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대학원생의 일기
2023년 8월 28일, 오후 2시.
기묘한 초조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런 날이 가끔 있다. 내가 자는 동안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에 대해 기대보다는 불안에 가까운 감정에 감싸인 채 눈을 뜨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도 세상은 흘러가는데 왠지 좋은 일보단 꼭 안좋은 일이 일어났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곤 한다. 남들보다 늦게 일어난 날에 특히 심하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을 시간에 나는 잠들어 있었으니까.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채 휴대폰을 더듬어 찾았다. 그리고 간밤과 오늘 아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빠르게 확인했다. 긴급한 연락이 와 있는지, 나쁜 소식은 없는지, 세상이 한번 뒤집히진 않았는지. 카카오톡, 인터넷 뉴스, 유튜브를 빠르게 훑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날에는 대단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아침.
휴대폰으로 세상을 뒤적거리며 별 일 없었음을 확인하는 데에는 15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세상을 한 바퀴 돈 후에야 나는 겨우 일어나 씻으러 갔다. 불안이 가라앉은 자리에 기분 좋은 안도감 따위가 차오르지는 않았다. 잘못된 방법을 택했다는 증거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은 영문 모를 공허함과 가라앉은 기분까지 씻어내진 못한다. 그때쯤엔 다 의미 없는 짓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애초에 불안해할 것도 없었다. 세상이 격변을 했든 멸망을 했든 내 삶은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변하지 않는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까. 중심과 주변을 착각했다. 평소와 같이 눈을 뜬 이상 내 인생은 그대로인데 나는 다급히 무엇을 확인하려고 한 걸까. 세상에 정말 중요한 일이 일어났다고 한들 급하게 확인할 필요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잠에서 막 깨어난 내가 알게 됨으로써 뚝딱 해결할 수 있는 중대사란 웬만해선 없다.
문득, 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한테 졌는가? 세상에 졌다. 내 삶의 주도권을 나를 제외한 모두에게 고이 넘기며 하루를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면 하루가 누군가가 잡아끄는 고삐에 매달린 채 질질 끌려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는다. 초점이 외부로 옮겨져서는 돌아오지 못한다. 종일 틈틈이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가 알 수 없고 어찌 할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해.
사람들이 괜히 아침 루틴 같은 것을 만들어 지키는 것이 아님을 알겠다. 아침이 하루를 이끌고 습관은 인생을 구성한다. 내게도 아침 원칙이 필요할 것 같다. 의식적으로 시작하는 것. 세상이 아닌 내 상태부터 점검하는 것(가령 몸이 부었는지, 또는 뻣뻣한지, 정신은 또렷한지, 비염이 심해졌거나 종아리에 멍이 들진 않았는지). 삶의 우선순위를 내게 상기시키는 것. 하루가 내 의도 밖에서 저절로 열리지 않도록, 내가 원하는 하루가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곳을 골라 첫 수를 두는 것.
씻고 방으로 돌아와 창문을 여니 오늘은 하루 종일 흐릴 예정인지 공기가 온통 회색이다. 그러나 여름답지 않게 찬 바람이 불어와서 기분이 좋았다. 축축한 공기가 축축한 머리카락을 치우고 뺨을 적셨다. 고개를 좀 더 내밀었다. 여전한 세상이 차가운 손으로 내게 인사하고 있다. 불안이 천천히 잦아들고 나는 차분해진다. 커튼을 젖히고 창문만 열어도 세상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는데 작은 방안에서 작은 액정 너머로 들여다보려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