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내가 되고 싶어
꿈에서 나는 고등학생쯤 되었던 것 같은데, 키 크고 잘생긴 남자였다. 그렇다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구였던 건 아니고 나의 남성적인 자아에 잘생긴 껍데기를 씌워놓은 것 같았다. 외모뿐 아니라 성격도 좋았다. 평소엔 장난을 잘 치고 익살맞지만 기본적으로 정의롭고 성실했다. 나는 청소년들이 모여 지내는 교육 기관 같은 곳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그곳은 매우 폐쇄적인 데다가 권위자의 말 한마디에 청소년들의 처우가 좌지우지되는 곳이었다.
굴러들어 온 돌인 나는 그곳의 부당한 체계를 뒤집어엎겠다는 열의로 가득 찼다. 패배주의에 찌든 청소년들을 계몽하기 위해 먼저 그들과 친해져서 마음을 열기로 했는데 잘생기고 성격이 좋으니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것이 아주 쉬웠다. 남자든 여자든 내게 호의적이었고 내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중간에 감독관에게 끌려가서 심문을 당하거나 룸메이트가 나를 지지하지 않는 등 크고 작은 역경들은 있었지만 이 이야기의 결말이 해피엔딩이리라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꿈을 자주 꿉니다. 그중 대부분은 마치 영화나 소설의 등장인물에 빙의한 것처럼 나와 분리된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지각하고 행동하는 꿈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일부는 이 꿈처럼 '이게 나'라는 인식을 유지한 채 현실의 내가 가진 어떤 속성들이 바뀌는 꿈입니다. 다른 버전의 나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요. 이 꿈에서는 성별이 바뀌어 남자가 되었고, 성격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도, 인간관계도 모두 지금의 저와는 딴판입니다.
그렇게 딴판이 된 제 모습은 꿈에서 매우 좋게 묘사됩니다. 외모가 출중하고 재미있는 성격을 가졌는데 정의감까지 투철해서 혼자 부조리와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요. 이 꿈에는 아마도 지금의 저와는 다른, 저보다 나은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제 무의식적 소망이 반영되어 있을 것입니다. 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라고 평면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이번 꿈에서는 키 크고 잘생기고 정의로운 남자로 형상화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합니다.
현실에서 저는 저 자신의 모습에 그런대로 만족하고 있고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무의식은 가끔 저의 일부 또는 거의 전부를 바꿔서라도 아주 훌륭한 인간이 되어 문제를 쉽게 해결하고 사람들에게 각광받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나 봅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그게 과연 노력한다면 가능한 일일지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사람 안 바뀐다'는 말을 꽤 자주 듣습니다. 이것이 맞는 말인지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해야 할 것입니다. 이 말은 보통 사람의 나쁜 부분이 쉽게 개선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 쓰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는 어느 정도 타당한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고 유지해 온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심리치료에서도 만성적인 문제는 해결하기가 더 어렵지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람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변합니다. 우리의 신체가 세포가 끊임없이 죽고 새로 만들어지는 방식으로 존속되고 있다는 것을 아시나요? 정신에도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판단 기준과 행동 패턴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생존합니다. 일기를 꾸준히 쓰시는 분이라면 지금의 자신이 불과 몇 년 전의 자신과 매우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아마 있을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의 어떤 부분은 비교적 쉽게 바뀌고, 어떤 부분은 거의 바뀌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어떤 것이 얼마나 잘 바뀌는지 대략적으로 규명해 냈습니다. 제 꿈에서 바뀌었던 속성들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외적으로는 성별, 신장, 외모, 그리고 내적으로는 외향성, 도덕성, 진취성 정도가 있겠군요. 아시다시피 성별과 외모는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지만 신장은 현대 기술로는 다소 어렵습니다.
한편 외향성, 도덕성, 진취성과 같은 것들은 인간의 성격을 구성하는 요인들로서 상황과 시간에 대해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상황이 달라지거나 시간이 흐르더라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정리해 보면 저는 그럭저럭 잘생긴 남자가 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생 안에 키 크고 무지하게 잘생기고 모두에게 신뢰를 받으며 정의를 추구하는 쾌활한 영웅으로 거듭나기는 어렵겠습니다.
오늘의 결론은 제 무의식이 바라는 완벽한 인간이 되기는 힘들다는 것입니다. 노력을 얼마나 하든 우리가 가진 어떤 속성들은 어느 정도 안정적이어서 잘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슬픈 소식일까요? 제 무의식에게는 그럴지도 모르지만 의식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지금의 제가 좋고, 잘생기고 키 크고 성격 좋은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거든요. 앞으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이 모습 이대로 죽을 때까지 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신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 완전히 달라지고 싶었던 사람들에게는 슬픈 소식일까요? 제 생각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된 중요한 속성이 비교적 잘 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자아존중감(Self-esteem)'입니다. 자아존중감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개인의 총체적이고 전반적인 평가를 말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쉽게 변하지 않는 안정적인 특질로 여겨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후 연구에서는 자아존중감이 상황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을 바탕으로 연구자들은 자아존중감에 특질적인 차원뿐 아니라 '상태자존감(state self-esteem)'이라는 차원도 존재한다고 규정하였습니다. 상태자존감은 외부 자극이나 상황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쉽게 변할 수 있는 자아존중감의 차원입니다. 자신을 좋아하거나 좋게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자신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도록 하는 경험을 많이 한다면 스스로를 존중하게 될 수 있습니다.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기 위해 완벽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살면서 맞닥뜨리는 수많은 문제 앞에서 고전하고 실수하더라도 여전히 자신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 방식으로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잘생기고 성격 좋은 남자 영웅이 될 수 없대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제 무의식은 변덕쟁이라서 다른 꿈에서는 또 완전히 다른 모습을 꿈꾸거든요.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전혀 구체적이지 않고, 어쩌면 단지 지금의 나에 대한 막연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말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