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씨. 길을 잃다

Hwang 씨. Honran의 H씨. 그건 바로...

by 늘해랑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 차라리 잘 된 걸지도.


H씨는 그저 멍하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다.

무소유.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편안한 상태. 지금 H씨에게 남은 거라곤 입고 있는 옷, 신고 있는 신발 그리고 쓰고 있는 모자 뿐이었다. 지갑도, 휴대폰도 없다. 그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건 기억이 없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누구인지, 이곳이 어디인지, 지금이 언제인지 H씨는 아는 게 없었다.

입고 있는 옷 주머니 곳곳을 뒤져봐도 스스로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여가 어데고?"

"내가 와 여깃노?"


말투를 보아하니 H씨는 경상도인인 듯하다. 여기는 그럼 경상도일까? 주변을 둘러보니 산 속이다. 사람의 흔적이 없다. 눈을 떴을 때의 첫 장면은 우거진 나무였고,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와 물소리였다. 그리고 H씨의 옷은 흙투성이었다. 산에 왔다 구른 것인가. 그저 추측할 뿐이었다. 일어나 앉는데 몸이 좀 쑤시기는 했다.


"뭐 우째야 되는기고."


어쩌긴 뭘 어쩌나, 일단 이 산을 벗어나야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보았다. 다리를 이리저리 움직여보는데, 다행히도 다리는 멀쩡했다. 등허리가 조금 쑤시는 정도였다. 위를 올려다보니 올라갈 수 있는 길은 아닌 듯했다. 풀이 무성한 길이었지만 아래로 향하는 건 그나마 가능해 보였다.

이리저리 손으로 숲을 헤쳐 내려가니 졸졸 흐르는 계곡물이 보였다. 청정수, 물 아래 돌바닥이 환히 보이는 맑은 물이었다. 그 흐르는 물 아래로, 바위 근처로 간간히 송사리같은 물고기들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듯 멈췄다 움직였다 하는 모습도 투명하게 보였다. 갑자기 입이 마르고 목이 말랐다. 마셔볼까. 양 손을 모아 한 가득 물을 담아 입으로 가져가보았다. 머금었다. 삼킬까 하다가 혹시 몰라 입만 헹궈 뱉어냈다. 그래도 마른 입안이 잠시 물기를 머금었다고 상쾌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리본 하나쯤은 걸려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계곡 따라 내려가다보면 산 아래는 나오겠지 싶어 물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 보았다.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물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계곡 물줄기는 약해지고 무성했던 나무들도 점점 하늘을 열어주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일 때가 됐는데 아직도 산은 자연의 소리만 들려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거기 누구요? 혼자 왔소?"


H씨가 눈을 뜨고 처음 들은 사람의 소리. H씨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무도 없었다. 잘 못 들은 건가 싶어 주변을 이리 저리 살피는데 한 번 더 소리가 들렸다.


"여기요, 여기! 안보이시오?"

"어데십니까? 안보입니더."

"내가 안 보이면 안되는데? 진짜 안보이시오?"

"야, 소리는 들리는데 어디 계신지 못 찾겠습니다."

"허허. 큰일이네, 이를 어쩌누?"


보이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와 대화를 하고 있는 H씨는 너무나 답답했다. H씨와 대화를 하고 있는 그 사람도 어쩔 줄 몰라 답답해 하는 듯 들렸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금방 그리로 갈테니."


일단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멀뚱히 서있는 H씨 옆으로 조금 더 커진 목소리가 말했다.


"물 속을 한 번 들여다보시겠습니까?"


분명 가까이서 이야기하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H씨는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여전히 H씨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물에 한 번 얼굴을 비춰보시지요."


목소리는 한 번 더 물을 보라고 이야기한다. 허리를 숙여 계곡물을 향해 고개를 들이밀었다. 헛. 물 속의 H씨 옆에 누가 있었다. 옆을 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물 속을 보았다. 젊은 스님 한 분이 물 속의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이....이게 뭐꼬....?"

"휴우, 이제 제가 보이십니까? 그나마 다행입니다."

"이...이게....?"


H씨는 하얗게 얼굴이 질려버렸다. 머리가 뱅뱅 돌았다. 귀신인가?


"아무래도 이곳에 잘못 들어오신 듯 싶습니다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그게....지도 잘 모르겠십니더, 그냥 눈 뜨니까 저짝 저 위에 누워있대예. 아무 기억도 없꼬, 그래서 마 길 따라 사람 찾으러 내려왔십니더."


물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건지, 아마도 거기 있을 것인 허공에 대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건지 몰라 양쪽을 두리번 거리며 대답했다.


"그리고... 저를 만나신 거군요."

"그..그렇게 됐네예."

"일단 이걸 좀 받아주시겠습니까? 아, 물 속의 저를 보면 이걸 받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H씨는 물 속의 스님에게 집중했다. 스님은 품 속에서 네모난 무언가를 꺼내 건네주었다. 물 속에서 H씨는 그 물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툭- 무엇인가 만져지는 듯 했다. 움켜쥐어보았다. 스르륵- 실존의 H씨 손에 그 형체가 드러났다.

거울이었다.


"거울으로 보면 이제 제가 또 보이실 겁니다."


진짜였다. 거울 속으로도 스님은 보였다.


"이제 그 거울 속 저를 따라오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아...예...뭐...가능하겠네예."


스님을 따라가니 작은 암자가 보였다.


"편히 앉으시지요. 아, 거울은 벽쪽으로 세워두시면 제가 보일만한 곳에 앉겠습니다."


H씨는 스님이 시키는 대로 거울을 벽면 한 쪽에 기울여 세워두고 그 옆에 앉았다. 잠시 후, 거울 속에 스님이 나타났다.


"제가 보이십니까? 이 정도면 될 것 같은데..."

"아, 예. 잘 보입니더."

"그나저나 정말 아무 기억이 없으십니까? 누구신지, 이름이 뭔지, 무엇을 하시던 분인지..?"

"야, 진짜로 아무것도 기억이 안납니데이."


스님과의 오랜 문답을 거쳤지만 H씨가 기억나는 것은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스님도 H씨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거울을 보는 것 말고는,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나도.

무엇이 잘못된 걸까. 아니, 이렇게 끝맺어 버리기에는 차라리 잘 된 걸지도. 몇 주 뒤 일요일엔, H씨가 누구인지 그 땐 알 수 있을까? 그 땐, 스님이 N씨가 되어 나타나려나.





오늘 이야기 속 Hwang씨는 기억을 잃었고 이야기를 쓰는 Na는 길을 잃었다.

기억을 잃은 H씨와 함께, 길을 잃어도 굳건히 간다, Na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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