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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섭 Sep 06. 2024

29살 서울에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내 인생 가장 큰 플렉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사람들이 내 집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로 보였다. 집을 사고 얼마간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미친 사람처럼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르는 사람한테도 대뜸 달려가 "혹시 집 있으세요?"라고 묻고 싶었다.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만약 집을 샀다면 그 집을 사기까지의 고생을 공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온전히 내 힘으로 해냈다는 희열감은 오래도록 가시지 않았다. 그전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무언가를 이루었지만 집을 샀을 때의 기쁨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내 자력으로 해낸 것이라 진정으로 무엇인가를 한 것 같았다.

- "쏘쿨의 수도권 꼬마아파트" 중에서  




 나는 25살까지 부모님 옆에서 지냈다. 덕분에 넓지는 않지만 적당한 크기의 아파트에서 대학생 때까지 편안하게 컸다. 졸업 후 서울로 취업해서 독립을 했다. 학생 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 500만 원으로 월세부터 시작했다. 5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었지만 만족했다. 하지만 출근할 때마다 보이는 주변 아파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언제 저런 곳에 살 수 있을까? 지나가다 본 곳들 중에서 그나마 저렴한 곳은 어딜까?' 당장에 못 먹는 감이지만 가격이라도 한 번 보고 싶었다.  


 직장 근처에 굉장히 허름해 보이고 층수가 10층도 안 되는 곳이 있었다. 주차장도 매번 이중 주차에 삼중 주차까지 했다. '오 저기다!' 물론 아파트는 신축이 좋지만 처음부터 바랄 수 있겠는가. 일단 구축이라도 서울에 내 집 마련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봐야지. 저 정도면 몇 년 동안 모아서 대출까지 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 아파트 이름은 ‘목동 6단지’였다. 네이버 부동산에 검색해 봤다. 30평 기준 매매 가격은 ‘20억대’였다.


"응? 이렇게 오래된 아파트가 20억이라고?"


 분명 1986년도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가격은 2086년 미래에나 있을 것 같은 아파트 수준이었다. 냉큼 네이버 부동산을 껐다. 하루에 밥을 한 끼씩만 먹어도 600개월을 꼬박 모아야 가능한 돈이었다. 600개월 나누기 12개월을 하면 50년. 그래, 반세기 동안 내가 서울에 아파트 살 일은 없겠구나. 빌라 월세 5평이라도 난 지금이 참 행복해. 너 나랑 평생 갈까? 주룩.


 오래간만에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의 첫 내 집 마련 이야기를 했다. 부모님은 부산에서 한 푼 두 푼 모아 연탄가스 새는 단칸방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살기가 어려워서 다 그랬다고 했다. 역시 나는 행복한 게 맞다. 왜냐하면 아직 혼자 사는데도 5평이나 되는 깔끔한 집에서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꾸 내 생각을 괴롭히는 게 있었다.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를 보면 고층 아파트에 통유리, 한강뷰 보이는 곳에 따사로운 햇빛, 널찍한 소파와 운동장 같은 거실이 나온다. 방은 또 어떤가. 침대방, 게스트방, 옷방, 화장실도 여러 개에 심지어 해리포터도 아니고 비밀의 방까지 있다. 미국 주택에 있는 방공호도 아니고 무슨 대한민국 서울 고층 아파트에 비밀의 방까지 있다니. 건설사 대표와 집주인도 나처럼 해리포터를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 같은 해리포터 덕후로써 물어보는데요. 저는 언제쯤 그런 비밀의 방이 있는 집에 살 수 있을까요? 꿈에서라도 저의 '비밀로 하고 싶은 방'이랑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제발.


 

 어쨌든 유튜브가 내 기분을 가해자 없는 피해자처럼 만들었지만 계속 풀 죽어 있을 수는 없었다. 부모님 세대에도 모두 단칸방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물론 기회는 희박해졌을지라도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집을 넓히기 위한 기회를 찾았다. 일한 지 1년이 지나자 전세자금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조금 더 넓어진 빌라에 투룸 전셋집으로 이사를 했다. 5평에서 10평으로 두 배가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친구들에게 '비밀로 하지 않아도 되는' 집이었다. 친구들이 놀러 와도 모두 앉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 우르르 8명이 몰려와도 모두 잘 수 있었다. 여기라면 평생 살아도 좋을 정도로 행복했다. 드디어 찾은 건가 나만의 러브 하우스.


 

 계절이 바뀌고 여름 장마가 왔다. 시원한 빗소리를 들으며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여유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주방 쪽 천장에서 물이 똑똑하고 떨어졌다. '응? 뭐야 갑자기 물이 왜?' 처음에는 천장에서 물이 새는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진짜 떨어지고 있었다. 수건으로 천장을 닦고 닦아도 계속 떨어졌다. 결국 바닥에 바가지를 가져다 놓았다. 바가지도 2시간에 한 번씩은 넘쳐서 비워야 했다. 옛날에 무한도전을 보면 정형돈 집에 물이 샌다고 다른 멤버들이 엄청 놀렸다. 그때는 나도 엄청 웃었지만, 진짜 실제로 겪어보니 너무 슬펐다. 안전해야 할 주거 공간에서 물이 떨어지니 너무 불안했다.


 바가지에 떨어지는 물을 2시간씩 계속 비우다가 출근 시간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두고 집에서 나왔다. 하늘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밖은 여전히 세차게 비가 오고 있었다. (그건 분명 내 눈물일 거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집에 가면 그곳은 홍수 바닥이겠구나' 하는 생각에 일이 될 리가 없었다. 다행히 집에 들어가기 몇 시간 전에 비가 그쳤다. 퇴근하고 집에 오니 바닥에 물이 흥건했고, 축축해진 바닥을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천장을 고치는 대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본인이 해외에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 잘하는 업체 찾아서 보내겠다. 외벽에 금이 가서 그런 거면 우리 집 말고 다른 집들도 연관되어 있을 수 있으니 더 기다려 달라. 비용 처리에 대해서 다른 집들이랑 이야기해야 하니까 더더 기다려달라.

"아니 집에서 물새 봤어?!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합니까아!! "


 지금 당장 처리 해줄 수 없는 건 다 알겠다고 했다. 근데 난 지금 당장 살고 있는 집 천장에서 물이 새고 있다고.. 너무 답답해서 내가 직접 알아보고 해결한 다음에 영수증을 청구했다. 어쨌든 천장 누수는 해결되었지만 그건 임시방편이었다. 수리해 주시는 분이 내년에 장마 오면 또 샐 것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물이 샌 천장 도배도 못했다. 집주인은 도배는 끝까지 안 해주겠다고 했다. 그곳은 마치 내 눈물처럼 얼룩졌다. 이번에는 평생 살고 싶었던 집이었는데 이미 물난리 났다. 그 천장을 보고 잠들 때마다 '천장에서 물 새는' 악몽을 꿔서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졌다.


 월세, 전세를 살면서 자꾸 집주인과 얼굴 붉힐일이 생겼다. 그렇다고 해결이 빨리 되는 것도 아니었다. 요즘 전세 사기도 많은데, 이렇게 간단한 문제 해결도 안 해주는 집주인이 두려워졌다. 내 전세 보증금을 안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만약 전세 보증금을 못 받는다면 난 평생 은행의 노예가 될 팔자였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박히니 침대에 누워도 잠이 안 왔다. 가장 답답한 건 어떻게 하고 싶은데 방법도 몰랐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부동산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부모님도 아무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물론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부동산 투자는 내가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한 번 이상 부동산 관련 이슈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나이만 먹으면 생각보다 잃을게 더 많을 듯했다. 어차피 한 번은 부동산 공부를 해야 한다면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제는 부동산 공부를 시작해서 월세, 전세 말고 내가 집을 사야겠다! 당장 돈은 없어도 공부하다 보면 집 살려고 저축이라도 더 열심히 하겠지."


 부동산 책을 보고, 부동산 강의를 등록하고, 사람들과 만나서 스터디를 하고 임장(부동산 매물 보러 다니기)을 다녔다. 일을 할 때도, 끝났을 때도, 쉴 때도 오로지 부동산 공부와 임장이었다. 23년 4월부터 시작했다.



 

 서울 구로구, 양천구, 강서구, 금천구, 동작구, 관악구, 영등포구, 경기도 광명시, 경기도 부천시, 경기도 김포시, 경기도 고양시, 인천 부평구, 인천 계양구 난생처음 보는 곳들의 아파트를 찾아 돌아다녔다. 날씨 좋은 4월부터 7월 장마가 오고 8월 한 여름 37도까지 해가 쨍쨍할 때까지 돌아다녔다. 걷는 것도 그렇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29살인 내가 부동산에 사장님하고 이야기할 때였다. 처음에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부동산 문 앞에서 1시간 동안 그냥 서있었다. 용기 내서 들어가도 몇몇 부동산 사장님들의 태도가 무서웠다.


 먼저 문을 열고 들어온 나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봤다. "아까 전화했던 분 맞아요?"라며 경계하는 분도 계셨고, 아예 대놓고 "젊은 사람이 집 사러 온 거 맞아요? 공부하러 온 거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분도 있었다.


 그래도 좋았던 사장님들 덕분에 여러 곳의 입지와 매물 40개의 아파트를 봤다. 그러다 보니 구매하고 싶은 매물들이 생겼다. 때마침 정부에서 나온 ‘특례보금자리론’(23년도 한정 정부대출, 현재는 신생아특례대출로 이름과 내용이 바뀜) 대출이 있어서 열심히 일하면서 모아둔 돈이랑 합치면 겨우 매매가 가능했다.

물론! 비싼 집값에 떠나려고 하는

영혼까지 탈탈 끌어 모아서!


 지금까지 공부하고,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 교통, 학군, 환경, 공급 모두 좋은 곳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바로 그곳은 ‘강남’. 이름에 걸맞게 금액이 말도 안 되게 너무 비쌌다. 세상에는 싸면서 좋은 건 없었다. 그렇지만 나쁘면서 싼 건 있었다. 금액이 한정적이니 최대한 가성비 있게 활용해야 했다. 물론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21년도 전고점에서 30프로 하락한 곳,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60프로 이상인 곳, 300세대 이상인 곳, 서울 3대 업무지구 강남, 여의도, 종로와 교통 30분 안에 드는 곳이 내 목표였다.


 내 직장과 여자친구의 직장도 가까우면 좋지만 그건 최대한 마지막에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나한테도 좋은 집이어야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공간이어야 나중에 팔 때도 잘 팔릴 거라 생각했다. 후보지가 3군데로 좁혀지고 아침, 낮, 밤마다 그곳들로 갔다. 일부러 출근 전에 가서 출근도 해보고, 퇴근길도 체크했다. 주변 사람들의 생활도 놓치지 않았다. 옷차림, 나이대, 들려오는 이야기들까지. 결국 고민하다가 한 곳을 정했고, 부동산 사장님에게 전화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제가 고민했던 곳 집주인한테 지금 바로 계약한다고 해주시고 계좌번호 알려주세요. 지금 바로 가계약금 넣을게요”


 

 사실 가계약금 넣기 까지도 중개사를 통해서 수많은 연락들이 오고 갔다. 당연하겠지만 나는(매수인) 돈을 한 푼이라도 더 깎으려 하면 매도인은 한 푼이라도 안 깎아 주려고 했다. 내가 일한 지 얼마 안 돼서 많은 돈이 없고, 부모님도 곧 은퇴를 하셔서 집에 돈을 빌릴 수도 없다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매도인이 금액을 깎아 준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생각해 보니 어렵다며 번복했다. 이런 핑퐁이 중개사를 통해 여러 번 왔다 갔다. 나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다른 집을 살까 했지만 그 집의 뷰가 내 머릿속에 계속 머물렀다. 지금까지 서로에게 오갔던 나쁜 감정은 없애고 오로지 집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 집의 사진을 다시 찾아보면서 ‘이렇게 힘든 게 내 집이 되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서로 만족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게 되었다.


  

 공부도 하고, 집도 많이 봤지만, 글을 쓰면서 돌이켜보니 나 혼자만 열심히 해서 집을 살 수 있던 게 아니었다. 내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부동산에 대해서 잘 알던 직장 선배님, 부동산 단체방 방장님, 먼저 부동산을 샀던 친구, 부동산에 관심 있던 친구, 부동산 스터디 멤버, 부동산 사장님, 그리고 가장 고마운 건 옆에서 할 수 있다고 응원해 주고 지금까지 일하면서 모은 전재산을 흔쾌히 빌려준 내 여자친구까지. 아무것도 몰랐기에 너무 힘들었지만 그분들이 있어서 29살에 서울에 있는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었다. 몇 년후 이 아파트를 갈아탄다고 해도 가능하다면 오랫동안 가지고 있고 싶다.


  비밀의 방은 없는 집이라도 그만큼 고생해서 얻은 첫 집이라 애정이 간다. 위에서 언급했던 책 ‘쏘쿨’ 작가님처럼 누군가 나에게 대뜸 달려와 “혹시 집 있으세요?”라고 묻는다면 열심히 공감하면서 응답해주고 싶다. 내 인생에 부동산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좋은 공간들을 좋은 기억들로 채워가고 싶다.


"쏘쿨의 수도권 꼬마아파트"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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