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만사 - 혼다 소이치로

경영자 40

by 구포국수

혼다 소이치로 (1906 ~ 1991)

스패너를 들고, 혼다 공장 곳곳을 뛰어다녔다. 초등학교 출신이지만 명쾌한 제도와 사심 없는 경영원칙을 통해, 직원들이 일에만 집중하게 했다. 정상에서 과감히 물러날 줄 알았고, 희생할 줄도 알았던 덕장이기도 했다.




혼다는 도요타, 닛산과 함께 일본의 3대 자동차 제조기업이다. 이 기업은 직립보행 로봇 아시모를 개발했고, 2003년에는 제트기 엔진도 개발했다. 일본 자동차 업계에서 “도요타는 일본의 현재, 그리고 혼다는 미래.”라고 부를 만큼, 기술력 하나만큼은 인정받고 있다.


일본 내 최저 불량률을 기록했지만, 혼다 회장은 버럭 화를 내며 “불량제품을 받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불량률 100%.”라고 혼냈다. 혼다 소이치로는 어떤 사람이기에, 일본 내 3대 경영의 신으로 칭송받고 있는 것일까?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철공소에서 자전거 수리를 하면서, 기계와 기술분야에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세부터 도쿄에서 자동차 수리 일을 7년간 배우고,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는 사장의 말을 듣고 독립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자동차 부품공장을 세웠다.


도요타에 부품을 납품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공습으로 공장이 파괴되었다. 결국, 그는 도요타에게 자신의 공장 전체를 매각했다. 당시 매각대금 45만엔을 가지고, 1946년 그는 혼다 기술연구공업을 설립했다.


혼다는 자전거에 모터를 단 오토바이에서 시작해 자동차, 로봇, 비행기 엔진에 이르기까지 기술을 최고로 여기며 달려갔다. 1949년 지인의 소개로 후지사와 타케오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자신은 기술 그리고 타케오에게는 경영관리를 맡겨, 혼다의 성공 스토리를 같이 만들어 갔다.


혼다에는 혼다 성을 가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1973년 회장이 은퇴할 때에는 아들 및 친인척의 근무를 아예 차단했다고 한다. “지금의 혼다가 완성된 것은 나의 공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든 것이다. 보통 회사들은 아들이나 친척에게 회사를 물려주거나, 동경대 같은 일류대를 나오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이다. 이 사실을 망각하면 곧 망한다.”라고 그는 생각했다.


타케오가 경영에서 물러나려고 하자 혼다 본인도 젊은 CEO들에게 권한을 넘겨주고, 회장직에서 내려와 동반 사퇴했다. 은퇴 당시 타케오는 64세, 혼다는 67세의 나이에 불과했다.


혼다는 은퇴 후 1년 반 동안, 일본 전역에 있는 혼다 공장과 대리점을 직접 찾아가 감사의 악수를 했다. 이후 6개월 동안은 전 세계 혼다 공장과 대리점을 찾아다니며, 악수 순례를 이어갔다. 기술에 대해서는 괴팍할 정도였지만, 겸손한 창업자의 품성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창 기술과 품질을 강조할 때는 공장 현장에서 스패너를 들고 다니며, 직원들을 훈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미시간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을 때, 자신의 인생은 99%가 실패였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기억나는 것은 실수, 실패 그리고 이를 통해 교훈을 얻으려고 했던 일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자동차협회 명예의 전당에 아시아인 최초로 가입한 인물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날개 문양을 부착한 혼다 오토바이를 본 적이 있다. 그 혼다 오토바이가, 1961년 세계 오토바이 경주대회에서 1~5위까지 싹쓸이를 했다. F1 경주에서도 1965년과 1966년 2년 연속으로, 혼다 엔진을 장착한 경주차가 우승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1986년 드디어 혼다 자동차가 F1에서 우승하면서, 혼다의 F1 도전 20년 만에 꿈을 이뤘다.


혼다의 CEO는 모두 공대 출신이다. 혼다는 기술자가 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지금도 그 원칙은 지켜지고 있다. 학력이나 사무직, 기술직에서 임금이나 승진에 차별은 전혀 없다고 한다.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던 혼다 회장의 철저한 현장중시, 기술경영에서 나온 회사정책이다. 그는 리더십의 기본은 꿈, 기술, 도전 3가지라고 강조했다.


그의 왼손은 망치에 맞고 깎여, 부러지고 손톱이 빠져나갔다. 그는 자신의 왼손 엄지와 집게손가락이 오른손보다 1cm 정도 짧다고 고백했다. 회장님 보다는 오야지(아버지)라고 불리기를 더 좋아했고, 정장 대신에 작업복을 더 좋아했다.


쇼와 천황을 알현하는 자리에, 작업복을 입고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국은 궁내청과 혼다 임원들이 사정하여, 정장을 입고 갔다고 한다. 기술과 품질, 현장중심의 그의 경영관은 혼다인의 핏속에 DNA처럼 남아 있을 것이다.


자전거에서 항공기 엔진, 모빌리티의 긴 궤적을 기술과 도전정신으로 이어온 혼다. 그래서, 혼다를 일본의 미래라고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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