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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Aug 12. 2024

아픈 날

어느 대학원생의 일기


2024.01.14.일



 인정한다. 아프다. 몸이 꽤 안 좋다.


 시인했음에도 나아지는 것은 없다. 어제와 비슷하게 서너 시간 자다가 새벽에 깨어난 뒤로 저녁이 다 될 때까지 선잠을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감기나 코로나 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잠깐 지나가는 인후통이라고 자기 세뇌하듯 소망했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오늘은 기침 가래 코막힘 근육통 두통 발열 오한 등 감기의 대표 증상들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로써 여지가 없게 되었다. 감기든 독감이든 코로나든 나는 그 무언가에 걸렸다.


 어제 기침과 인후통, 가래 때문에 꽤 힘들길래 이게 최저점이고 앞으론 나아질 것이며 운이 좋으면 바로 다음날 씻은 듯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상황이 안 좋으면 오히려 근거 없는 낙관을 갖게 된다) 딱 코로나 걸렸을 때처럼 쉽게도 바닥이 갱신되었다. 오늘의 코막힘이 훨씬 더 괴로웠던 것이다. 코가 완전히 꽉 막혀 입으로밖에 숨을 쉴 수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목구멍이 바싹 말라 더 아팠고 가래 때문에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눕지 말고 앉아 있어야 목이나 코 상태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았지만 앉은 자세를 유지할 힘이 없었다. 그래서 괴로움을 견디며 누워 있었고 자세만 조금씩 바꿔가며 자다 깼다 했다. 벌써 십수 번을 그렇게 한 것 같은데 아까 욕실에서 들리던 누군가의 목욕하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에 몇 시간도 채 흐르지 않았음을 느끼고 절망했다. 아마 분 단위로 자고 깨고를 반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잠에 빠져들 때마다 목구멍에 힘이 풀려 기도 점막이 순간적으로 맞닿으면서 찌릿한 통증을 만들어 냈고 그것에 자꾸 화들짝 놀라며 잠이 깼다.


 발열과 오한도 심하다.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을 44도까지 올렸는데도 뜨겁단 느낌이 없었다. 아무리 뜨거운 이불속에 들어있어도 몸이 차가워서 따듯한 것에 닿을 때마다 자꾸 소름이 끼쳤다. 동시에 머리는 절절 끓는 듯이 열이 났다. 이불 밖으로 머리를 빼자니 또 추운 느낌이 들어서 달궈진 이불속에 머리를 넣어야 했고 그러고 있으면 머리가 어떻게 될 듯이 뜨거워졌다.


 결국은 괴로움을 못 견디고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좀 더 힘을 내서 셀프 간병을 하기로 했다. 수건을 적셔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그것에 고개를 처박고 숨을 쉬어서 목과 코를 촉촉하게 했다. 실제로 촉촉해진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간만에 숨이 트이는 것 같았다. 뜨거운 공기 속에 얼굴을 넣고 있으니 일단 기분이 좋았다. 수건이 웬만큼 식은 뒤에는 의자에 걸어 가습기로 삼았고 겨울 날씨에 금세 차가워지길래 얼굴에 대고 열을 식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 있을 때보단 한결 나았다.


 오늘은 시간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내기 위해 누워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다. 첫째로 아픈 게 화가 나고 억울했다. 왜 이렇게 아픈 거지. 내가 뭘 잘못했지. 사람 많은 곳에는 잘 가지도 않는데. 면역력이 떨어졌나. 몸에 근육도 없고 먹는 것도 엉망으로 먹고 집에만 처박혀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그렇지, 바로 한 달 전에도 꽤 아팠고 다 나아갈 무렵에 한 고비를 넘겼다고 후련해했었는데 어떻게 한 달 만에 다시 아플 수가 있어. 나는 코로나도 독하게 앓았었는데.


 한동안 속으로 투덜거린 뒤에는 좀 더 심도 있는 고민을 했다. 이를 테면 내가 아픔이나 괴로움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 나는 남들에게 도움을 구하고 기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이나 정신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면 일단 숨기고 혼자 해결을 보려고 한다. 빠르게 문제를 제거하고 다시 남들 앞에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설 수 있도록. 병원이나 약국도 잘 찾지 않는다. 집에서 혼자 시도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일단 최대한 해 보고 알아서 낫길 기다린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더 먹어가면서 독립과 의존이 삶의 한 축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꽤 독립적인 성향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내게 사람과 세상은 그렇게 믿을 만한 존재들이 아니었고 나는 무엇이든 혼자서 해내야만 의미가 있다고 믿었다.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음을 자신과 타인에게 증명하고 실제로 혼자 잘 살아가는 것은 내게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지금도 무의식적으로 독립적인 것이 곧 강하고 온전한 것이라고 느낀다.


 그렇지만 의존하는 게 꼭 약한 걸까. 어쩌면 더 합리적인 것일지도 모르지. 이렇게 아플 때 다른 사람한테 죽 한 그릇 얻어먹으면 더 빨리 나을 수도 있으려나. 병원 가서 주사 맞고 약국 가서 약을 타다 먹으면 덜 아프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까. 상태가 좋지 않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서 걱정과 위로를 받으면 좀 도움이 될까.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사실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나. 어차피 모든 순간에 혼자일 수도 없고 모든 걸 다 혼자 할 수도 없는데.


 또 한 가지 생각은 문명에 대한 것이었다. 내가 만약 원시시대에 살았다면 바로 이 감기로 맹수의 습격을 피하지 못해 죽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운 좋게 맹수가 방문하지 않아서 무사히 살아남더라도 훨씬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2분 만에 젖은 수건을 따듯하게 만들 수 있는 전자레인지나 한 겨울에도 자리를 덥힐 수 있는 전기장판은 고사하고 물을 따듯하게 보관할 수 있는 보온병조차 없으니까. 아니, 내 몫의 깨끗한 물이 충분히 있기는 했을까?


 그리고 또 내가 직장인이나 학생이 아니라 졸업을 앞둔 날백수여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다. 한 달 간격으로 이렇게 아프면 어딜 다니고 있든 타격이 좀 있었을 것이다. 학교나 직장에 오고 가는 길은 얼마나 힘들었을 것이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상태를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것은 얼마나 수고롭고 내 할 일을 다 못 해내는 찜찜함과 자괴감은 또 어땠을 것인가. 억울하다고 투덜댈 필요가 없었다. 바로 지금 아픈 것은 행운이면 행운이지 불행은 아닌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흘려보내다 보니 공복감이 심해져서 밥을 먹으려고 일어났다. 아프기 시작한 후로는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아서 어제 굴러다니는 초콜릿 몇 조각 주워 먹은 뒤로는 입에 넣은 것이 없었다. 식욕은 여전히 없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으면 에너지 공급이 안 되는 건 둘째치고 빈 속이 뒤집혀 토가 나올 것 같았기에 슬슬 뭐라도 속에 집어넣어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이 시점에서 백기를 들었다. 말이 아닌 몰골로 기어나가 몸이 안 좋아서 죽을 먹어야겠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상황 전달이 된 것 같았다. 엄마가 곧 데운 죽과 김치를 갖다 줬다. 김치는 먹으면 안 될 것 같았지만 몸에도 좋을 것 같고 왠지 오늘따라 맛있어 보였기 때문에 한 조각을 먹어봤다. 역시나 목구멍이 아파서 관뒀다. 죽을 거의 다 먹고는 엄마가 집에 남아있던 감기약을 주길래 먹었다.


 수건을 한 번 더 데우고 다시 침대에 기어가 누웠다. 한동안 누워있다 보니 문득 상태가 좀 나아진 것을 느꼈다. 죽과 약이 제 역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코로 숨을 쉴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이대로라면 깨지 않고 한동안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도움을 구한 건 잘한 선택이었다. 그래, 전자레인지랑 전기장판 덕은 보면서 다른 사람 손은 안 빌릴 이유가 뭐란 말인가. 도움 받고 도움 주면서 살면 되는 거지....


 몸이 아프면 겸허해진다. 약간의 허무감에 젖은 채 천천히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침대에 엎어진 채 마지막으로 하던 생각은 만약 어떠한 아픔이 끝나지 않고 평생 계속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과 어떤 선택을 할까? 그런 질문은 골똘히 생각한다고 해서 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닥쳐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냥 지금의 삶을 살기로 했다. 부디 내일부터는 상태가 조금씩 나아지고 또 이것도 금방 지나가고 잊혀서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낼 수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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