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체험날, 호스트는 어디 ?!
2022. 11. 20
Day 5. 숙소 - 타임스퀘어 LKTS - I love NY - M&MS - CENTURY 21 - 뮤지컬 CHICAGO - I love NY - 허쉬 - 스타벅스 - I love NY - 숙소
거지같은 시작.
어제 너무 피곤해서 다래끼가 생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푹 잘 잔 날이라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거라 기대했지만 진짜로 생겨버렸다. 뉴욕에 온 이후로 불평이 늘은 것 같아서 감사일기를 좀 써보겠다. 다래끼가 크게 부어오르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아침으로는 주니어스 치즈케이크랑 초바니 요거트를 먹었다. 치즈케이크는 빵이 명목상 있고 치즈가 대부분이라 맛없을 수가 없었다. 치즈는 그냥 연유맛이었다. 먹다보니 넘 느끼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겼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물 온도 설정을 못해서 찬물로 씻었다. 오늘은 한국에서 예약해둔 에어비앤비 체험인 ‘타임스퀘어에서 사진 촬영’이 예정되어 있던 날이었다. 하필 오늘따라 피부화장이 다 뜨고 아이라인도 마음에 안 들게 그려졌다. 전 날은 피부에 광이 돌 만큼 화장이 잘 먹었는데 말이다. 아이라이너도 다 썼는지 갑자기 안 나와서 요상한 상태로 화장이 마무리되었다. 카메라필름 가게가 이 시간쯤이면 열었겠다 싶어서 필름을 빼고 가기로 했다. 레버가 뻑뻑하게 돌아가다가, 안 돌아가고 자꾸 빠지기만 해서 또 시간이 한참 소요됐다. 별 수 없이 필름을 날릴 각오를 하고 덮개를 열었는데도 안 됐다. 그러다 또 어찌저찌하니 필름이 다 감겼다. 지하철역 옆에 있는 코닥에 필름을 사러 갔다. 오전 10시 반인데도 안 열려있었다. 아침부터 헛수고만 몇 번째인지!
그리고 지하철 M노선을 탔다. 원래라면 타임스퀘어역까지 가야하는 노선인데 바로 다음 정거장에서 내려야 했다. 환승역에서는 어떤 남자가 쓰레기통을 6번이나 발로 찼다. 지하철도, 사람도 정말 종잡을 수 없는 뉴욕이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일기를 쓰다가 깨달은 건 오늘 미술관 ‘모마’에 가려했는데 티켓을 숙소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사인 앳홈트립에 모마 티켓 프린트하러 타임스퀘어에 갔다. 주말에는 영업 안 해서 문이 닫혀있었다. 이정도면 세상이 날 괴롭히는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앳홈트립에서 전에 에어비앤비 사진 촬영장소 표시된 종이도 주셨는데 그것도 잃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오늘이 사진 촬영날인데 말이다.
촬영시간은 저녁이라 그냥 LKTS에서 티켓을 사서 뮤지컬을 하나 보기로 결정했다. 티켓 오픈 시간이 얼마 되지도 않았을 시간이었지만 줄이 꽤 길었다. 추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내가 원래 보고 싶었던 알라딘이나 라이온킹은 없었다. 이름을 들어봤던 킹키부츠를 보려했지만 그것도 내가 티켓 끊을 차례가 되니 매진이었다. 그래서 시카고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할 게 없어서 관광객들만 가는 NY LOVE 가게에 들렀다. 지금껏 못생긴 굿즈들만 봐서 기대를 안 했다. 그런데 꽤나 마음에 드는 양주잔도 발견하고 마그넷과 볼펜 3개 세트도 샀다. 근데 볼펜이 made in korea였다. 외국까지 와서 국산품 사가는 애국자. 또 관광객들 필수 코스인 M&M's에 갔다. 사진부스가 있었다. 카드를 넣었는데 자꾸 오류가 나서 사진부스 밖에 계신 분께 도움을 요청했다. 알고보니 유심 방향을 상하 반대로 꼽은 거였다. 뉴욕에 있는 사진부스는 죄다 안에서 찍는 화면이 밖으로 생중계된다. 너무나 수치스러웠지만 한껏 예쁜 척해보았다. 하지만 사진 찍히는 타이밍이 너무 느려서 죄다 움직이다만 표정으로 나왔다. 마지막 사진은 다 찍은 줄 알고 두리번거리던 중에 찍혀버려서 밖에서 사람들이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폐쇄적인 한국 사진부스가 그리웠다. 화질도 구리게 나왔다. M&M's에서는 립밤세트와 소주잔 용으로 작은 컵을 2개 샀다. 술을 즐겨 먹지도 않으면서 여행 당시에 술이 땡기는 순간이 많아서인지 술잔만 3개를 샀다. 그리고 사진부스 근처에 한국 여자분들이 보여서 고민하다가 에어비앤비 사진 촬영 장소 확인을 부탁드렸다. 사진부스 이용하시는동안 난 밖에 쭈그려 앉아서 지도를 따라그렸다. 예약 전에는 에어비앤비 체험이라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서 그냥 대강 그렸다. 흔쾌히 휴대폰을 빌려주신게 너무 감사해서 좀전에 산 볼펜 세트를 드렸다. 그리고 또 관광객 코스로 century 21에 갔다. 근데 그냥 한국 h&m 느낌이었다. 전신거울로 내 옷차림을 확인해보니 양말이 안 어울려 보여서 하얀색 털 양말을 장만했다. 뮤지컬 시작시간이 다 되어가서 극장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몇 블럭을 걷다가 지금 길을 잃으면 지각할 것 같아 지나가는 한국인 부부께 길을 여쭈어봤다. 날도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구글맵을 켜 친절히 길을 알려주셨다. 드릴만한 게 없어서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무사히 극장에 도착했다. 여기도 보안검사가 있었다. 이 날도 다행히 아무것도 안 걸렸다. 좌석표를 봐도 자리를 못 찾겠어서 두리번거리니까 직원분이 당장 달려와 친절히 자리까지 안내해주셨다. 자리를 보고 오늘 운은 여기에 다 썼다고 생각했다. 오케스트라석 6번째 줄에다가 chicago의 가운데 c랑 마주보는 딱 중간자리였다. 공연장 내부는 2층으로 되어있었고 인테리어가 고풍스러웠다. 연극은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었고 2부로 진행이 되었다. 소감을 줄줄 나열해보자면 배우가 사다리를 타서 2층에 있는 사람들도 가까이 볼 수 있게 한 점이 좋았다. 사다리를 세로로 접으면서 장면 전환을 암시한 것도 기억에 남았다. 지휘자도 연극에 참여시킨 점도 인상적이었고, 발성과 딕션도 좋으신 분이 연기할 때는 대사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다들 노래를 너무 잘하셔서 가수 무대를 보는 것 같았다. 귀가 호강했다. 대사를 전부 이해하진 못했지만 스토리는 주인공인 록시가 남편을 죽이고 바람핀 남자한테 벌금 대신 내게 하고 또 상황이 불리해지자 아기 생겼다고 거짓말을 쳐서 무죄로 풀려나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특히 주인공은 캐릭터를 너무 잘 살려서 연기 잘한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그 캐릭터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임한올님 유튜브에서 여러번 봤던 장면을 실제로 볼 때도 넘 짜릿했다. 또 기억에 남는 건 사람들의 리액션이었다. 내 오른쪽 자리에 앉으신 신사는 바람핀 남자 배우 지인인지 그 분이 나올 때마다 브라보를 남발하셨다. 그리고 웃음포인트가 나오면 모두들 거리낌없이 박장대소하셨다. 웃는 이유 모르지 않으려고 진짜 집중해서 봤다. 1부 끝날 무렵에는 절대 지루해서가 아니라 몸이 지친 탓에 잠이 와서 눈이 절로 감겼다. 배우들과 정면으로 눈 마주치는 자리라 죄송해서 진짜 다리 눌러가면서 참았다. 2부 때도 눈만 뜬 채로 버텼다. 실내가 조금 추웠는데도 잠이 쏟아졌다. 더 보고 싶지만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마지막에 인사할 때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기립박수 쳐보는 게 로망이었기 때문에 재밌었다.
너무 잠이 와서 숙소에 가고 싶었지만 에어비앤비 체험이 남아있기에 일단은 길을 나섰다. 너무 추워서 그냥 보이는 가게 아무데나 다 들어갔다. 사진 촬영있다고 계절감각없이 얇게 입은 탓에 따뜻한 곳에 들어가서도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렸다. 29번가에 있는 또다른 I love NY 가게를 들렀다. 여기가 예쁜 게 훨씬 많았다. 내 마그넷도 여기서 다시 보니까 넘 안 예뻐보였다. 한국에서 챙겨 온 볼펜 다 써가서 새로 하나 장만했다. 카운터에서 나보고 일본인이냐고 물으셨다. (이 날 일본인이냐는 얘기 2번이나 들었다.)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강남스타일 ~ 감사합니다”라고 하셨다. 역시 관광지는 다르다. 그리고 디즈니샵으로 향했다. 입구컷 하고 있길래 들어가도 되냐 물으니까 에스컬레이터 고장나서 오늘은 못 들어간댔다. 그러면서 내일 또 오라고 웃으면서 말하시는데 넘 잘생겨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다. 당시 일기장에 적어둔 속마음을 그대로 옮겨보자면 ‘그래 내가 내일 꼭 또 올게. 뉴욕에서 니가 얼굴 1등이다. 짱 먹어라.‘였다. 직원을 너무 잘 뽑았다고 생각했다. 에어비앤비 체험 예약시간이 2시간 정도 남아서 약속장소를 찾으러 다녔다. 타임스퀘어 부근만 진심으로 5번 돌았다. 40번가부터 49번가까지 싹 뒤졌다. 그러다 추위를 못 견디고 ‘허쉬’매장에 들어갔다. 입구에서 초콜릿을 나눠주셨다. 그래서 안 사고 나갈 수 없었다. 초콜릿 종류가 진짜 다양했다. 고민하다가 한국에서 못 본 핫코코아맛을 하나 장만했다. 체험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도저히 약속 장소가 감이 안 잡혀서 마음이 심란했다. 결국 한국인분께 휴대폰을 빌려 에어비앤비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흔쾌히 휴대폰을 빌려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하지만 갈피가 안 잡히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또 한참을 헤매던 중 어떤 흑인이 나한테 길을 물었다. 누가봐도 I love NY 적힌 가방 들고있는 관광객인데 길 물어보는 게 수상하고 사이비 특유의 사교성이 느껴져서 바쁘다며 튀었다. 내가 뉴욕에 얼마나 있었는지 알아서 뭐하게? 뉴욕에 사람도 많은만큼 사이비도 많다고 그랬다. 그렇게 몇 시간의 고군분투 끝에 결국 여기다 싶은 곳을 찾았다. 찾는동안 너무너무 추워서 몸이 벌벌 떨렸다. 양심없이 그냥 숙소에 갈까 싶었지만 이 추운 날 허탕치게 하기 미안해서 존버했다. 차라리 호스트 j가 탕 놓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지하게 극도로 힘들어서 갈 때 택시 탈까 고민할 정도였다. 여행이고 뭐고 그냥 한국 가서 따신 곳에서 따신 물로 샤워하고 안 느끼한 음식이 먹고 싶었다. 겨울이면 당연했던 일상이 갈망할 만큼 그리운 날이었다. 시간이 좀 남았기에 타임스퀘어점 스타벅스에 갔다. 줄이 길었고 자리도 없었다. 유튜버 융나님 영상 보고 먹어보고 싶었던 스트로베리 아사이를 주문했다. 베이스 음료를 레몬에이드나 물 중에 선택할 수 있었다. 말을 너무 빨리 하셔서 내가 못 알아들었다. 귀찮다는 태도로 응대하셔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음료는 되게 맛있었다. 베이스를 물로 해서 시원하게 넘어갔고, 딸기가 톡톡 씹혀서 먹는 재미가 있었다. 위에 올라간 말린 딸기도 맛있었다. 이 지점은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타임스퀘어에 있어서인지 노숙자가 진짜 많았다. 내 옆자리에도 앉아서 혼자 쉴새없이 중얼대셨다. 직원들도 나가달라고 정중히 수차례 부탁하셨다. 알겠다고 말해놓고 안 나가기 시전. (나중에 집 돌아가는 길에 그 노숙자 봤는데 수레 끌고 가는 아저씨한테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있었다. 당신 무서운 사람이었네.) 나는 굴하지 않고 일기를 썼다. 약속시간까지 일기를 마저 쓰려고 했는데 한국에서 챙겨 온 볼펜이 다 닳았다. 이 날 새로 장만한 볼펜도 새 것인데도 불구하고 안 나왔다. 교환하려면 2st를 걸어야 했기에 화가 났다. 영수증을 받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할 게 없어서 멍 때리다가 약속시간 10분 전부터 밖에 나가서 기다렸다. 1분만에 추위에 굴복하고 실내에서 기다렸다. 5분이 지나도 j의 ‘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약속장소를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어서 후보 2번이었던 장소로 달려갔다. j가 게스트를 15분까지는 기다린다고 했었기에 희망을 품고 갔지만 거기도 없었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다. ’j씨 추운데 미안하다. 근데 약속장소가 내가 간 곳이 맞았으면 당신 가만 안 둬,, 길 가다 한 번 넘어질 뻔 할거야. 아니다. 이 모든 게 폰 깨먹은 내 잘못이지.‘라고 당시 일기에는 적혀 있었다. 한국 와서 안 사실은 j씨가 그 날 안 온 게 맞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당일도 아니고 다음날 아침에 아파서 이제 일어났다는 메세지를 보냈다는 것. 어쨌든 이 당시에도 연유는 알 수 없었지만 하루종일 뭐한건가 싶어서 황당했다.
내일 타임스퀘어에 다시 안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꾸역꾸역 볼펜 교환을 하러 갔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없이 바꿔주고 “됐지?”라고 했다. 이 때 난 힘들어서 예민했기에 사과 한 마디 못 들은 게 불쾌하게 느껴졌다. 이 가게가 지하철역과 정반대방향이었기에 역까지 또 덜덜 떨며 한참 걸었다. 지하철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해당 노선 운행 안 한다는 안내 방송이 울려퍼졌다.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벙쪘다. 어떻게 한 번을 무사히 못 갈까? 그렇게 다른 노선 타고 무사히 도착했다. 아파트 현관 입구 잠금장치는 또 안 열려서 화가 났다. 다행히 몇 분 뒤 어떤 아저씨가 문 열고 나오셔서 넘 감사했다. 분리수거 하러가시는 것 같아서 문 잡아드렸다. 근데 아저씨도 나 먼저 들어오라고 문 잡고 계셨다. 서로 문 잡아주고 서로 고마워했다. 샤워할 때 온수 온도를 맞추느라 또 애쓰다가 운 좋게 처음으로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마쳤다. 물을 꺼버리면 다시 3개의 손잡이를 돌려 온도를 맞춰야 하기에 물을 켜 둔 채로 후다닥 씻었다. 오늘 무엇을 위해 얇게 입고, 화장이랑 고데기했나 싶었다. 첫 스냅 촬영이라 옷도 한국에서부터 고민 많이 하고 기대도 엄청 했어서 더 실망이 컸다. 하지만 당장 몸이 지쳤기에 몸을 누윌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난 그대로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