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텅 빈 집, 그리고 남겨진 초상화

by ElenaLee


이삿짐 싸는 날, 텅 빈 집 그리고 멕시코의 마지막 음악 소리



주변 사람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드디어 캄페체를 떠나기 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도 어느덧 마침표를 찍었고, 약속된 날짜에 이삿짐센터 사람들이 도착했다.


이틀에 걸쳐 짐을 정리하고, 커다란 흰색 이삿짐 트럭에 짐을 실을 것이라고 했다. 대여섯 명쯤 되어 보이는 작업자들은 아주 꼼꼼하게 짐을 쌌다. 식탁 다리까지 하나하나 분리해서 박스지로 꽁꽁 싸고 테이프로 감는 모습을 보니, 처음엔 왜 이틀이나 걸릴까 했던 의문이 나중에는 ‘이틀 안에 다 끝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바뀔 정도였다.


집 안의 물건들이 하나둘씩 포장되어 밖으로 나가자, 내 마음도 마치 그 물건들처럼 조금씩 비워지는 것 같았다. ‘아, 이제 정말 멕시코를 떠나는구나.’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한창 짐을 싸던 중, 잠시 2층에 널어놓았던 아이들 옷을 걷으러 올라갔는데, 옆집에서 언제나처럼 흥겨운 라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옆집에 무언가를 수리하러 온 작업자가 일하면서 틀어놓은 음악이었을 것이다. 빨래를 널거나 걷을 때 주변에서 누군가가 크게 틀어놓아 동네사람들이 다 들을 것 같았던 음악은 항상 나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아, 내가 지금 정말 멕시코에 있구나’ 하는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고마운 장치였다. 만약 그 음악이 없었다면, 캄페체에서의 내 일상은 어쩌면 한국의 어느 골목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금방이라도 어깨를 들썩이며 춤이라도 출 수 있을 것 같은 그 경쾌한 리듬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아, 이제 이렇게 멕시코 사람들이 틀어놓은 흥겨운 음악을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정말 아쉽다. 언제 또 이런 음악을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작은 옷가지를 개키며 가만히 그 마지막 선율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는 한국에서 잘할 수 있을까? 끝없는 걱정의 무게



이틀 동안 모든 짐이 다 옮겨지고 텅 비어버린 집을 보니, 마음이 복잡하게 얽혔다. ‘나는,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다시 한국에 돌아가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스페인어도 전혀 모르던 아이들을 거의 마구잡이로 현지 학교에 밀어 넣었지만, 아이들은 지난 3년 동안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주며 잘 버텨주었고 잘 해냈다. 그러니 한국에서도 분명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항상 나였다. ‘내가 과연 잘해나갈 수 있을까…’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마음이 어지러웠다.



웃음과 눈물 사이: 카렌과의 아주 특별한 작별 선물



떠나기 며칠 전, 친구 카렌과는 서로의 초상화를 그려 선물로 남기자는 조금은 엉뚱한 약속을 했다. 우리는 집에 마주 앉아, 물 조절도 제대로 되지 않는 뻣뻣한 학교용 수채화 붓으로 서로의 얼굴을 그리며 한참 동안 킥킥거렸다.


하지만 그렇게 장난처럼 완성된 그림 속에서, 그녀가 그린 내 얼굴은 뜻밖에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의 우는 모습이나 힘들어하는 모습만 기억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나 보다.


반면 내가 그린 그녀의 얼굴은, 솔직히 말해 내 큰아이가 항상 내 그림을 보고 "엄마, 이거 발로 그린 거야?" 하고 놀릴 정도의 수준이하의 실력인데, 역시나 하얀 달걀귀신같이 그려놓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렌은 자신의 집에 돌아가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내 그림을 걸어 놓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삿짐에 미처 넣지 못한 새 마스크 한 박스를 들고 그녀의 집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카렌의 남편이 의사라 마스크가 매일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기억나서였다), 정말로 현관에서 바로 보이는 벽 한가운데에 내가 그린 그 ‘귀신같은’ 그녀의 초상화가 떡하니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카렌은 내 그림을 보더니 자기도 웃으며 말했다. "음… 솔직히 나랑 별로 닮지는 않았어. 하지만 볼 때마다 네 생각이 나서 웃게 될 것 같아!"


그래, 어쩌면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이 서툰 그림들을 보게 되겠지. 못 그려서 오히려 다행이다. 보고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따뜻한 베소(beso)를 나누고, 언젠가 꼭 다시 보자는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모든 것이 초현실 같던 날, 떠남을 실감하다


모든 것이 꼭 초현실적인 꿈처럼 느껴졌다. 나는 아직 이곳 캄페체에 있고, 주변 풍경도, 사람들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며칠 뒤면 나는 한국으로 떠난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