 가서 다시 요청하라고 하셨다. 그 분들께 똑같이 말씀드리니 못 알아들으셨다. 그랬을만도 하다. 실물 티켓이 영어로 real ticket인 줄 알고 계속 real ticket을 외쳤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가 갖고 있는 건 가짜 티켓이게? 지금 생각하니까 그 분들 좀 당황하셨겠다. 프린트물만으로도 입장 가능하다셨지만 간 김에 실물 티켓으로 교환도 했다. 그러고나니 예약시간까지 1시간이 남았다. 아무리 빈둥대도 시간이 안 갔다. 다리는 아파서 도저히 못 걷겠다는 마음이었다. 다들 바닥에 앉아서 뭘 먹길래 앉아도 되는 분위기인가 싶어서 구석에 들어가 잠시 바닥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할부지가 자기는 바닥에 앉아있는거 싫어한다고 일어나라고 한마디 하고 가셨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밖으로 나가서 아무 카페나 가버리면 될 걸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 때의 난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생각이란 걸 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직원분께 언제부터 입장 가능한 지 물으니까 지금도 들어갈 수 있댔다. 진작 물어볼 걸. 나는 내가 3시 일몰 타임으로 예매해서 그 때부터 입장 가능한 줄 알았다.

보안검사도 했다. 1층에서 사진도 찍어주지만 난 거절했다. 도저히 웃음이 안 나왔다. 울어라고 하면 바로 울 수 있었겠지만. 엘리베이터 타고 67층까지 올라갔다. 높아서 귀가 먹먹했다. 도착해서 전경을 둘러봤다. 북쪽에는 센트럴파크가 있었다. 그 외의 풍경들은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빌딩이 정말 높고 가지런히 정리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맨해튼의 동쪽은 반짝이는 바다와 다리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맨해튼의 남쪽에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메트라이프 글자가 적힌 건물이 기억난다. 해가 거기로 떨어져서 맨해튼 남쪽만 몇 시간이고 봤었다. 기억이란 게 참 무정하지 그렇게 몇 시간이나 봤으면서 두 달 지났다고 풍경이 기억도 잘 안 난다. 일몰 시간이 한참 남아 풍경을 멍하니 바라만 보다가 다리가 아파서 소파에 앉아 일기를 썼다. 두 달 이후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건 휴대폰 고장난 이후로 윌그린에서 산 수첩을 매일 가지고 다니면서 기록했기 때문이다. 뉴욕에서의 시간을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 뿐이었다. 기억을 되살려 마저 못 쓴 일기를 쓰고, 일몰시간인 4시 10분 전부터 기다렸다. 다리가 너무 아팠다. 추운 곳에서 한참 기다릴 자신이 없어서 야외는 포기하고, 실내인 67층에서 명당자리를 찜했다.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셔터가 안 눌러졌다. 필름 10장 정도 남은 상태라 필름 걱정은 안 했는데 말이다. 카메라가 이상한 것 같았다. 너무 황당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냥 이런 황당한 일의 연속이었기에 '또 이렇네'라 생각하고 금방 체념해버렸다. 내가 구경하던 곳이 예뻐서 사람들이 사진 찍으러 많이들 왔다. 그럴 때만 비켜주고 눈만 빼꼼히 내밀고서 해가 지는 순간부터 노란 빛이 번지는 순간까지 모두 지켜봤다. 깜깜해진 야경을 한참이고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전기세는 다른 사람이 내고 돈은 전망대 사람들이 버네. 부럽다. 여기는 지구의 날 없나? 그런 날엔 누가 밤에 전망대를 보러 올까? 강제 당일 휴업일까? 손해가 막대하겠다. 전망대 구경하고 있는데 정전 나서 야경을 못 보게 되면 손해배상을 해줘야 되나?’ 근데 한국와서 알게 된 건 이 전망대 주인인 록펠러 재단이 사회 환원 사업으로 뉴욕 시민들의 수도세를 다 내고 있고, 록펠러 가문의 며느리가 맨해튼 시민들한테도 미술을 보는 눈을 키워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차린 미술관이 모마라고 했다. 내 앞가림이나 잘해야겠다. 춥고 다리 아프고 감흥도 없어서 야외로 나가보지 않고 내려왔다. 나오면 기념품샵을 꼭 거쳐야 한다. 관광지는 관광지다.

나는 이 날 술이 너무 먹고 싶어서 양주, 와인 파는 집 보이길래 망설임없이 들어갔다. 근데 보이는 것마다 다 무알콜이었다.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무알콜 가게라고 했다. 무알콜의 효능에 대해 길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알코올이 필요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는데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그 얘기 듣고 웃으셨다. 전 슬퍼요. 다른 가게 가서 사려고 마음 먹었다. 하필 오늘 딱 가방을 바꿔서 여권을 숙소에 놔두고 왔다. 세상이 날 거부한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나를. 지하철역에 가기 위해 타임스퀘어를 거쳐갔다. 노숙자가 'Fuck you. Give me the money.'라 적힌 종이를 앞세워 구걸을 하고 있었다. 뻔뻔한 문구가 웃겼다. 가다가 타겟이 생각나서 타겟으로 향했다. 또 길을 잃었다. 또 그러다 우연찮게 파이브가이즈를 발견했다. 낮에 그렇게 찾아다녔을 땐 안 보이더니. 패스트푸드점이 맞나 싶을만큼 계산 줄이 안 빠졌다. 앞에 4명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체감상 10분은 기다린 것 같다. 직원이 불친절했다. 뉴욕 와서 만난 첫번째 불친절한 사람이라 모든 사람이 친절한 게 아니라 내가 친절한 사람만 운좋게 만났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little bacon cheese burger에 버섯 빼고 시켰다. 이때도 입맛이 없어서 내일 먹으려고 테이크아웃해갔다. 타겟을 들러 물, 시리얼 세트, 초바니 요거트, 캣닢 든 고양이 장난감을 샀다. 오레오 생일케이크맛이랑 칩아호이 다 사고 싶었지만 대용량으로만 판매해서 못 샀다. 그리고 술 코너엔 양주 하나 없고, 맥주만 잔뜩 있었다. 술 사러 갔다가 다른 것만 잔뜩 사버렸다. 여기 카운터 직원은 너무 산만했다. 계산에 집중 안 하고 자꾸 옆 직원에게 말 걸어서 짜증났다. 지하철은 무사히 잘 탔지만 환승할 때 반대 방향거 탄 줄 알고 내렸다. 내리고 나서 잘 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숙소 도착하자마자 여권 챙겨서 술을 사러갔다. 유대인 동네라 안 팔 줄 알았지만 있었다. 난 잭다니엘 다운홈펀치맛을 샀다. 여권 검사를 안했다. 괜히 헛걸음했네.

그리고 숙소에 앉아서 엄마랑 어제 아침에 전화했으니까 아직은 노느라 바빠서 안 찾는거라 생각하겠지만 내일이 되면 진짜 걱정할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내일은 피씨방 먼저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와중에 내 폰에 진동이 울렸다. 기능을 아예 못하는 줄 알고 있었던 상태라 기능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디스플레이가 나갔기에 전화를 받지 못하고서 통화가 끊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폰 ai인 시리를 불렀는데 작동했다. 엄마 이름이 너무 길어서 시리가 인식을 못한 탓에 언니한테 전화를 했다. 영어 안내 문구만 빠르게 스쳐지나가고 끊어졌다. 그렇게 한참 시리를 불렀다. 포기하려던 찰나에 외국에서는 나라 번호부터 입력해야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결국 연결이 됐고 엄마가 너무 걱정했다고, 언니가 내가 보낸 숙소 사진만 보고 에어비앤비에서 숙소 찾아가지고 호스트한테 연락까지 했다는 얘기를 듣고, 걱정했을 그 마음이 느껴지고, 너무 미안해서 울었다. 나는 하루 연락 안 됐다 생각했지만 엄마는 이틀밤 내내 연락이 안 된거라고 했다. 나는 돌아다니면서도 마음 한 켠에는 걱정할텐데 어떻게 연락하면 좋을까를 계속 궁리했었다. 그래서 오늘 풍경을 더 못 즐겼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시리가 너무 고마웠다. 폰 디스플레이가 나갔다면 시리를 불러보세요. "시리야~“ 생각해보면 여행 시작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울었다. 도움을 선뜻 구하는 성격이 아닌데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버렸다. 게다가 끊임없이 실수하고 뜻대로 되는게 하나도 없어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정신을 가다듬으려 해도 자꾸만 어긋나는 상황에 그만 정신줄을 놓아버린거다. 앞으로 3일이 남았다. 남은 시간동안은 예약이 꽉 차있어서 어떻게든 흘러갈 것 같다. 솔직히 즐기지는 못하겠다. 이 여행이 이렇게 흘러갈 걸 알고서 다시 할 거냐 묻는다면 나는 안할거다. (안락한 지금의 나는 하고 싶다. 대신 많이 보려고 하지 않고 여유를 더 가지고서 즐길 것 같다. 나는 돈 없는 단기 여행자라 하나라도 더 보려는 욕심만 컸다.) 내 인생 최고로 힘들게 지나간 여행이다. 아무리 맛있는 걸 들이밀어도 입맛이 없고 아무리 예쁘다는 걸 봐도 감흥이 없다. 이때 느낀 건 뭘 먹든 뭘 보든간에 중요한 건 마음과 체력이라는거다. 어쩌면 이게 인생의 큰 교훈일지도 모른다. ​

이전 03화 어긋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