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06
마이클 조던 (1963 ~ )
23번 숫자를 추억하는 미국인들이 많다. 조던은 스포츠 선수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에어조던을 신고, 껌을 씹으며 덩크슛을 하는 그의 모습은 독수리와 같다. 그의 시그니처 농구 장면들은 볼수록 끌려든다.
마이클 조던은 흑인 중산층에서 자라며 야구, 농구, 풋볼을 좋아했다. 고등학교 때 농구부 선발에 탈락한 이후 절치부심해 기량을 쌓으며,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진학했다. 1984년 시카고 불스에 입단할 때, 그는 전체 대학 농구선수 중 3순위였다.
마이클 조던이 시카고 불스에 입단할 때, 큰 이벤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미국 내 농구화는 컨버스가 57%로 독보적 1위, 아디다스는 2위, 나이키는 3위였다. 나이키의 농구분야 스카우터가, 조던 가족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나이키와 5년 계약에 250만불, 조던의 이름을 사용하는 조건으로 에어조던 농구화 매출의 5% 로열티를 주기로 했다.조던이 현역선수에서 은퇴한 지 20년이 되었지만, 그는 매년 1~2억불 상당의 로열티 수입을 나이키에서 받고 있다. 에어조던 시리즈는 지금까지, 31번째 버전이 나오고 있는 스테디셀러다.
2023년 소더비 경매장에서 조던이 신었고, 친필 사인의 에어조던 운동화가 무려 7억원에 낙찰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신발 제조회사가 옛날 한국의 르까프 공장이었다.
등 번호 23번의 그는 시카고 불스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팀을 NBA에서 3 연속 우승을 2번이나 만들었다. 냉전 이후 1980~90년대, 그는 NBA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조던은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운동선수 1위다. 2위는 야구의 베이비 루스, 3위는 무하마드 알리. 조던은 나이키의 종신계약 선수이며, 주주임과 동시에 나이키에서 임원 대우를 아직도 받고 있다.
나는 나이키 농구화를 실어본 적은 없다. 내가 좋아했던 나이키의 발전에, 그와 타이거 우즈가 함께 했으니 그냥 반갑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농구를 떠나 야구에 잠시 피신했을 정도로, 그는 모든 스포츠에 소질이 많다.
지금은 골프채를 들고, 운동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활짝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떠올리면, 압도적인 기량과 여유가 느껴진다. 나이키의 광고 카피 Just do it도 중력을 거부하고 날았던 그가, ‘그냥 해 보라’는 말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