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 아이들과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내게 다가와 조용히, 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미국에서 새 사장님 오시잖아. 그때 정식으로 말하려고. 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그는 덧붙였다.
마침 한국에 자신이 일하던 분야의 자리가 비었고, 이번이 아니면 다시 그런 기회를 잡기 어려울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고 했다.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림이 없었고, 말투에는 이미 모든 결정이 끝난 사람 특유의 확신이 묻어 있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멕시코에 온 이후, 우리가 이 주제로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며 대화를 나누었던가. 버티자,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아이들도 이제 제법 잘 적응하고 있고, 나도 이제는 이곳의 삶이 마냥 싫지만은 않다고 몇 번이나 그를 설득하고 또 설득했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남편의 마음이 언젠가는 바뀌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 같다. '알았어',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아니야!'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달랐다. 그의 결심은 확고해 보였다. 순간,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당신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해.”
그러나 내 속에서는 ‘아직 아니야! 지금은 안 돼!’라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진짜로 멕시코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결정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르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무언가 아주 큰 것이 변하려 하고 있다는 무겁고 막연한 예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나는 만약에 우리가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해외 파견 준비부터 정착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마무리하고 떠나는 데도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은 주어질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상황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급박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의 말이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그동안 내가 이곳에 정착하기 위해 해 왔던 모든 노력과 준비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국에 이렇게 빨리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당장 다음 학기 준비도 거의 마친 상태였다.
작은아이는 2024년 9월부터 프리마리아(초등학교)에 들어갈 예정이라 위아래 교복을 네 벌씩, 체육복까지 미리 다 맞춰놓았고, 큰아이 역시 키가 훌쩍 크고 기존 교복 색깔도 바래서 새 교복으로 위아래 네 벌을 이미 장만해 둔 터였다. 아이들 새 학년 교과서 역시 꽤 큰 액수의 비용을 들여 모두 준비해 두었고, 심지어 다음 해 집 렌트비의 절반이나 되는 돈을 이미 한국에서 송금받아 페소로 가지고 있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되돌려야 한다니. 나는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당장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이웃들과 친구들에게는 이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큰아이가 한국의 중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등을 정신없이 인터넷으로 뒤지고 있는 신세가 되었다. 모든 것이 그저 혼란스럽기만 했다.
당장 12월에 우리의 짐을 한국으로 보내려고 했는데, 10월에 부랴부랴 알아본 해외 이삿짐센터들은 연말이라 이미 오래전에 예약해 놓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자리가 없다고 했다. 겨우 수소문 끝에 11월 초로 이삿짐 빼는 날짜를 잡았지만, 아이들의 학교부터 시작해서 집계약이 끝나는 12월까지는 어떻게든 버텨야 하는 상태라 집 안의 모든 짐이 빠져나간 뒤 한 달 동안을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또 다른 숙제로 다가왔다.
팔 수 있는 짐들은 최대한 팔고, 남은 살림살이들을 정리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이들 학교는 어떻게 정리해야하는지, 정착하면서 구입했던 차는 또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 캄페체에서 샀던 차를 똑같은 대리점에 거의 3년 만에 반값에 되파는 과정에서 손해는 또 얼마나 클 것인지, 그리고 그 돈을 언제쯤 멕시코 은행 계좌로 받아 한국으로 안전하게 송금할 수 있을지까지, 모든 것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해야만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냐, 안 가냐’를 고민하며 남편과 줄다리기를 하던 입장에서, 갑자기 모든 것이 동전 뒤집히듯 확정되어 무조건 ‘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남편이 사장에게 정식으로 귀국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이 받아들여져 출국 날짜가 정해진 순간, 나는 그 수많은 불확실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애써 외면하려 했던 ‘떠남’이라는 현실을 더 이상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때까지도 이 모든 것이 꿈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