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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포국수 Jul 17. 2024

내만사 - 앙드레 김

디자이너 04

앙드레 김 (1935 ~ 2010)

그의 흰옷은 깨끗할 줄 알았는데, 소매 끝자락은 헤어져 너덜너덜했다. 깨끗한 옷을 원해서 흰옷을 고집했던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흰 옷을 고집했다. 흰옷은 어머니에 대한 의례복이었던 것이다.




앙드레 김은 흰색을 유독 좋아했다. 흰색 옷을 항상 입고 다녔고, 그의 패션쇼 마지막은 늘 신랑신부의 웨딩드레스가 연출되었다. 신랑신부는 당시 연예인 중 가장 유명한 사람들이었다.


어릴 적 어머니가 자신에게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흰 옷을 깨끗이 빨아 입혀주었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흰옷이 어머니에 대한 자신의 절절함이라고 말했다. 타고 다녔던 차도 흰색이었다.


흰색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또 하나는, 일본 카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을 읽고 나서 공감했던 색깔이라고 했다. 세종문화관에서 열린 한 공연에서 흰색 옷을 입고, 흰 차를 타는 것을 나는 가까운 거리에서 본 적이 있다.


앙드레 김의 본명은 김복동이다. 국민의 정부시절 옷로비 사건에, 난데없이 그가 증인으로 참석해 선서를 했다. 앙드레 김이라고 말하자 한 국회의원이 본명을 말해야 한다고 해서, 그의 본명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태어났고, 6.25 때 부산 피난지에서 미국영화를 보면서 화려한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었다고 한다. 1961년 국제복장학원이 문을 열자, 1기생으로 입학했다.


평생 남성 디자이너 1호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앙드레 김이라는 이름은, 프랑스 대사관의 한 외교관이 외국인이 부르기 쉽도록 지어줬다고 한다.


그는 마이클 잭슨에게 약 200벌의 옷을 맞춰 보내주었다. 잭슨이 그에게 전속 디자이너로 하자고 권유했지만, 자신은 한국의 대표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특정인에게 전속될 수 없다고 거절했다고 한다. 소프라노 조수미도 200여 벌의 드레스를 주문할 정도로, 그의 옷을 좋아했다.


삼성전자 하우젠과 지펠은 2000년대 냉장고, 에어컨 등에 그의 문양을 제품에 사용했다. 삼성건설의 목동 트라팰리스의 아파트 내부 인테리어를 전담하며, 산업디자인 영역에서도 많은 족적을 남겼다. 지금도 앙드레 김 수건, 우산, 화장품 등에 라이센싱 되고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의 멤버였던 그는 시대를 앞서 갔던 디자이너였다. 김복동이 아니라, 앙드레 김으로만 기억되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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