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아 니디아가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작별 파티를 해주시겠다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는지 여러 번 물어보셨다. 나는 띠아가 해준 음식은 모두 맛있으니 아무거나 다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그녀는 그 후에도 몇 번이나 더 우리의 의견을 물으며 파티를 정성껏 준비해 주셨다.
파티 당일, 띠아 니디아와 남편 프레디, 그들의 아들들, 작은아이의 미술 선생님과 약혼자, 그리고 미술 선생님의 어머니 등 평소 가깝게 알고 지내던 동네 분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주셨다. 그들은 각자 작은 선물을 들고 와 따뜻하게 안아주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건넸다.
띠아 니디아는 타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맛있는 멕시코 음식과 음료수를 푸짐하게 준비해 테이블 위에 차려놓았고, 사람들은 늘 그랬듯이 각자의 하얀 접시에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담아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했다. 작은 정원에는 바비큐 그릴이 놓여 있었고, 지붕 아래 마련된 커다란 테이블에는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웠다.
그녀의 집 정원에는 늘 예쁜 꽃나무들이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한쪽에는 작은 농구 골대도 있어 아이들이 뛰놀기에도 좋았다. 나는 그곳에서 그동안 수많은 음식을 얻어먹었고, 수많은 피냐타 터뜨리기 구경을 했으며, 때로는 밤이 새도록 스페인어와 영어가 뒤섞인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었다. 스페인어를 아주 못하는 나였지만, 이상하게도 그곳에만 가면 갑자기 귀가 트이는 듯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고 듣고, 심지어 가끔씩은 적절한 반응까지 하는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지곤 했다. 다른 곳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한창 즐거운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띠아 니디아가 "Sorpresa!(깜짝 선물이야!)"를 외치며 디저트로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나왔다. 그런데, 글쎄… 그 케이크는 다름 아닌 태극기 모양이었다!
띠아 니디아는 우리를 위해 미리 베이커리에 태극기 사진까지 보내 특별히 주문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 정성 가득한 태극기 케이크를 보는 순간, 나는 그동안 애써 꾹꾹 눌러왔던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며 그만 "엥!" 하고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고맙고, 또 너무나 미안한,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이 한순간에 북받쳐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띠아 니디아는 나에게 늘 아낌없이 맛있는 멕시코 음식을 만들어다 주었고, 예쁜 꽃을 선물해 주었으며, 한국이라는 나라와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었다. 그 모든 따뜻한 마음들이 갑자기 한꺼번에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울컥했던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그 특별한 태극기 케이크를 앞에 놓고 환하게 웃으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날의 사진은 지금도 내 핸드폰 사진첩 한구석에 소중히 저장되어 있다. 가끔 그 사진을 스크롤하여 찾아볼 때마다, 아니, 지금 이 글을 쓰며 그때의 따스했던 순간들을 찬찬히 떠올리는 바로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눈가가 뜨거워지며 왈칵 눈물이 쏟아지곤 한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 너머로, 그들의 따뜻한 미소와 태극기 모양 케이크의 선명한 색깔이 어른거린다.
나는 그들이 없었더라면, 이 힘든 타지 생활을 과연 3년이나 버텨낼 수 있었을까? 그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멕시코라는 나라에 대해 이렇게까지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가슴에 품고 돌아올 수 있었을까?
아무런 조건 없이 그렇게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고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주는 사람들 틈에서, 한국에서는 항상 잔뜩 날이 서서 매사에 예민하게 굴던 ‘극 I’ 성향의 내가, 이곳 캄페체에서는 이렇게나마 자주 웃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때 미국에서의 삶을 막연히 꿈꾸며, 어쩌다 보니 계획에도 없던 멕시코 캄페체에 ‘뚝 떨어진’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에게 멕시코는, 특히 이곳 캄페체는, 내가 한때 꿈꿨던 그 어떤 곳보다 백만 배는 더 따뜻하고 좋은 곳이었다고.
나는 예전에 누군가 물어보면 항상 캐나다가 내 마음속 두 번째 고향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멕시코 캄페체의 정 많고 따뜻한 사람들이 나의 새로운 두 번째 고향으로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