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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Aug 05. 2024

행복이 왜 이렇게 멀리 있을까

어느 이십 대의 일기



2020.11.29.일 

해뜨기 전 이른 새벽



 자정에 깜빡 잠이 들어 3시간쯤 잤는데 다시 일어나 씻고 누우니 잠이 안 온다. 잠이 오기만 기다리고 있자니 너무 생각이 복잡하고 우울해져서 그냥 일어나서 일기를 쓰기로 했다.


 요즘은 게임하는 재미로만 사는 것 같다. 잠에서 깨 할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밥 해 먹고 한 시간 산책하고 정신없이 게임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끝난다. 게임할 때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게임 방송도 보고 유튜브도 뒤적거린다. 시간의 공백을 점점 더 못 견디게 되고 있다. 잠시라도 내 정신이 완전히 꽉 채워져 있지 않으면 집중력을 다 잃을 것 같다.


 이렇게 가만히 앉아서 일기만 죽 쓰는 것도 새벽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낮에는 모니터에 창을 여러 개 켜놓고 끊임없이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찾아 읽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특히 인터넷에 접속해 있을 때 그렇다. 네트워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을 느끼는 것 같다. 정말 그만할 때다. 정상적인 여백에 다시 익숙해져야 한다.


 그렇지만 또 틈이 나면 못 참고 방황하고 만다. 요즘은 유튜브에서 동물 영상을 많이 본다. 새끼 강아지나 고양이 영상을 몇 개 봤더니 그런 것들만 추천된다. 조그만 고양이의 모습과 그에 대한 집사의 코멘트를 보고 있자면 어쩔 수 없이 우리 고양이 생각이 난다. 걔도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에 왔다. 가슴이 답답하다. 이 이별을 나는 꽤 잘 극복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마음속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이렇게 허무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 때면 이 상실이 끝나지 않는 고통처럼 느껴진다. 나을 수 없는 병. 아무도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없는, 이미 일어나 버린, 하나의 현상이자 결과, 결말. 보고 싶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후회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딱히 아니다.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단지 너무 복잡한 마음이라서 그냥 보고 싶다는 말로 쉽게 줄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절대자나 사후세계의 존재를 믿었다면 좀 더 마음 편히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게 안 된다. 분명한 것만 믿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종교 같은 건 가질 수 없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죽으면 그냥 끝일 것 같다. 신경 신호가 끊기면서 나를 나로 만들던 의식과 사고가 영원히 정지하고 신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아주 작은 단위로 분해되어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과거에 내 몸이었던 흙먼지들이 세상 어딘가를 영원히 떠돈다고 해서 그걸 내가 영속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번 죽은 것은 다신 어디에도 없게 된다. 그게 나의 답이고 유일한 진실이다. 죽은 이들이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기를 꿈꿀 수는 없다. 이 진실이 기각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어느 날 죽었다가 다시 눈을 뜨면 누군가가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나를 심판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기대는 안 한다.


 아무튼 내년부턴 인생이 좀 더 바빠져야 할 것 같다. 혼자서 자유롭게 쓰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잡생각도 많아진다. 전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독한 사색 속에 몸부림치지는 않지만 까딱하면 또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일단 지금은 게임을 다시 켜야겠다. 아니면 게임 방송을 보든지. 누워서 잠 오길 기다리고 있으면 잠이 더 멀리 달아날 것 같다. 행복이 왜 이렇게 멀리 있을까? 잡힐 듯이 안 잡히며 날 놀리는 것 같다.


 이런 나도 어느 순간에는 행복이 코앞에 있다고 느꼈었고 심지어 손안에 있는 줄 알았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순간들이 다 거짓말 같다.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걸까? 행복이란 게 왜 상대적인지 모르겠다. 절대적이고 완전한 행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솔직히 말해 행복이 뭔지도 모른다.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허상을 계속 찾아 헤매고 있다.


 그냥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행복이라고 부르기만 하면 다 해결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이름표를 붙여줄 만한 게 있을지 캄캄한 방안을 더듬어 본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앞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서는 발걸음을 잘 못 내디뎠다. 확신 없이는 어디로도 걷고 싶지 않다. 무작정 시작해 버리면 모든 게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뭐가 그렇게 무서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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