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모두가 학업과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던 시절, 나는 방황하느라 바빴다. 나이는 성인이지만 자립하지 못한 상태였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나 때문에 많이 싸우셨다고 했다.
무슨 방황이었는고 하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여행을 간 건 아니고, 기타 학원을 다니며 그곳에서 노숙하거나 남자친구 집에서 생활했다. 그런 방황이 약 5년간 계속됐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 들어가지 않다가 언젠가부터는 한달씩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어느날에는 집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아서 문 앞에 한참을 서 있기도 했다.
취직할 생각도 없었고, 그냥 알바나 하면서 그렇게 생활하는 게 좋았다.
처음에는 그게 기타에 대한 열정인 줄 알았다. 꿈을 좇느라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방황이었다. 사랑받고 싶고 관심 받고 싶은 몸부림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엔가 내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엄마가 방 문 앞으로 왔다.
들어오지도 않고 머뭇거리기에 "왜?" 하고 물으니 조심스럽게 무언가를 말씀하셨다.
"난 너만 행복하면 돼..."
그리고 눈물을 보였다. 남동생이 군대를 갈 때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그렇게 눈물을 보이더니 사라졌다.
그때는 '왜저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도 그날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이 떠오를 때면 부모님과 나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어긋난 걸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부모님은 양육에 있어 그분들의 최선을 다하셨을 것이다. 아버지는 다섯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셨고, 어머니는 자신이 아플 때도 끼니를 챙겨주셨다.
그분들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에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괴로웠다. 문제는 나에게 있으면 있었지, 부모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분들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하셨다는 게 문제가 될 줄은, 나도 몰랐고, 아마 부모님도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셨지만 그게 전부였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바로 화를 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만 했다. 초등학생 때 그림그리기에 흥미가 있어서 스케치북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그려대던 시절, 아빠는 내 그림을 보더니 "내가 보기엔 열심히 그리지 않은 것 같아." 한마디 하셨다. 그 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어머니는 가족의 끼니를 챙겨주셨지만 늘 힘들어하셨다. 어머니의 음식은 늘 귀찮음이 느껴지는 맛이었다. 내가 다녀야 할 학원은 열심히 알아보셨지만 내가 학원에서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셨다.
이 엉킨 매듭을 푸는 첫 단추는 의외로 나를 긍정하는 일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느꼈던 공허함과 외로움은 타당한 것이었다고, 누구라도 그랬을 거라고,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고.
나의 감정을 인정해야 그분들을 제대로 마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해와 화해가 가능해질 것 같다. 나도 그럴 만했고, 당신들도 그럴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