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이 모두 떠나고 텅 빈 ‘까사 블랑카’에는 우리 가족의 마지막 일주일 분량의 단출한 짐만이 남았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 여행지를 알아보았다.
이미 우리가 살았던 멕시코 동부의 캄페체나 메리다 등은 경험을 통해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멕시코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멕시코시티는 여전히 나에게 심리적으로 꽤 위험한 곳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나도 멕시코에 대한 편견을 다 부셔버리진 못했나보다. 거기다 예전에 멕시코시티에서 위험한 일을 겪었다는 지인의 경험담(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강도를 만났다든지 하는)을 들었던 터라, 볼거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 안 가면 평생 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결국 우리는 다른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칸쿤을 몇 번 가보았지만, 그곳이 너무 미국 같은 느낌이라며 썩 내켜하지 않았다. 바깔라르나 다른 유명 관광지들은 이미 여러 번 방문했던 터라, 아직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문득, 지난번 부모님과 함께한 유카탄 반도 여행길에 잠시 스쳐 지나갔던 툴룸(Tulum)이 떠올랐다. 바깔라르에서 칸쿤으로 향하는 길목이라 아주 잠깐 들렀던 곳이었는데, 짧은 순간에도 그 독특한 분위기가 무척 매력적이라 언젠가 한번 제대로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멕시코 여행지는 툴룸으로 결정되었고, 캄페체에서 남은 며칠 동안 마지막 짐들을 정리하고, 고마웠던 사람들과 눈물의 작별 인사를 나누고 툴룸으로 가서 에어비앤비를 얻어 그곳에서 3일 정도 아이들과 함께 머물렀다.
그리고 지금도 툴룸은 나에게 정말 멋지고 황홀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어쩌면 나의 길었던 멕시코 생활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해 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하고 기가 막히게 잘 고른 장소였다.
칸쿤처럼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긴 했지만, 그래서 곳곳이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거나 이미 개발이 완료된 곳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툴룸은 아직 때가 덜 탄 듯한 순수함과 야생의 매력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세련된 부티크 호텔에서 불과 한 블록만 지나면 현지인들의 소박한 가옥과 허름한 타코집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존하는 곳, 아주 현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아주 시골 같은, 이상하지만 그래서 더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그곳의 레스토랑들은 또 어찌나 하나같이 맛있고 예뻤는지! 특히 어느 날 저녁, 구글 평점이 높아 찾아갔던 한 식당의 부리토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다. 외관은 다소 허름해 보여 반신반의하며 들어갔는데,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그 풍부한 맛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선한 아보카도와 고소한 콩, 그리고 갖가지 속 재료가 꽉꽉 채워져 그야말로 터질 듯했던 그 부리토는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만찬으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카리브해의 절벽 위에 세워진 고대 마야 유적지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또 어떠했던가. 눈이 시리도록 새파랗고 영롱하게 빛나던 그 바다의 모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황홀한 풍경에 취해, 나는 남편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여보, 나 나이 더 먹으면 여기서 살고 싶다. 너무 멋있는 곳 아니야?”
그러자 우리 남편은,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낭만적인 꿈을 현실적인 조언으로 산산조각 내주었다. “음… 여기는 애들 키울 만한 곳은 아닌 것 같아. 딱 젊은 외국 애들이 좋아할 만한 힙한 느낌이지. 병원도 별로 없어 보이고, 물가도 꽤 비싸고 말이야. 예쁘긴 한데, 우리가 정착해서 살 곳은 못 되지. 차라리 살려면 이런저런 기반 시설이 다 갖춰진 캄페체가 훨씬 낫지 않겠어?”
나는 속으로 ‘그래, 당신은 캄페체 엄청 좋아하세요! 나는 나중에 나 혼자라도 툴룸에서 살란다!’ 하고 외쳤지만, 사실 남편의 말에 100프로 동의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아름다운 툴룸에서의 짧은 마지막 여행을 즐기면서도, 문득문득 우리가 떠나온 캄페체를 그리워했다. 그곳에서의 시끌벅적했던 일상과 따뜻했던 이웃들이 사무치게 생각났다.
툴룸에서 메리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지난 3년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를 질색하게 만들었던 그 지긋지긋한 더위와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던 벌레들, 졸졸 나오던 물과의 사투,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답답함도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품어주었던 따뜻한 이웃들의 미소와 소박한 일상 속에서 느꼈던 평화, 디나와 니디아 아주머니, 카렌에게서 받았던 조건 없는 사랑,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내 안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 준 이 땅에 대한 깊은 연민과 애정이 교차했다.
그렇게 나에게 캄페체는 미움과 사랑이라는 양가감정을 동시에 안겨준, 잊지 못할 곳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아이들은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가 먼저 그 치열하고 숨 막히는 경쟁 사회에 다시 잘 스며들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누렸던 이방인으로서의 알량한 자유와 무관심이, 때로는 불편했지만 결국 나를 편안하게 만들었던 그 모든 것이 그리워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든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는 아쉬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어쩌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슬픔까지, 그야말로 만감이 교차했다.
비행기 창문 너머로 점점 작아지는 멕시코 땅을 바라보며, 나는 이 모든 복잡한 감정의 실타래를 가슴 깊이 묻었다. 좋았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 그 모든 것이 이제는 과거가 되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해 나아간다고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이 뜨거운 땅에 남아있는 듯했다. 나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멕시코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그렇게 흘려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