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내 안의 편견이 부서지던 날

by ElenaLee


작별의 시간, 떠오르는 기억들


띠아 니디아가 열어준 따뜻한 작별 파티를 겪고 나니, 캄페체에서의 지난 3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이곳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가졌던 수많은 걱정과 편견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특히 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던 오랜 불신을 깨뜨려준 두 가지 기억이 유난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사라진 지갑, 그리고 낯선 청년의 미소



한 번은 주말에 나 혼자만의 짧은 여행을 앞두고, 가족들을 위해 미리 장을 보러 샘스클럽(Sam’s Club: 코스트코같은 멤버쉽 창고형 마켓)에 들렀을 때였다. 장을 보고 나와 트렁크에 짐을 싣고, 큰아이를 픽업하러 부랴부랴 차를 몰던 중 남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 당신 지갑 잃어버렸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 같았다. 아차, 카트에다 지갑을 놓고 짐만 실은 채 온것이 생각났다. 내 지갑을 주운 사람이 지갑안의 신분증에 있던 남편 번호로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었다.


다시 샘스클럽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겨우 도착했지만 지갑을 잊어버린 탓에 멤버십 카드가 없어 매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지갑을 찾아주신 그분께 문자를 보냈고, 잠시 후 젊은 청년 한 명이 입구로 걸어 나와 나를 확인하고는 환하게 웃으며 지갑을 건네주었다. 현금도, 카드도, 신분증도 모두 그대로였다.


경황이 없어 연신 고맙다는 말만 반복하는 내게, 그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환화게 웃으며 다시 매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의 미소는 꾸밈없고 선량해 보였다. 차를 몰아 다시 학교로 향하며 나는 안도감과 동시에 제대로 된 감사 표시 하나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저 나의 큰 행운이었을까, 아니면 이곳 사람들의 평범한 정직함이었을까. 사실 그 후로 한번 더 지갑을 잊어버린 적이 있었고 또 모든것이 그대로인채로 돌아왔다.



경찰에게 돈으로 해결이 될까?



또하나 나의 편견은 멕시코나 라틴쪽 사람들은 부패한 정부나 공권력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편견마저 완전히 부서지는 사건을 겪게 되었다.


메리다에서 칸쿤으로 가족과 함께 향하던 길이었다. 갑자기 하얀색 경찰차가 사이렌 소리를 내며 내 차뒤에서 확성기로 말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사이렌 소리에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난가보다.” 백미러로 보이는 경광등 불빛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요란하게 생각하고있었다. ‘그래, 멕시코에서는 이럴 때 경찰에게 돈을 좀 쥐여주면 해결된다고 들었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지갑에서 얼마간의 돈을 꺼내 꽉 쥐었다. 이성이 마비된 채, 편견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나의 무지가 부서지던 날



하지만 나의 무지한 편견은 그 자리에서 산산이 조각났다. 경찰은 내 손에 들린 돈을 보더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 치우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차분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내가 속도를 위반했으며, 원칙대로라면 너의 번호판을 회수해갈 것이고, 너는 벌금을 내야만 번호판을 되찾을 수 있으며, 그때까지 운전을 못 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태도는 지극히 원칙적이고 프로페셔널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하고 부끄러워서, 나의 엉망진창인 스페인어로 간절하게 칸쿤으로 가족 여행을 가는 중이니 제발 한 번만 봐달라고 애절하게 호소했다. 그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다음부터는 절대로 속도를 위반하지 마십시오.”


그는 내가 알던 편견 속 경찰처럼 돈을 받지도,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도 않고, 그저 교통 법규를 잘 지키라는 경고와 함께 우리를 보내주었다.


그날 나는 또 한 번, 나의 무지와 편견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내 안의 세상에, ‘쨍’ 하고 선명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캄페체에서의 3년은 이렇듯 내가 가진 낡고 흐릿한 편견의 조각들을 하나씩 깨뜨려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내가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었던, 그곳 사람들의 정직함과 따뜻함, 그리고 의외의 원칙들을 나는 그렇게 온몸으로 배워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