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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별 Jun 19. 2024

엄마 이번 주도 나랑 같이 성당 가자


어릴 적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은 항상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엄마'하면 초를 켜고 경건하게 기도하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항상 '뒷모습'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나는 방에 있고 엄마는 거실과 부엌 사이 공간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


나는 그것이 항상 불만이었다. 왜 나와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저렇게 기도만 하고 있는지. 나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는 알고 저렇게 기도를 하는 것인지. 엄마를 볼 때마다 답답했다. 엄마는 나를 어려워했고, 나에게 다가오는 법을 몰랐다.


학창 시절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한 번도 "오늘은 어땠어?"라든가 "학교에서 재밌었어?"라든가 "뭘 배웠어?" 같은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부모님에게 고민상담을 해본 적도, 나의 미래를 의논해 본 적도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고, 알고 나서 슬펐다.


20대를 온통 방황의 시간으로 허비하면서, 처음에는 내가 왜 그러는지 몰랐고, 어느 순간 부모님에게 죄송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가,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의 방황이 어쩌면 부모님 탓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원망도 했다.


크게 잘못한 것도 없는 부모님을 용서하느라 분주하던 마음도, 엄마의 치매 증상 앞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부모님이 내 곁에 계시는 동안에는 남은 시간을 잘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더 앞섰다.


엄마의 종교인 천주교를 싫어하던 나였지만, 우연한 계기에 나도 이십 대 후반부터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고, 언제나 묵주팔찌를 차고 다니는 종교인이 되었다.


요즘은 주말이면 엄마와 함께 성당에 간다. "엄마, 이번주는 토요일 특전 미사에 가야 할 것 같아."라든가 "엄마 일요일 5시 미사 시간 괜찮아?" 하고 물으면 엄마가 내 일정에 맞춰서 함께 미사에 간다. 이제 여섯 살이 된 나의 아이와 함께. 


같이 미사에 가고, 여유가 되면 미사 후에 같이 밥도 먹지만, 마음의 거리는 좀체 좁혀지지 않는다. 같이 있어도 다가가는 법을 모르겠다. 그저 지금으로서는 같이 미사에 가는 게 전부다.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뒷모습과, 엄마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비슷할까? 아니면 조금은 다를까? 문득 궁금해졌다. 나를 따뜻한 모습으로 기억한다면 오히려 마음이 아플 것 같다.


"엄마 이번 주도 나랑 같이 성당 가자." 유일하게 엄마에게 연락할 거리. 이번 주도 엄마에게 전화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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