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가 10
라파엘로 산치오 (1483 ~ 1520)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막내이며 요절했다. 그가 좀 더 오래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더라면, 어땠을 까라는 아쉬움이 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에게서 배웠던 기량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다. 그가 죽자 르네상스가 지고, 바로크 시대가 왔다.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시기에 레오나르도, 미켈란젤로와 함께 활동했던 막내로 37살에 요절한 이탈리아의 예술가다. 라파엘로 아버지는 미술가였기 때문에, 라파엘로에게 예술적 재능을 많이 심어줬다. 그는 10대 때 우르비노의 화가였던 페르지노 밑에서, 도제 시절을 보냈다.
이후 우르비노를 떠나, 피렌체에 들어갔다.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 작품에 대해 공부를 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갖추기 시작했다.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몰락해, 더 이상 예술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25살의 라파엘로는 당시 율리오 2세 교황의 부름을 받고, 피렌체에서 로마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천장화를 보았고, 미켈란젤로에 대한 경외감을 가졌다고 한다. 그는 교황으로부터, 교황의 방 4면을 장식하는 거대한 프레스코화를 명 받는다. 주제는 법학, 철학, 신학, 예술 4가지였다. 이 4 작품 가운데, 그의 수작 아테네 학당(철학)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자세가 주는 메시지들이 매우 흥미롭다. 교황의 방에 흡족했던 율리오 2세는, 나머지 방 그림도 모두 그에게 맡겼다. 이때부터 그는 로마에서 엄청난 명성을 얻게 된다.
18세기 영국 왕립 미술학교 초대 원장으로 24년간 재임한 엔트 조슈아 레이놀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중 누가 더 위대하냐는 질문이 있고, 꼭 답해야 한다면 의문의 여지없이 그것은 라파엘로다.”
미켈란젤로와 함께, 그는 바티칸 박물관 입구에 나란히 조각되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늘 인파에 싸여 있는 라파엘로를, 부대를 끌고 다니는 병장이라고 비웃었다. 그만큼 그는 세련되고 활발했으며,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로서 셀럽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레오나르도에게서 피라미드 구도, 빛과 그림자를 배웠다. 미켈란젤로에게서 우람하고, 예술적인 인물형과 균형을 배웠다. 그의 그림은 르네상스의 특징을 모두 집약했다. 아테네 학당은 전체적인 안정감, 조각의 우수한 조형미, 건축의 원근감과 균형이 잘 드러난 수작이다.
라파엘로를 끝으로 르네상스 고전미술의 시대는 저물어갔고, 바로크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