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완벽하게 글을 쓸 수 있을까?
제리 율스만이라는 작가가 있다. 플로리다대학교 사진학과에서 가르칠 때 율스만은 수업 첫날 수강생들을 A, B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A 그룹은 한 학기 동안 사진의 '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제출하는 사진의 '질' 같은 건 보지 않는다고 했다. 오로지 촬영한 작품의 '양'으로만 성적이 매겨진다고 했다. 100장을 제출한 학생은 A, 90장을 낸 학생은 B, 80장은 C 이런 식으로. 반면에 다른 B 그룹은 한 학기 동안 사진의 '질'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 그룹은 제출한 작품의 우수성에 초점을 맞춰야 했다. 오로지 잘 찍은 사진의 '질' 로써만 평가를 할 거기 때문에 한 학기 동안 단 한 장의 사진만 제출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A를 받으려면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제출해야 했다.
학기가 끝났을 때, 율스만은 최고의 사진들이 모두 '양'에 치중한 A 그룹에서 나온 것을 알고 놀랐다. 이 그룹의 학생들은 수많은 사진을 찍고, 구도와 조명을 실험하고, 암실에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실수를 통해 배우느라 바빴다. 수백 장의 사진을 만드는 그 과정에서 기술을 연마했다. 실패의 경험들이 모여 재능이 되었다. 사진의 '질'에 초점을 둔 B 그룹은 완벽함에 대해 고민만 하다 모든 시간을 날렸다. 행동의 횟수가 행동의 질을 좌우한다.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완벽함의 적이다!
-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중에서
대학교 4학년 때 취업을 위해 위해 자기소개서를 썼다. 꼭 가고 싶은 대학병원이라 자기소개를 완벽하게 쓰고 싶었다. 일단 '저는'으로 내용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다음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계속 쓰고, 지우고 반복했다. 생각나는 경험은 많은데 막상 쓰고 보니 별로였다. 그렇게 1주일이란 시간이 흘렀고, 서류 제출 마감날이 되었다. 그날도 아침 일찍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김태섭 자기소개서' 파일을 켰다. 거기에 적혀있는 건 단 두 글자뿐이었다. '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제는 막 써 내려갔다. 마감날이라 그런지 아이디어 더 많이 떠올랐다. 다행히 마감 1시간을 앞두고 제출했다. 그리고 몇 달 후 '합격'이라는 연락이 왔다. 마감 당일 생각난 좋은 아이디어 덕분에 합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격했던 자기소개서를 보니 첫날에 썼던 내용과 비슷했다. 결국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한 내용이 합격했다. 오히려 완벽하게 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시간만 날렸다.
완벽하고자 하는 생각은 마무리도 어렵게 하지만, 시작하는 것도 힘들게 한다. 작년 7월 책 읽는 것에 습관을 들이고 싶어서 독서모임을 찾아봤다. 한 달에 회비를 작게는 2만 원 많게는 5만 원 정도를 내야 했다. 그 돈으로 모임날 맛있는 걸 사 먹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모임장에게 참여비로 내야 했다.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해서 주변에 나처럼 독서모임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을 찾았다. 8명이 같이 해보고 싶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라 부담스러웠다. 나는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방식을 몰랐다. 가장 큰 문제는 나 또한 책 읽는 습관이 없었다. 만약 시작했다가 제대로 못하면 괜히 욕먹는 게 아닐까?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갈 수 있을까? 수많은 고민이 생겼다.
응급실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교수이자 작가인 '남궁인' 작가님에게 물어봤다.
"제가 다른 사람들을 초대해서 독서모임을 하고 싶은데요. 문제는 제가 어떻게 운영할지 하나도 모르거든요. 교수님 아니 작가님으로써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려주세요"
"에이 뭐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 일단 해! 하고 나서 그런 생각해도 늦지 않아. 그냥 일단 모임 열어서 다 같이 책 읽다 보면 방법이 나올 거야"
작가님의 말을 들으니 용기가 났다. 그래서 일단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멤버도 20명 가까이 늘었다. 덕분에 책 읽는 습관도 들었고, 좋은 인연들도 많이 생겼다. 그때 만약 고민만 하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완벽하게 실패한다. 아니 어쩌면 실패를 안 할 수도 있다. 왜냐면 시도조차 하지 않은 사람에게 실패란 없으니까. 책을 읽다 보니 하고 싶은 목표가 생겼다. 평소에 책을 통해서 많은 도움을 받은 만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진열장에 내 이름이 적힌 책이 있는 걸 상상하게 된다. 어쩌면 감히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도?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먼저 완벽하고 싶다는 생각부터 없애야 한다. 글을 쓸 때 벽에 부딪치는 단 한 가지 이유는 글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못해서가 아니라 잘 쓰지 못한다고 절망할 때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특출함은 행위가 아니라 습관의 결과이다. 창조는 길고 긴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아래에 있는 그림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쓴 그림일기다. 어릴 적 쓴 일기처럼 좀 더 노력이 필요하더라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글을 많이 쓰고 싶다.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그냥 완성하라.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게 두라. 그들이 결정하는 동안 더 많은 작품을 만들라
- 미국의 팝아트 선구자, 앤디워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