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을 뒤로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6개월이 흘렀다. 귀국 초기만 해도 나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삶의 주인으로 온전히 서지 못한 채 익숙한 불평과 원망을 반복하곤 했다. 하지만 시간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또렷하게 보이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선명하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나는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아닌 외부 환경이나 타인에게 넘겨주고 내 멋대로, 내 감정대로만 살아왔던 지난날의 모습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애쓰는 중이다. 특히 내가 캄페체에서 만났던 그 따뜻한 멕시코 사람들처럼,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고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 가끔 예전의 모습이 불쑥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곤 한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 진짜 평화가 찾아올 때, 나는 조금 더 괜찮은,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놀라운 변화는 한국에서의 일상 곳곳에서도 발견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멕시코로 떠나기 전에도 살았던 곳이지만,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길가의 이름 모를 나무들과 작은 풀들에게도 새삼 호기심 어린 눈길을 주게 되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파트 단지 안에 벚꽃이 그렇게 눈부시게 피어나는지, 여기서 5년을 넘게 사는 동안 까맣게 몰랐다가 이제야 그 아름다움을 알아차리고 감탄한다.
캄페체에서 매주 물통을 사 나르던 수고로움을 겪어봤기에,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했던 집 안의 정수기에서 콸콸 쏟아지는 깨끗한 물 한 잔에도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알게 되었고, 건조기와 식기세척기가 스마트폰 앱으로 제어되는 최첨단 기술에 새삼 신기해하며 감탄하는 소소한 여유도 생겼다. 아이가 학원에 자전거를 타고 혼자서 오가는 평범한 풍경,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작은아이의 미술학원과 태권도장을 걸어서 데려다주는 일상 또한, 그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간을 겪고 나니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멕시코에서의 경험은 이렇듯 한국에서의 익숙했던 풍경마저 새롭게 보도록 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어쩌면 나는, 한때 미국에서의 삶을 막연히 꿈꾸며 그곳만이 아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캐나다에서의 아름다운 기억이 영어권 국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을 키웠고, 멕시코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는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무시했던 나의 편협함도 있었다. 하지만 캄페체에서의 3년은 그런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려주었다. 그곳에서 나의 아이들은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완수하며 협동하는 법을 배우고 여러 가지 창의적인 숙제 등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시선을 넓히는 연습을 했었다. 적어도 교과서만 달달 외우고 영어와 수학에 목숨을 걸지 않고 조금 더 나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문득 캄페체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칸쿤을 마치 강원도 가듯 넘나들 수 있었던 지리적 이점, 앞마당처럼 누렸던 에메랄드빛 카리브해의 눈부신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사치스럽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사람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기던 그들의 꾸밈없는 마음. 그것이 바로 내가 그토록 배우고 싶었지만 늘 놓치고 살았던 가치들이 아니었을까. 나는 머리로는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항상 후회와 원망만가득했던 나의 지난 삶을 반성한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것을, 그 아름다운 곳에서의 기억을 이렇게 글로 남겨야만 했다. 그리고 나 자신도 이 글쓰기를 통해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들을 다시 한번 떠올리고, 관계에서의 미숙했던 점이나 앞으로 더 발전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난 글쓰기를 통해서 멕시코에서의 3년. 그 시간들이 단순히 고생스럽고 힘들었던 타향살이의 기억으로만 남기보다는,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너그러워지며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소중한 경험이었노라고, 나는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멕시코의 캄페체가, 아니 멕시코의 동부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그곳 사람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지, 그리고 우리가 가진 편견 너머에 얼마나 괜찮은 세상이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직접 살아보기 전엔 미처 몰랐지만, 그곳은 정말이지, 다시 한번 말하건대, 참 괜찮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