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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먼지 Jun 09. 2024

지구 반대편으로 돌아가는길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의 하룻밤 노숙

2022.11.22



여행은 집 도착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새벽 1시를 훌쩍 넘어섰다. 새벽이어서인지 공항도 한산했다. 샌프란시스코가 경유지여서 수하물을 찾으러 갔다. 아무리 기다려도 마지막까지 내 캐리어가 나오지 않았다. 직원분께 여쭈어보니 인천까지 자동연결되었다고 하셨다. 인천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뉴욕을 갈 때는 수하물이 자동연결이 안 되고,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를 경유해 인천으로 갈 때는 수하물이 자동연결된다니. 자동연결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는건지 궁금했다.

샤워하고 싶어서 travel agency에 갔다. 24시간이 아니라 새벽 6시에 문을 연다고 적혀있었다. 그 앞에서 웬 중국인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중국어로 한참을 얘기하셨다. 내가 중국인이 아닐 것이라는 일말의 의심도 안 하셨나보다. 정말 내가 말할 틈도 안 주셔서 가만히 듣다가 영어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하니까 갑자기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으셨다. 내가 한국인인 걸 아신 이후에도 혼자 중국어로 중얼거리시면서 허공에 삿대질을 하셨다.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필요를 못 느껴서 떠났다.

공항 분위기도 살펴보고, 아침식사도 정할 겸 공항을 둘러보았다. 새벽에는 화장실 입구를 막아놓는 듯했다.

슈퍼디퍼 버거랑 웬디스가 후보에 올랐다. 둘 중에 뭘 먹으면 좋을지, 마지막이니까 둘 다 먹어버릴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잠을 좀 자야할 것 같아서 잘 만한 곳을 찾다가 비교적 밝고 트여있고 의자가 많은 곳을 발견했다. 불안함에 가방을 끌어안은 채 얼굴을 파묻고 자다가 나중에는 상체만 기울여 누운 채로 잠들었다. 4시간 가량을 그렇게 잤다. 깨고 보니 아까 봤던 중국인 할머니도 내 대각선에서 주무시고 계셨다. 6시에 샤워실이 문을 열기에 근처로 이동해 혼자 멍을 때렸다. 6시에 딱 문을 여셨다. $25를 내고 30분 만에 후다닥 샤워를 끝마쳤다.

아침시간이 되니 공항에 사람들이 많아졌다. 슈퍼디퍼 버거를 먹으러 갔으나 거기는 체크인 후 이용할 수 있는 다른 터미널 내에 있었다. 그리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웬디스는 파업중이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travel agency 옆에 있는 24시간 카페인 green beans coffee를 갔다. 딸바 스무디와 칠면조 샌드위치를 샀다. 공항 내여서인지 굉장히 비쌌다. 샌드위치는 기한이 적혀 있는 걸 보니 매장에서 만드는 게 아니라 편의점 샌드위치처럼 어디서 들여오는 것 같았다. 스무디는 정말 맛있었고 칠면조는 얇아서 누락됐나 착각할 정도였고 달걀은 짭짤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체크인을 하고 탑승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하지만 3시간이나 남아서 너무나도 지루했다. 더이상 쓸 일기도 남지 않아서 멍때리기를 반복했던 것 같다. 비행기는 2시간 가량 지연됐다. 우리나라는 입국절차가 미국보다 확실히 까다로웠다. 들어갈 때 사진도 찍어야 하고, 마스크도 식사시간 외에는 필수 착용이었다. 내 옆자리에는 중국인 부부가 앉았다. 마스크 속으로 마라향이 뚫고 들어왔다. 왜 한국인한테서 마늘향이 난다고 얘기하는지 알 것 같았다. 이륙했을 때 금문교도 보였다. 멀리서나마 봐서 만족스러웠다. 역시 창가자리가 최고다. 기내식으로도 칠면조 샌드위치가 나왔는데 원래 칠면조가 얇게 나오는 듯했다. 카페에서 먹은 거랑 맛이 똑같았다. 먹고 자기를 반복하다가 Call me Kat이라는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여주가 미란다 재질이라 재밌었다. 승무원분께서 한국에 내리는 사람들한테만 세관신고서를 나눠주셨다. 그 얘기를 못 알아들어서 나중에 직접 가서 받았다. 비행기에서는 항상 귀를 열고 있자. 그리고 한국인 승무원인 줄 알았는데 아닌 분도 계셔서 메뉴 물으실 때 그냥 영어로 다 대답했다. 한국인이실수도 있는 분께 영어로 말하니까 좀 머쓱했다.

드디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았으나 고장이 나있었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릴 때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일단 서울역으로 가는 공항철도를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꾸벅꾸벅 졸다가 내리는 방향을 착각해 서있었다. 근데 할아버지 두 분도 내 뒤에 서서 기다리시다가 문이 뒤에서 열리자 “여가 아녀~?”라 그러셨다. 웃음지뢰다. 역에 도착하니 기차가 5분 남아서 부랴부랴 티켓 끊고 바로 기차를 탔다. 타자마자 잠들어버렸다. 긴장이 풀려버린 것이다. 중간에 깼을 때 엄마가 걱정할 것 같아서 역무원분께 휴대폰을 빌려 연락을 했다. 엄마한테 늦게 연락했다고 혼났다. 그럴 만했다. 불효 여행이었다 정말로. 언제 뉴욕을 다녀왔냐는 듯 또 똑같은 풍경이 나를 맞았다. 정말 그 시간은 현실적인 긴 꿈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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