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생의 일기
2017년 4월 9일, 저녁 7시 20분
엄마의 병명을 알았다. 인터넷으로 그게 뭔지 알아보며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보였던 증세들이 한 번에 설명이 됐다. 안 지는 꽤 되었나 본데 나만 오늘 처음 들었다. 그냥 나한테도 말하지. 이제 어린애도 아닌데. 아니면 어린애인가. 엄마가 소식을 전하고 나가자마자 눈물이 주룩 흘렀던 걸 보면 알 만한 것 같기도. 당장 죽는 병도 아닌데 내게는 마치 네 엄마는 이제부터 죽어갈 거란다,라는 말로 들렸다.
그것 말고도 적을 만한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친구가 남자친구랑 드디어 헤어졌는데 애정이 식었다길래 괜찮을 줄 알았더니만 막상 헤어지고 나니 죽네 사네 하면서 낮부터 울고 돌아다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날 좋아한다는 오빠를 정리한 것이다. 만나는 것이 지루한 걸 넘어 괴로울 지경이 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 직접 말하기도 껄끄러워 겹지인에게 잘 좀 마무리해 달라고 했다.
내 친구는 없이 못 산다는 남자를 붙잡지 못해서 수척해졌고 나는 나 좋다는 남자를 밀어냈는데 그중 실패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하다. 내 친구는 어찌 보면 대성공을 한 것이다. 남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 연애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좋은 것부터 나쁜 것까지 전부 다. 그러니 지금의 그것은 말하자면 영광의 상처다. 내 것은? 내놓기도 부끄러운 시답잖은 생채기다.
침대에 엎드려서 일기를 쓰려니 불편해져서 책상을 대충 치우고 앞에 앉았다.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것이 아닌 본래의 용도로 책상을 사용하는 것이 아주 오랜만이다. 공부를 한 지도 글을 쓴 지도 오래되었다. 나 뭐 하면서 살고 있었지. 밖에선 활기차고 사교적인 모습으로 돌아다니지만 속은 텅텅 비었다. 그래서 이렇게 무료한가. 텅 빈 속에 남은 찌꺼기가 있다면 다 긁어서 파내고 싶다. 깨끗하고 새로워지고 싶다.
그다음에 좋은 것으로만 꽉꽉 채우고 싶다. 반쯤 비우고 설렁설렁 사는 게 인생의 모토였는데 이젠 잘 모르겠다. 채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 채워서 좋은 사람이, 적어도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내 배는 단단하지만 조그맣고 내 바다는 유난히 변덕스럽다. 항해를 계속하려면 풍향을 끊임없이 재고 돛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어야 한다.
그래도 내 나름의 원칙이 있다고 생각했다. 행복이 우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늘 자존심이 최우선이었던 것 같다. 행복과 불행 앞에서도 나는 자존심을 세운다. 엄마가 난치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보통 사람은 엄마를 안아주거나 위로를 전하겠지? 하다못해 그 앞에서 훌쩍이기라도 하거나. 그러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될 것인지만 자꾸 찾는 게 다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계속 만나는 것이나 친구들을 쉽게 미워하는 것도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도 다 내 얇고 약한 껍데기를 지키려고 하는 짓 같다. 근데 그 껍데기는 나를 지키라고 있는 건데. 껍데기는 나를 못 지키는데 나는 껍데기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한다. 누가 내 상처를 푹 찔러도 아프단 소리 안 한다. 일단 입을 다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껍데기가 깨지지 않을까? 이미 조금 깨졌나? 아니, 다친 건 그 안의 것뿐이야. 껍데기는 아직 괜찮아. 그렇게 나는 안도한다.
생각만 한다, 나는. 생각만 계속한다. 오직 생각만. 그래서 남들이 나더러 쿨하다고 하는 거겠지. 너무 비겁하니까. 이제는 그러면 안 된다. 언제까지 껍데기를 위해 살 수는 없지. 없는 형편에는 자존심이라도 팔아서 나를 지켜야 한다. 그렇지만 껍데기 안에 있는 게 누구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군지도 모르지만 일단 지킬까? 그런데 어느 날 열어봤더니 들어있는 게 내가 아니라면, 아님 혹시 설마 텅 비었다면 그때부터는 뭘 지켜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