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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에가는길 Sep 19. 2024

일탈했다가 걸리는 꿈

재밌을 거 같아. 하지만 위험해 보여.

 꿈에서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야간 자율 학습 시간에 8명쯤 되는 반 친구들과 함께 교실에 있었다. 그날 나는 왠지 좀 들떠있었고 다른 애들을 꼬드겨 재밌는 일을 벌이기로 했다. 바로 선생님들 눈에 띄지 않을 교내의 사각지대에 숨어 술을 마시며 노는 것이었다. 모인 애들 중에는 모범생 같은 애도 있고 놀기 좋아하는 애도 있었는데 나는 하나하나 설득해서 모두 동참시켰다. 일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어떻게 술을 구해와서는 과자와 함께 마셨다. 너나 할 것 없이 들떠있었고 은은하게 감돌던 불안과 죄책감도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며 전부 사라졌다. 아주 즐거웠다. 현실에서 대학생 때 술 먹고 놀러 다니던 시절보다 더 자유롭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발각되고 만 것이다.

 학생들이 교내에서 야자 시간에 술판을 벌이다니, 학교가 순식간에 뒤집어졌고 우리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그때서야 위기감이 들며 덜컥 겁이 났다. 우리는 꽤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불명예스러운 소문의 중심이 됐고 생기부에 기록이 남아 대학 입시에도 차질이 생겼다. 선생님들 앞에 머그샷이라도 찍듯 서 있어야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상황이 종료된 후, 같이 놀았던 애들이 나를 둘러쌌다. 처음엔 비꼬는 것이라고 알아채기도 힘들 만큼 평범한 말투로 말을 걸더니 점차 표정이 험악해지고 말투도 노골적인 비난조로 변해갔다. 그들은 모든 게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자신들에게 괜히 바람을 넣어 앞길을 다 망쳤다고. 그 미움이 징계보다도 더 무서웠고 몹시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 소개한 꿈에는 상충하는 소망과 두려움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신나고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다는 소망과 그것이 나쁜 결과를 초래할 것 같다는 두려움입니다. 고등학생으로서 학교 내에서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행위는 아주 재밌는 동시에 위험한 일의 상징으로서 꿈에 채택되었습니다. 아마도 제 무의식은 평소 재밌게 놀고는 싶은데 후환이 두려워서 골머리를 좀 썩고 있는 모양입니다.


 모든 재밌는 일들이 위험한 것은 아니고 모든 안전한 일이 지루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재미와 위험이 얄궂게 겹쳐 있는 일들을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빠르게 질주하는 것,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데이트하는 것, 오래 다닌 직장에서 퇴사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달고 짜고 기름진 가공 식품을 먹는 것이나 유튜브에서 정신을 쏙 빼놓는 재미난 영상을 시청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 행위들도 모두 자극과 위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자극과 위험 사이에서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선택을 내립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자극을 추구할 것인지, 아니면 위험을 피하기 위해 자극을 어느 정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해서요. 이런 행동들이 모여 우리를 신중하거나 도전적인 사람으로 만들지요. 미국의 정신과 의사 로버트 클로닌저(Robert Cloninger)는 이러한 선택이 우리가 가진 기질에 의해 내려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클로닌저에 따르면 기질(temperament) 외부 자극을 맞닥뜨렸을 때 자동적으로 유발되는 반응입니다. 여러 기질 요인들은 개인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평생에 걸쳐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그중 새롭고 신기한 것이나 잠재적인 보상에 접근하려는 경향성자극추구(novelty seeking)라고 합니다. 그리고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일에 대해 행동이 억제되고 위축되는 경향성 위험회피(harm avoidance)라고 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환경이나 자극을 접할 때 자극추구 성향은 적극적인 접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반대로 위험회피 성향은 억제적이고 회피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요. 이러한 기질들은 사람이 가진 특성 중 일부일 뿐 그 자체로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들의 조합은 우리의 삶을 특정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되며, 어떤 조합은 삶을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데에 더 유리할 수 있습니다.


 가령 자극추구 성향보다 위험회피 성향이 더 강하다면 자극보다는 안전을 추구하고 사회적 관습에 동조하며 분노와 같은 감정을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고 살 가능성이 큽니다. 한편 자극추구가 높은데 그에 비해 위험회피가 낮다면 흥분과 위험을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활동에 충동적으로 참여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극추구와 위험회피가 모두 높다면 어떨까요? 일을 벌이고 싶은 충동이 강한데 그에 대한 검열도 강하니 마음속에서 늘 치열한 갈등이 벌어지겠지요.




 말했듯 기질은 타고나는 것이며 시간이 흘러도 쉽게 변하지 않고 유지됩니다. "난 안 좋은 조합을 갖고 태어난 것 같은데?" "뽑기를 잘못했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의 행동과 삶이 기질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클로닌저의 전통적 모델은 사람들의 행동을 잘 설명했지만 같은 기질 조합 내에서 잘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나뉘는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성격(character) 차원이 추가로 고안되었습니다.


 성격은 사람이 의식적으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떤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지 등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격 요인들은 기질과 달리 고정적이지 않아서 살면서 계속 변화합니다. 연구들에 따르면 기질보다 성격이 개인의 성숙함,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 행복, 도덕과 더 큰 관련이 있습니다. 까다로운 기질을 타고났더라도 성격을 잘 발달시킨다면 그것을 적절하게 다루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꿈에서 저는 재밌지만 위험한 일을 벌였고 결과는 아주 나빴습니다. 클로닌저의 이론에 따르면 이것은 본능이 이끈 일입니다. 하지만 제 성격이 충분히 성숙했다면 어땠을까요? 같이 있던 친구들이나 학교 구성원 전체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사회의 규칙과 도덕을 준수하려고, 학생으로서 성실성을 지키려고 노력했다면 아마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질은 우리에게 행동에 대한 근원적 에너지를 제공하지만 그것을 조절해 우리를 좋은 곳으로 데려가는 것은 성격입니다. 이것이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도 꾸준히 갈고닦아야 하는 이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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