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사색_36 투박한 요리에 담긴 엄마의 진심
오랜만에 친정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원래 일주일 전에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아이가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갑작스레 약속을 취소했다. 아마 엄마가 준비한 여러 음식이 갈 길을 잃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꼭 친정에 가서 이제 곧잘 걸어 다니는 보석이의 재롱을 보여드릴 요량이었다. 그런데 웬걸, 일어나 보니 미세먼지 어플이 방독면을 쓴 얼굴로 '최악! 절대 나가지 마시오'를 외치고 있었다. 남편이 어제 퇴근길에 잠깐 걸었을 뿐인데도 금방 목이 컬컬해지더라고 했다.
창밖이 부옇다. 노약자는 외출을 삼가라고 한다. 차를 타고 적어도 3,40분은 이동해야 하는 데다 친정에는 공기청정기도 없어 보석이를 데리고 가는 게 망설여진다. 친정엄마, 아빠는 미세먼지 여부를 고려하지 않고 활동하시는 분들이다. 황사마스크를 잔뜩 사서 보내드렸지만 아마 고스란히 서랍 속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물론 공기가 나빠 보석이를 데리고 나가기 어렵다고 양해를 구하면 이해해 주시겠지만 죄송한 마음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만약 시댁과의 약속에서 같은 상황이었으면 먼지를 뚫고 나가는 선택에 대해 좀 더 심사숙고했을 테니까.
덕분에 다용도실 한구석에 엄마에게 돌려드려야 할 반찬통이 그대로 쌓여있다. 엄마는 보석이가 태어난 이후로 한 달에 한 번쯤 만날 때마다 나와 신랑이 먹을 수 있는 국과 찌개를 잔뜩 만들어 주신다. 메뉴는 늘 비슷하지만, 전쟁통 같은 육아 현장에 참으로 든든한 구호물자다. 친정엄마가 만들어준 우직한 미역국, 육개장에는 주문만 하면 몇 시간 안 되어 배달해주는 반찬가게의 음식에는 담겨있지 않은 무엇이 들어 있어, 보석이를 낳고 비어있는 내 몸의 어떤 곳을 채워주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엄마의 집밥이 이토록 아쉽지만, 결혼 전에 나는 엄마의 집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솥 끓여놓은 국을 며칠 동안 먹는 것도, 콩자반이나 뻑뻑한 멸치볶음 같은 투박한 반찬이 백날 나오는 것도 싫었다. 친구들의 엄마가 다양하고 맛깔난 도시락을 싸주시는 게 질투가 났다. 혼자 밥을 차려 먹어야 하는 날에는 대부분 엄마가 만들어둔 요리를 두고 라면을 끓여먹었다. 말로 반찬 투정을 한 적은 없지만 시위나 다름없는 행동이었다. 결혼하고 부엌일을 시작한 후에야, 엄마가 정성들여 만든 국을 몇 수저 떠먹고 그대로 싱크대에 버리던 내 무례가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돌아보면 엄마는 요리에 큰 취미나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었다. 확실히 엄마는 끼니마다 다른 메뉴로 입 짧은 딸의 구미를 맞추는 세련된 요리 감각을 지니지는 못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삼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참 한결같이 당신의 식탁을 차려냈다. '세 끼 밥'을 다 먹고 '밥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엄마의 신조 덕분에 우리 가족은 어떻게든 아침상을 먹고 나갔다. 가족들이 밥과 국을 얼마나 남기든 간에, 엄마는 변함이 없었다.
안타깝지만, 나 역시 요리에 취미도 소질도 없는 사람이다. 나와 신랑 둘이 먹을 음식이야 간단하게 차려내고 사 먹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고 이유식을 시작하려니 두려움이 앞섰다. 모유와 분유 외에 아무것도 먹어보지 않은 백지와 같은 내 아기에게 먹일 음식을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쌀을 믹서에 갈아 끓이는 쌀미음부터 한 발짝씩 공부해 나갔지만 워낙 기본기가 없어 요리할 때마다 엄격하게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했고, 본디 요리의 감각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보다 힘과 시간이 배로 들었다. 마음만은 이 작은 아기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가를 아주 작은 손실도 없이 최선의 방법으로 요리하고 싶어 허둥댔다. 꼭 공부 못하는 학생이 교과서 귀퉁이 참고자료까지 집착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모양새였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사이 이유식을 만드느라 이렇게 진을 빼고 나면 부엌도 나도 엉망이 되어버렸다. 잠에서 깬 아이에게 투박하지만 지금 막 만든 따뜻한 이유식을 먹이면 뿌듯하기는 한데, 설거지와 음식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부엌이 끔찍하게 느껴졌다. 더욱이 내 끼니를 챙길 여력이 남아 있을 리가. 국이라도 있으면 밥을 말아먹지만 그 마저도 없으면 거르거나 떡이나 라면으로 대충 때우고 싶은 유혹을, 요즘 들어 더 이기지 못했다. 모유수유가 끝나고 나서는 내 몸뚱이에 영양을 공급하는 일에 더욱 무심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먹은 짜파게티를 끓여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또 목구멍으로 쑤셔 넣으면서, 엄마를 떠올렸다. 내가 지금 아이를 위해 그러듯이 엄마도 나를 잘 먹이려고 이렇게 노력했을 것이다. 맛깔스러운 요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좋은 걸 먹이려고 매일 자신의 최선을 짜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머리가 엉키고 하얘져 손을 놔버리고 싶은 때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도 잠시 후 정신을 차려 나의 다음 끼니를 위해 부엌으로 향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엄마의 노력과 진심을 언젠가 알아주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하지만, 알아주지 않더라도 잘 먹고 건강하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내가, 이렇게 인스턴트로 끼니를 때우며 내 몸을 방치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때때로, 나는 나의 온 하루를 써 아기를 돌보는데 그럼 나는 누가 돌봐주나 하는 설움이 울컥 밀려올 때가 있다. 아무도 내 밥을 차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없이 서러워진다. 비 오는 날 아무도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혼자 울고 있는 어린아이처럼 무력해져서 아무도 몰라 주는 단식 투쟁을 할 때도 있다. 실은 엄마가 손에 쥐어 준 튼튼한 우산이, 가방 속에 있다는 걸 잊어버리고 말이다.
친정에 가지 못한 오늘, 보석이가 이다음에 커서 나처럼 철 없이 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위해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오랜만에 내가 만든 된장찌개를 두고 남편과 식사를 하다가, 친정에 공기청정기를 사드리자고 의견을 모았다. 전기세 많이 나온다고 잘 안 트실 수도 있지만 자식으로서 할 수 있는 조치를 해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보다는 보석이와 함께 얼굴 한 번 더 비추는 걸 환영하실 테지만. 내일이나 모레, 미세먼지가 걷혀서 친정에 밥을 얻어먹으러 갈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