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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un 09. 2024

안정

혼자 스테이크집에서 코스 요리 먹기 ?!

2022. 11. 21

Day 6. 숙소 - 타임스퀘어에 있는 여행사 - 디즈니샵 - 트레이더조스 - 르뱅베이커리 - 갤러거스테이크 - 모마미술관 - 장난감가게 - 타임스퀘어에 있는 여행사 - 뉴왁공항



어느덧 새로운 주가 시작되었다. 이번주라고 하기에는 오늘이 뉴욕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새벽 5시에 알람도 없이 일어났다. 시차 부적응 덕에 강제로 부지런해지는 중이다. 눈 뜨자마자 침대 옆 스탠드만 켜둔 채 일기를 썼다.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고속도로가 있기에 새벽에도 활기차게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와는 대비되게 노란 빛의 조명을 받으며 푸근한 이불 속에서 일기를 쓰노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매일같이 적적하던 나의 새벽을 가득 채워주었던 이 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이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워서 책상에 놓여져 있던 방명록을 적었다. 번역기가 없어서 기억 안 나는 영단어 하나는 한국어로 적어뒀다. 호스트가 한국어 가능하다고 소개해놨으니 알아서 해석하리라 믿는다. 해외여행은 뽕을 뽑자는 주의라 저녁 비행기로 예약해뒀었기 때문에 오늘 나에게는 공항 가는 시간을 제하면 대략 7시간 정도가 있었다. 휴대폰을 깨먹기 전에 세운 계획은 뉴저지에 있는 아울렛인 ‘저지가든 몰’에 가서 하이틴 영화 속 주인공처럼 쇼핑을 왕창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는 방법을 알 길이 없어서 깔끔히 포기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아침부터 나의 발목을 잡은 건 다름 아닌 캐리어였다. 삼각대와 시리얼 박스가 자기주장이 너무 강해서 지퍼를 닫겠다고 30분간 캐리어와 씨름을 했다. 시작부터 진을 다 빼버렸다.

지하철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맨해튼으로 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겨우 손잡이 하나를 사수하고 창 너머의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침 태양빛을 고스란히 받아 빛나는 건물들과 반짝이던 바다가 평소보다 더 찬란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딴 생각에 잠겨있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 나서야 이상함을 감지했다. 왠지 washington square라는 환청이 들리더라니. 엘리베이터가 안 보여서 16kg 무게의 캐리어를 들고 반대편 계단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목적지였던 penn역으로 가는 길이 아니었다.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선이 조금 꼬이더라도 마음 편하자 싶어서 전에 갔던 캐리어 위탁소가 아닌 여행사로 향했다. 위탁소는 휴대폰 어플이 필수였지만 나는 휴대폰이 고장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여행사는 비용이 더 비쌀 것 같다는 고정관념에 얼마가 들 지 걱정이 되었다. 웬걸 당일만 위탁하면 무료란다. 이 여행사는 정말 내 여행의 구세주다.

르뱅쿠키의 원조를 먹고자 ‘르뱅베이커리’가 있는 지하철역에 내렸다. 근데 내가 휴대폰 깨진 덕에 위치를 몰라서 가기를 포기했던 ‘트레이더 조스’가 보였다. 심지어 2층의 커다란 규모였다. 신나는 마음에 당장 들렀다. 마트는 현지인들로 북적였다. 추수감사절이 며칠 남지 않아서인지 혹은 상시 파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칠면조도 있었다. 내 배 크기인데 근 $2여서 의외였다. 외국 마트는 우리나라처럼 비닐 포장재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하더니 정말이었다. 당근과 같은 야채도 비닐에 담지 않은 채 그대로 카트에 담는다. 환경을 위해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미국도 환경보호가 목적인지는 모르겠다. 분리수거는 안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카운터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용자가 많아서 계산하는 줄도 10분 넘게 기다릴 만큼 길었다. 그래도 몇 번 카운터로 가라고 안내해주시는 분도 계시고 꽤나 체계적이었다. 여기 장바구니용 에코백을 메고 다니는 언니들이 멋져보여서 나도 따라 장만했다. 그리고 유명하다고 들은 라벤더향 손소독제, 몇 가지 시즈닝, 엄마 선물로 줄 묽은 땅콩버터잼, 바나나 한 개를 샀다. 계산할 때 동전 세는 걸 어려워하니까 직접 동전을 가져가주셨다. 짤짤이를 처리해서 뿌듯했다.

‘르뱅베이커리’의 위치에 대한 나의 정보는 몇 번가에 있는지만 대략적으로 적혀있는 지도뿐이었다.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에 가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베이커리를 찾아 몇 블록을 빙빙 맴돌았다. 책가방의 무게에 점점 지쳐왔다. 결국 지나가는 할머니께 길을 물었다. 천천히 설명해주셨지만 말해주신 스트릿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정확히는 이해하지 못했다. 일단은 알려주신대로 몇 블록을 내려가서 다른 분께 다시 길을 여쭈어보았다. bakery를 bank로 알아들으셨다가 나중에서야 내 말을 이해하신듯 어떤 곳을 알려주셨다. 할머니께 길을 여쭤보았던 곳 근처를 말씀하셔서 긴가민가하며 가보았다. 말씀해주신 곳에는 levaine bakery가 아닌 lepain bakery가 있었다. 웃겼다. 마지막으로 지도상에 표시된 곳에 한 번만 더 가보고 없으면 관두기로 결심했다. 웬걸 몇 번이나 지나쳤던 곳이 르뱅베이커리였다. 반지하에 있었고, 생각보다 규모도 작고, 외관이 길 건너편에서 봤을 때 육아용품점 느낌이라 미처 몰랐던 것이다. 가게에 있는동안 손님이 끊이질 않았다. 난 쿠키 2개(오트밀레이즌쿠키, 다크초콜릿초콜릿칩쿠키)랑 따뜻한 카페라떼를 시켰다. 맛있다고 들은 오트밀 쿠키를 먼저 맛봤다. 단 걸 잘 먹는 편인데도 너무 달았다. 쿠키가 내 주먹의 2배 크기였는데 다른 쿠키는 맛도 못 보고 절반밖에 못 먹었다. 카페라떼로 중화시켜보려했으나 너무 뜨거워서 혀만 데였다. 당연한 소리지만 카페라떼 맛은 그냥 (한국에서 먹던) 카페라떼 맛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타임스퀘어역으로 향했다. 업타운에서 다운타운으로 넘어가는 구간이어서인지 지하철이 ktx마냥 속도가 빨랐다. 알고보니 두 정거장을 정차하지 않고 갔던 것이다. 내려야 할 곳을 놓친 나는 반대편행을 다시 타서 출발지로 되돌아갔다. 이게 뭐람. 덕분에 스테이크집 오픈시간 전까지 시간을 떼울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간 곳은 ‘갤러거 스테이크’였다. 런치가 비교적 저렴하다고 해서 이곳을 택했다. 들어가자마자 예약하지 않았고, 혼자 왔다고 말씀드리니 자리를 안내해주셨다. 웨이터가 갑자기 테이블을 끌어당기시길래 테이블 위치를 정돈하시는 줄 알았다. 알고보니 앉으라고 테이블을 빼준 것이었다. 대접받는 이 상황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메뉴판 구성을 이해하지 못해서 웨이터분께 메뉴판 설명을 부탁드렸다. 코스에다가 스테이크는 $18 추가되는 10oz Filet으로 주문했다. 그리고 탭워터(수돗물)말고 물을 주문하게 되면 유상이라고 들었었기에 나는 그냥 탭워터를 부탁드렸다. 코스는 식전빵-클램차우더(선택 가능)-스테이크-치즈케이크(선택 가능) 순으로 나왔다. 식전빵으로는 곡물 박힌 촉촉한 빵과 건강한 맛의 빵이 나왔다. 내 취향이 아니라서 조금씩만 잘라 먹고 내려놨다. 내 전담 웨이터가 있어서 내가 다 먹은 듯 보이면 알아서 다음 메뉴를 준비해주신다. 그 사실을 모르고 근처에 온 다른 웨이터에게 신호를 보냈다가 내 전담웨이터가 정해져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후에 여행카페에서 본 글이지만 다른 웨이터에게 부탁하는 건 전담웨이터에게 실례일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내 앞 테이블에 단체 손님이 왔다. 고개를 정면으로 하면 그 손님들이 쳐다본다고 착각할 것 같고, 양측으로 시선을 돌리면 웨이터들이랑 눈이 마주쳤다. 눈이 갈 곳을 잃은 덕에 일기를 적었다. 다음으로 나온 클램차우더는 맛있었다. 토마토소스 베이스에 해산물과 야채가 들어간 탕이었다. 흔한 토마토소스 맛이 아니고 특색있는 맛이었다. 단 걸 먹은 뒤라 더 맛있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 옆 테이블에도 모녀가 왔다. 서로 사진 찍어주는 모습이 너무 예뻤고 부러웠다. 이때 여행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외로움이 찾아왔던 것 같다. 대망의 스테이크가 나왔다. 굽기는 medium으로 했다. 겉에서 조금 탄 맛이 났지만 고기가 촉촉해서 맛있었다. 먹다보니 느끼해졌다. 다행히 함께 나온 토마토소스가 느끼함을 잡아줬다. 감자 퓨레와 야채 하나와 양념된 쑥 무침도 맛있었다. 양념된 쑥 무침이 한국에 와서 찾아보니 시금치였다고 한다. 여행동안 위가 줄은 탓인지 고기도 다 못 먹고 남겼다. 정말 목구멍까지 찼다. 하지만 내게는 치즈케이크도 남아있었다. 특별한 맛은 못 느꼈고 그냥 계피맛이 강했다. 토핑으로는 딸기 퓨레와 생크림이 나왔다. 일기장에 생크림이 맛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도 거의 맛만 본 수준으로 먹고 남겼다. 맛있는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 더 먹지 못한다는 게 슬펐다. 어쩌면 혼자 쉴새없이 먹기만 해서 더 배불렀던 건지도 모른다. 다 먹어갈 때쯤 계산 영수증을 가져다 주셨다. 볼펜은 따로 안 주셔서 내 볼펜으로 20%를 체크하고 합계를 계산해서 적어뒀다. 그리고 기다리니 단말기를 가져오셔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산해주셨다. 만일 스테이크는 먹고 싶은데 금액이 부담이라면 갤러거 스테이크의 런치코스(심지어 오후 4시까지 적용됨, 2022년 기준.)를 이용하는 걸 추천한다. 비싼 뉴욕 스테이크집 세상에 코스가 세전 $29다. 정말 가성비 최고다. 심지어 가게 분위기도 좋고 서버분들도 친절하시다. 하지만 혼자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건 꽤나 허전한 일이다. 식사에는 함께 맛 평가하며 호들갑 떠는 재미가 크다는 걸 느꼈다.

여행 마지막 코스로 뉴욕현대미술관, ‘모마’에 갔다. 입구에서 가방 검사를 하셨다. 쿠키를 보시더니 반입 안 된다고 하셨다. 여태껏 박물관, 극장에서도 안하던 사항이라 당황했다. 맛도 못 본 쿠키를 버리고 다시 가방 보여드리니 갑자기 “Oh, my god!!!!!”을 외치셨다. 가방에 바나나도 있었던 걸 깜빡한 것이다. 근데 그 호들갑스러운 멘트가 당시에는 짜증나서 사과도 안했다. 사과 안 한 게 정말 “Oh, my god!!!!!”할 일이다. 기분 안 좋다고 본인 일 열심히 하신 분께 무례하게 군 게 너무 죄송하다. 한국와서 찾아보니 근래에 누가 작품에 음식물 던진 사건이 있어서 음식 반입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예매해둔 티켓 프린트물을 보여드리고 입장했다. 사실 한국에서부터 유튜버 임한올님이 몇 작품 오디오 가이드 녹음하셨다고 해서 기대했지만 난 휴대폰이 고장나 이용할 수 없었다. 월요일인데도 관광지여서인지 사람도 많았다. 처음 둘러 본 곳은 현대미술 코너였다. 평소 미술에 식견이 있는 게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느낀대로 나열해보겠다. 화질 깨진 사진도 작품으로 걸릴 수 있다는 점. 똑같은 대상을 다른 각도에서 50장 찍어둔 공간. 작품을 액자에 넣지 않고 집게로 대강 집어둔 점. 우리나라 병풍처럼 접이식으로 표현해둔 작품. 인스타그램에서나 볼 법한 셀프캠 영상을 작품으로 구성했다는 것. 이정도가 인상적이었던 점이었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들을 보러갔다. 5층에 다 몰려있었다. 교과서는 늘 축소된 크기로 보기에 똑같은 그림이어도 실물은 다르게 다가왔다. 특히 앙리 마티스의 작품, 춤을 처음 보았을 때 든 생각은 ‘우와 크다!!!’였다. 그림을 가까이서 보니 얼룩덜룩한 부분도 보였다. 반면에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은 프린트한 것 같을만큼 색칠이 균일하게 잘 되어있었다. 그림에 대해 더 자세하게 보고나니 작품에 대한 분위기가 달리 느껴졌다. 그리고 모마에서 제일 유명한 작품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러갔다. 확실히 유명한 작품이어서인지 반 고흐의 다른 작품들은 오래 서서 보는 사람들이 적은 것에 비해 사람이 많았다. 4절지 정도 크기였다.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덧칠이 매우 두텁게 되어있던 점이다. 작품에 기울인 정성이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내가 모마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은 Tourmaline의 Salacia이었다. 영상이었는데 구성은 영상 촬영하는 모습이 먼저 나오고, 마지막에 여자가 정면을 응시하며 “너는 니가 원하는대로 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는 방식이었다. 영상의 분위기가 을씨년스러워서 집중이 잘 되었다. 폐쇄자막도 달아 누구나 영상을 파악할 수 있게 한 점도 좋았다. 그리고 의자 양측에 스피커를 배치해둔 게 신의 한 수였다. 마치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내부에 있는 기념품가게를 들렀다. 규모가 커서 놀랐다. 근데 미술관과 무관한 상품이 너무 많았다. 나는 앙리 마티스의 춤이 그려진 마그넷 하나를 샀다.

여행사에 가던 중 나홀로집에 케빈이 들렀던 장난감 가게같은 건물을 발견해 들어갔다. 트리 오너먼트만 파는 가게였다. 볼 하나에 $20정도였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비싸더라도 살 작정이었다. 하지만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빠르게 나왔다. 여행사에서 캐리어를 찾고, penn역으로 갔다. 공항까지 가는 길도 정확히 기억 안 나면서 여기 사람들은 길 잘 알려주니까 어떻게든 갈 수 있다는 배짱만 두둑했다. 안내데스크에서도 담당 업무가 아닌데도 물어도 된다며 나를 부르시고는 친절히 길을 알려주셨다. 티켓도 또다른 안내데스크 직원 덕분에 무사히 발권했다. 어디서 타는지 못 찾겠어서 또 물으니 친절히 설명해주셨다. 덕분에 무사히 탔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보였던 일몰이 너무 예뻤다. 내가 탄 칸에 나랑 어떤 제복입은 남자뿐이었다.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을 따라 내리려던 계획은 실패했다. 어디서 내려야 할 지 계속 두리번대니 먼저 말 거시더니 친절히 알려주셨다. 내리실 때도 다음에 내리면 된다고 한 번 더 알려주셨다. 나도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돕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마지막 관문은 터미널 넘버였다. 전에 내린 터미널 2에 내렸는데 운 좋게 맞았다. 캐리어 무게를 재고 체크인했다. 셀프로 하다가 안 되면 직원분들이 오셔서 도와주는 방식이었다. 여권 바코드를 찍으니 티켓이 나왔다. 나는 공항에 넉넉 잡아서 3시간 일찍 왔는데 탑승구에 도착하니 2시간이나 남았다. 국내선은 2시간 전에만 와도 충분할 것 같다. 한참 멍을 때리며 순식간에 지나갔던 일주일을 되돌아보았다. 탑승시간이 50분이 지연돼서 자다가 깨다가를 반복했다. 이제 긴장이 슬슬 풀려가서 그런 것 같다.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서도 쭉 잤다. 그렇게 애증의 뉴욕 이야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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