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가 무서워?
"캄페체로 가자." 어느 날 남편이 불쑥 말을 꺼냈다. 회사에서 그곳에 새 공장을 짓는데, 임원진에서 남편이 적임자라며 파견을 제안했다는 것이었다. 이미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던 터라 해외 생활 자체가 아주 막막한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는 나 혼자였고,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아이와 한국말도 서툰 네 살배기 막내까지, 두 아이의 엄마였다. 게다가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리며 국경을 넘는 일 자체를 부담스럽게 만들던 시기였다.
그런데, 뜬금없이 멕시코라니. 영어를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기에 미국이나 캐나다 같은 곳이라면 그나마 심리적 장벽이 낮았겠지만, 한 번도 제대로 상상해 본 적 없는 나라, 멕시코라니. 내 머릿속 멕시코는 온통 선인장과 뜨거운 태양, 그리고… 위험하다는 막연한 이미지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멕시코 캄페체로 가게 되었다고 주변에 알리자 열에 아홉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캄페체가 어디야?"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 걱정 어린 질문들이 쏟아졌다. "거기 위험하지 않아?", "애들 단속 잘해야겠다.", "미국도 마약 때문에 골치 아프다는데, 멕시코는 더 심하지 않겠어? 애들 마약 같은 거 금방 배우는 거 아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캄페체? 아, 칸쿤 근처래. 그래도 멕시코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1위라던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사실, 나 자신도 그 말을 온전히 믿지 못했으니까. 나에게도 멕시코는 여전히 기관총과 마약 카르텔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곳이었다.
십수 년 전인 2007년, 캐나다에 살 때 칸쿤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지만, 그곳은 이미 미국화된 휴양지일 뿐, 영어를 쓰는 관광객들로 북적여 진짜 멕시코의 속살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그래서 남편이 캄페체는 안전하다고 몇 번을 강조했음에도, 내 마음속 깊은 곳의 불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정은 내려졌고, 출국 날짜는 다가왔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스페인어 공부를 한답시고 넷플릭스의 <나르코스>를 정주행 하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었다. 화면 속 배경으로 나오는 콜롬비아는 나에게 스페인어를 쓰는 폭력과 음모가 난무하는 곳이었고, 나는 그 이미지를 멕시코도 똑같을 것이라며 현실과 뒤섞으며 스스로 공포를 키웠다. 결국, 가족과 지인들의 걱정 한 보따리에 나 자신의 불안감까지 더해, 마치 무게 초과 직전의 캐리어처럼 아슬아슬한 마음을 안고 멕시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마침내 도착한 캄페체. 처음으로 온 가족이 함께 월마트로 향하던 날, 차창 밖으로 스치는 낯선 풍경은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내 긴장감을 더욱 바짝 조였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던 알록달록하지만 어딘가 낡고 빛바랜 건물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빠르게 오가는 대화 소리, 후덥지근하면서도 이국적인 냄새가 뒤섞인 공기. 모든 것이 낯설고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나는 혹여 가방이라도 통째로 빼앗길세라 거의 품 안에 끌어안다시피 했고, 옆자리에 앉은 큰아이의 손을 나도 모르게 꽉 쥐었다. 녀석도 창밖을 힐끔거리며 잔뜩 굳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저 사람들 중 누가 갑자기 총구를 들이대도 이상하지 않아.’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계획했던 샴푸만 허둥지둥 집어 들어 계산을 하고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도망치듯 차에 올라탔다. 한숨 돌리고 집에 돌아와 확인하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으면 손에 들린 것은 샴푸가 아닌 바디워시였다. 어이없는 실수에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
며칠 뒤, 두 번째로 월마트를 찾았을 때도 여전히 현지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도, 눈이 딱 마주치면 그들은 피하는 대신 너무나 자연스럽게 "Buen día!(좋은 날이에요!)" 하고 명랑하게 인사를 건네거나, 수줍은 듯 잔잔히 미소 지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지나가던 이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Buen provecha! (맛있게 드세요!)" 하며 말을 건네기도 했고, 좁은 길에서 마주치면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가볍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이토록 스스럼없는 친절이라니. 늘 타인과의 일정한 거리에 익숙했던 서울에서는 좀처럼 겪어보지 못한, 조건 없는 따스함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
그제야 불현듯 깨달았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바짝 날이 서 있던 것은 오직 나 하나뿐이었다는 것을. 아, 이토록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었구나. 멋대로 만들어낸 편견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두려워했던 지난 시간들이 새삼 바보 같고 억울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이었다. 여전히 마음 한구석의 경계심을 완전히 떨치지 못한 채, 나는 남편과 두 아이를 따라나섰다. 목적지는 바닷가 산책로인 ‘말레꼰’ 옆에 자리한 작은 놀이터였다. 어둠이 부드럽게 내려앉기 시작한 그곳에는, 그러나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마법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흥겨운 라틴 음악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고,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쉴 새 없는 재잘거림, 부모들의 나지막하면서도 정겨운 대화 소리가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타고 실려왔다. 수많은 현지인 가족들이 마치 오래된 동네 친구들처럼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끄럼틀을 차지하기 위해 옥신각신하는 아이들, 그네에 몸을 맡기고 하늘로 발을 차 올리는 아이, 엄마 아빠와 술래잡기를 하며 까르르 넘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티끌만 한 근심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평화롭고 일상적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던 순간, 나는 마치 세게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듯한 강렬한 깨달음과 함께,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깊은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기관총과 마약 카르텔, 위험천만한 밤거리 같은 건 적어도 이곳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가족들의 사랑과 웃음소리가 가득한, 지극히 평범하고도 안전한 저녁 시간만이 부드럽게 흐르고 있을 뿐이었다. 나 혼자 너무 심각했고, 나 혼자 너무 많은 괴물들을 상상 속에서 만들어냈다는 것을, 그때서야 뼈저리게 실감했다.
캄페체는, 적어도 내가 첫발을 내디딘 이곳은, 처음부터 그런 평화로운 곳이었다. 총도, 도둑도, 날 선 경계심도 필요 없는, 그저 따뜻한 사람들이 미소로 서로를 맞이하는 곳이었다. 내 캐리어 가득 담아왔던 불안과 걱정은, 어쩌면 그 미소 한 번에 녹아내릴 만큼 허무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