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09
칼 루이스 (1961 ~ )
하늘을 걸어 다녔던 사나이로 그를 기억하고 있다. 휴스턴의 퓨마는 은퇴 후, 모교 대학에서 퓨마의 후손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설의 육상선수 제시 오웬스와 다음 생에서, 진검 승부를 한번 할지도 모르겠다.
칼 루이스는 내가 경기를 지켜봤던 육상선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였다. 그는 미국 대표팀에 5번 선발되었고 올림픽에서 총 9개의 금메달, 1개의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올림픽에서는 100m, 200m, 100m*4 계주, 멀리뛰기에 나섰다.
첫 올림픽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었으나, 미국 등 서방 국가가 보이콧하며 불발됐다. 1984년 LA에서는 4 종목 모두 금메달, 1988년 서울에서는 100m, 멀리뛰기에서 2관왕, 1992년 바르셀로나에서는 데 100m*4 계주와 멀리뛰기에서 2관왕, 마지막 1996년 애틀랜타에서는 멀리뛰기 금메달을 땄다.
멀리뛰기에서는 올림픽 연속 4관왕의 위업을 달성했다. 마치 공중에서 걷는 듯했던 멀리뛰기 동작은, 내 머리에 아직 생생히 남아있다.
미국에서 올림픽 육상선수로 5번 출전자격을 얻으려면, 최소 20년 이상을 정상급 기량을 보유해야 한다. 그는 자기 관리에도 뛰어났고, 비건 채식주의자였다.
내가 지켜본 단거리 선수 중, 비교할 수 있는 선수는 우샤인 볼트가 있다. 그는 올림픽에서 8개의 금메달을 땄으니, 칼 루이스보다는 한 수 아래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던 제시 오웬스가 있지만, 내가 그를 보지 않았으니 누가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칼 루이스는 휴스턴의 퓨마(유럽에서는 푸마)로 불리며, 선수생활을 했다. 현재 휴스턴 대학에서 육상코치로 활동하고, 재단도 만들어 육상선수를 발굴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그는 100m 경주 때 80m 지점에서 늘 웃었다. 전력 질주를 하기 위해 선수들이 머리를 숙이고, 인상을 쓰는 것에 비해 그는 여유로웠다. 그의 하얀 이빨을 보이는 순간, 맨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군인 같은 헤어 스타일의 칼 루이스 이미지는 강렬했다. F1 레이싱 선수 중 월드 챔피언을 7번 수상한 루이스 해밀턴이 있다. 기자들이 그에게 번개처럼 빠른 칼 루이스를 본받으라고 지어진 이름이냐는 질문에, 그는 “No.”라고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