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시작
2022.11.15
여행의 시작은 언제부터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집에서 나서는 순간부터라고 생각한다. 9년 만에 찾은 인천공항이었다. 지난주에 처음으로 혼자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봐서인지 혼자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마지막 한식으로 내가 고른 음식은 바로 뉴욕 한인타운 맛집인 북창동 순두부였다. 뉴욕 가는 거면서 그새를 못 참고 호기심에 먹어버렸다. 특별한 맛은 못 느꼈다. 같은 체인점이라도 역시 지점 by 지점인가보다.
유나이티드 항공 체크인하는 곳으로 갔다. 탑승시간 3시간 전이었는데도 줄이 길었다. 3시간 전이면 넉넉하게 도착했다 생각하는지라 조금 놀랐다. 차례가 다가올수록 다른 항공사 줄인지 유나이티드 항공 줄인지 헷갈려서 앞에 서 계시는 남자분들께 여쭈어보니 유나이티드 줄이 맞다고 하셨다. 알고보니 그분들도 잘못 서 계신거였다. 데스크가 비어있길래 쭉 직진해서 갔다가 새치기하지 말라고 하셨다. 직진 길은 출구였던 것이다. 혼자는 처음이라 모든 게 뚝딱거린다.
한국을 떠나지도 않았지만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는 탑승구부터 키 큰 외국인들만 가득해서 낯설었다. 이미 외국에 온 것 같았다. 비행기 옆자리에 누가 탈 지도 굉장히 궁금하고 기대됐다. 지구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날, 같은 시간, 같은 행, 옆자리에 탄다는 건 운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옆자리에는 미국 유학중인 아들을 만나러 가는 한국인 부부가 타셨다. 두 분은 주무실 때를 제외하고는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분석하고 대화를 나누셨다. 낯선 공간 속에 한국어만 들리니까 긴장이 풀어졌다. 기내식-간식-아침 순으로 나왔다. 처음에는 잠이 안 들다가 절반쯤 갔을 때 단잠에 빠져서 아침도 못 먹었다. 으슬으슬 오한이 들었지만 푹 잔 덕에 일어나니 개운했다. 기내식은 치킨을 시켰는데 그냥 그랬다. 야채가 제일 맛있었다. 버터도 호주거길래 시도했지만 느끼했다. 버터니까 그렇겠지. 지루해서 내 뉴욕여행의 시발점인 영화 ‘나홀로집에2’를 보려 했으나 1만 있었다. 아쉬운 선정이다. 프렌즈 틀어놓고 있다가 미드 특유의 과장된 웃음소리 효과음 소리에 맞춰서 잠이 깨버리는 덕에 팟캐스트를 틀었다. 꿀잠행이다. 북극 항로로 가면 오로라도 잘하면 볼 수 있대서 기대했다. 하지만 출발부터 창밖이 안 보였다. 창밖 보는 거 좋아해서 일부러 창가자리 고른 거였기에 아쉬웠다. 뒤늦게 창문 밑 버튼을 발견했다. 늦게나마 정체불명의 버튼을 눌러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침 석양과 샌프란시스코 도착할 때쯤 보이던 파도와 광활한 대지, 산 능선과 시가지가 멋졌다. 그리고 이 비행기는 뜰 때 요란하지 않았다. 큰 비행기라 그런 것 같다. 굉장히 높게 난 덕인지 실제가 그렇게 생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대지가 더 광활하게 느껴졌다. 내려서는 바로 입국심사가 있었다. 하필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샌프란시스코에 세컨더리룸행 1순위인 무직, 20대, 여자라니.. 이 사실을 알기에 전 날 여행 계획 세우기보다 더 먼저 예상질문 목록을 먼저 만들었다. 입국심사관은 젊은 백인 남성분이셨다. 일단 밝게 인사하니까 웃는 얼굴로 맞아주셨다. 얼마 있냐, 며칠 머무냐, 혼자 왔냐, 어디 가냐, 돈 어디서 벌었냐 등 이런저런 질문을 하시다가 내가 바우처 프린트해둔 걸 발견하시고서 통째로 가져가서 훑어보셨다. 질문 목록도 읽어보시고는 누가 만들었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만들었다고 말씀드리니 알겠다며 납득하시곤 보내주셨다. 지문 인식을 할 때 내 손이 떨리는 것을 보고서야 내가 떨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캐리어를 찾으러 갈 때는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 따라갔더니 내 캐리어가 보였다. 근데 내 캐리어가 비교적 크기가 작았던 탓에 다른 캐리어 상단에 얹어진 채로 컨베이어 벨트를 돌고 있었다. 꺼내려고 시도해봤지만 역부족이었고, 캐리어 따라 같이 뛰다가 안 돼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때 어떤 흑인 여성분께서 멋지게 꺼내주셨다. 원래 꺼내기 힘들다는 말도 함께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내 영웅이다. 그리고 다들 캐리어 위탁을 하는 곳으로 줄을 서셨다. 나는 경유 시간이 길어서 그동안에 캐리어 분실될까봐 맡길지 말지 계속 고민했다. 나가는 길도 못 찾아서 반대로 갔다가 다시 출입 안된다며 직원분께서 막았다. 지도 보고도 길을 잘 못 찾겠어서 무작정 옆길로 걸었다. 가다보니 내가 찾던 샤워시설이 나왔고 그 옆에서 캐리어, 책가방을 $55주고 맡겼다. 내 여권 케이스 귀엽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분 좋았다. 그리고 장시간 비행에 꼬질꼬질해진 탓에 $25 주고 샤워도 했다. 샤워 30분 시간 제한이 있었다. 캐리어에서 짐 꺼내고 하니까 시간이 부족해서 화장도 못했다. 슬리퍼도 있고 어메니티가 잘 갖춰져 있어서 대접 받는 기분이었다. 이미 비행기가 1시간 지연됐기에 경유지에서 7시간 정도가 있었는데 그 중 1시간을 또 헤매고 샤워하는데 쓴 것이다. 유심칩 갈아끼울때도 안 빠져서 애먹었다.
그렇게 6시간이 남았고 나는 바트를 타려다가 리프트를 불렀다. 분명 차가 내 앞을 지나갔다고 지도에 떴지만 안 보였다. 주변에 계신 분께 여쭈어보니 위층으로 올라가야 되는 것이었다. 내가 부른 위치로 오는 한국의 방식과는 다를거라 생각 못한 것이다. 몇 분간 기다리게 한 게 너무 죄송해서 가방 잡고 달려갔다. 리프트 기사님께서는 계속 그 주변을 돌면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내가 가니 활짝 웃으면서 “How are you?"라고 물어주셨다. 나는 기다리게 한 게 너무 죄송해서 사과를 했는데도 괜찮다면서 친절히 대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향기도 좋았고 노래 선곡도 이국적이고 좋았고, 본인 사탕 드시기 전에 나한테도 하나 주셨다. 그리고 내가 바깥 사진 계속 찍는 것을 보고 계셨는지 예쁜 곳에서는 천천히 이동해주시고 내가 놓친 곳은 후진해서 찍을 수 있게 해주셨다. 택시 기사님들은 분 단위가 소중한데 기다리게 한 것도 너무 죄송했고, 무한한 배려와 친절에 감동해서 팁도 25% 드렸다.
비행기 이륙 3시간 전까지만 도착하겠다고 계획을 잡으니 내게 40분의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내린 곳은 롬바드거리였다. 맞은편에 보이는 모습이 더 기대했던 풍경이었고 롬브로단도 자체는 예쁘다는 생각이 많이 안 들었다. 맞은편에 보이는 풍경으로 무작정 걸어갔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길에 트램이 딱 도착했지만 교통카드가 없어서 아쉽게도 이용하지 못했다. 트램을 타고 거리를 돌아보는 것도 재밌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예뻐보였던 맞은편에 도착했다. 멀리서 보는 풍경만 예뻤던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안 가본 길로 무작정 걸었다. 그 거리가 다 예쁘게 생겨서 정신이 팔린 채 걸었던 것 같다. 아주 큰 개를 산책시키는 풍경을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노숙자랑 마약한 사람들도 종종 보여서 낯설었다. 타국에서 치안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 해가 져버렸다. 공항으로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는데 길치인지라 구글맵 위치를 따라가도 자꾸만 안 보이고 멀어지기만 하는거였다. 비행기 이륙 시간은 다가오고 길을 못 찾아서 정말 조바심이 났다. 행인한테 물어서 겨우 도착하면 버스는 이미 가버린 식이었다. 우연히 만난 한국 남자분이 찾는 거 도와주시고 버스 오는지도 확인해 주셨지만 결국 그 동네에서는 못 탔다. 비행기를 놓칠세라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한 시간에 8천보 나왔으면 말 다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조급하니 부끄러움 따윈 신경 쓸 겨를도 없고 그냥 가는 길목마다 길을 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물어물어 겨우 지하철 역에 도착했지만 내 교통카드로는 안 찍혀서 낙담했다. $10내고 시간에 쫓기느냐 아님 $100내고 마음의 안정 찾을까 고민하다가 비행기를 놓칠 수는 없어서 후자를 택했다. 여기서도 택시가 내 위치로 바로 오는 게 아니였다. 택시가 있는 곳도 못 찾아서 전화를 드렸지만 받지도 않으셨고, 다른 분께 길을 여쭈어봤는데 정확히 모르겠다고 하셨다. 정말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러다 길 물을 사람이 없어서 횡단보도 막 건너려고 하시는 여자분께 민폐인 거 알지만 여쭈어봤는데 너무 친절히 대해주셨다. 심지어 내가 너무 슬프다고 하니까 위로도 해주시면서 멀지 않으니 본인이 데려다준다고 하셨다. 그 따스함에 마스크 속으로 눈물이 흘렀다. 덕분에 무사히 택시를 찾았다. 나같은 길치는 감사함의 표시로 작은 선물이라도 들고 다니면 좋을 것 같다. 택시기사님도 꽤 기다리셨는데도 불구하고 불쾌한 기색 하나 안 비치시고 친절히 대해주셔서 감사했다. 눈물이 줄줄 흘러서 기사님께 창문도 열어달라고 부탁하고 바람을 맞으며 눈물을 말렸다. 길 헤맬 때 양복 입은 직장인 분들이 많이 보이시는 것을 보니 퇴근시간인 것 같았다. 이때부터 눈치 챘어야 했는데 퇴근시간이라 차 막히고 요금도 2배로 뛰었다. 20% 팁까지 더하니 원화로 20만원 나왔다. 어느 나라든지 간에 퇴근시간은 이동할 때 피하는 걸로. 시간이 촉박하다고 생각했기에 캐리어 위탁해둔 곳 찾아가는 길에 또 달렸다. 나도 길을 헤매는 중이었을 때 어떤 분이 내게 길을 물으셨다. 그제서야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캐리어를 찾고 보안검사를 하러 들어가는 길에 직원분이 ”How are you?"라고 물으셨다. 길 잃어서 슬프다고 하니까 더 나아질거라며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주신게 너무 감동이었다. 하지만 보안검사에서 걸렸다. 갑자기 어떤 분이 오시더니 여기서 몸수색하기 그러면 다른 곳으로 이동할지 아님 여기서 해도 괜찮을지 물어보셨다. 난 이미 모든 것을 체념한 상태였기에 그 자리에서 하기로 했다. 근데 진짜 손으로 구석구석 만지며 몸수색하셔서 민망했다. 안그래도 길 잃어서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몸수색까지 당해서 진이 다 빠졌다. 탑승장에 도착하니 2시간정도나 남았다. 좀 허무했다. 혹여나 늦을까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비수기에 국내선은 3시간전보다 더 늦게 와도 충분할 것 같다.
뜻밖의 고난덕에 설렘보다 막막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짐정리를 하다가 한국 유심칩도 잃어버렸다는 걸 자각했다. 하지만 별 타격은 없었다. 뉴욕여행 전에 액땜한다고 합리화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랐다. 그게 눈물의 시작인지도 모른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