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작별의 시간, 그리고 남겨진 걱정들

by ElenaLee


떠남의 무게: 아이들 걱정, 그리고 뒤바뀐 숙제



이삿짐을 빼는 날짜가 정해진 후, 내 머릿속은 온통 큰아이의 학교 문제로 가득 찼다. 멕시코는 미국처럼 9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는 시스템이라, 한국에서 5학년 1학기를 마치자마자 이곳에 왔던 큰아이는 이곳에서 갑자기 5학년 2학기로 편입하게 되어 반 학기의 공백이 생긴 상태였다.


만약 한국에 돌아가서 제 학년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한 학년 낮춰지게 될까 봐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온갖 키워드를 넣어 찾아봐도 다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결국 서울시 교육청 담당 부서에 정식으로 문의 메일을 보내고 카카오톡으로 상담까지 받았다. 남편은 남편대로 큰아이의 학교생활기록부나 기타 서류들이 한국에서 문제없이 사용될 수 있도록 꼼꼼하게 챙겼다.


작은아이는 어차피 한국에 돌아가도 초등학교 입학 전이라 특별히 필요한 서류는 없는 상황이었지만, 또 다른 걱정거리가 있었다. 두 살 무렵 코로나가 시작되어 마스크를 쓴 채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네 살이 되던 해에 갑자기 멕시코로 와서 스페인어 환경에 노출되었던 작은아이는 한국말을 마치 교포처럼 서툴게 구사했다. 그동안 스페인어 배우는 것에만 온 신경을 쓰느라 정작 모국어인 한글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해 글자조차 모르는 상태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의 스페인어 적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이제는 갑자기 모든 것을 되돌려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아이를 맞춰야 한다는 사실이 또 다른 큰 숙제로 다가왔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막막했다.



가장 어려운 말, "우리 이제 떠나": 디나와의 눈물의 작별



주변 사람들에게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떠나게 되었다고 말을 꺼내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먼저 디나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 것 같았다. 남편과 함께 그녀와 그녀의 여동생을 보스턴 피자로 불러 저녁을 함께하며, 나는 어렵게, 정말 어렵게 말을 꺼냈다.


“디나… 그리고 네 동생에게도 할 말이 있는데… 우리 가족,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디나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의 여동생도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아주 가끔씩 “남편이 한국에 가고 싶어 해”라고 지나가듯 말한 적이 있었기에 어렴풋이 예상은 했을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갑작스러운 통보는 분명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말? 그렇게 갑자기? 언제… 언제 떠나는데?” 디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 나왔다. “응… 남편 회사 사정 때문에 좀 급하게 결정됐어. 아마 11월 초에는 이삿짐을 빼고, 12월 초에는 비행기를 타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는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결국 디나의 눈가가 빨개졌고, 그 모습을 본 나도 참았던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던가.


나는 그녀에게 정말 많이 의지하고 있었고, 그녀는 타지에서 외로운 나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때로는 친동생같은 존재였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울며, 그동안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들을 떠올리고 다가올 이별을 아쉬워했다.



한국이 좋은 첫째, 뭐가 먼지 모르는 둘째



큰아이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내심 반기는 눈치였다. 원래 한국에서도 자전거를 타고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을 좋아했던 아이였는데, 캄페체에서는 길 노면 상태도 좋지 않고 날씨도 너무 더워서 자전거를 타고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만 가면, 심지어 한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자전거를 마음껏 탈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맛있는 한국 음식과 재미있는 놀거리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제법 들떠 있는 듯했다.


반면 작은아이는, 멕시코에서 보낸 시간이 한국에서 보낸 시간과 비슷하고 이곳에 친구들도 많아서 혹시나 아쉬워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직 어려서 그런지 ‘한국에 간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여행을 가는 거라고 생각하는 듯해 보였다.



티아 니디아의 문자, 그리고 남겨진 마음들



티아 니디아에게도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따뜻하게 안아주며 긴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마치 큰 이모가 조카에게 건네는 말처럼, 진심 어린 충고와 격려가 담긴 글이었다.


“사랑하는 딸아(mi hija), 새로운 곳에 가서 정착하려면 네 남편이 너를 많이 필요로 할 것이다. 네가 옆에서 지혜롭게 잘 도와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렴. 언제나 너희 가족을 위해 기도하겠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에 또 한 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렇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예정된 이별을 하나씩 준비하며, 캄페체에서의 마지막 시간들을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