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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Jun 27. 2024

"무기력을 어떻게 관리하셨어요?"

내가 왜 무기력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했을까?

글쓰기 줌모임에서 모임장님이 하신 질문이다. 무기력이 심했으나 최근부터 무기력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하신 질문이었다. 갑작스레 받은 질문이라 어떤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 안 날 만큼 횡설수설 대답을 했다.



모임이 끝난 후 한참 동안



‘내가 왜 무기력이 관리되고 있다고 말하고 다녔지?’  (다른 모임에서도 이렇게 말하고 다녔거든)



매 순간 의식하지 않고 있어서 특별한 이유를 생각해 보지 않았다. 무기력과 과대희망을 반복해 오면서 최근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고 극복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무기력 기간이 짧아지고 찾아오는 빈도가 줄어든 것은 확실했다.



최악의 무기력이 찾아왔던 그날부터 천천히 회상해 본다.







2022년 10월쯤.



큰 절망감과 좌절감이 몰려오며 최악의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모든 의욕이 사라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고 마음은 무너졌다. (이 이유에 대해선 다음에 ^^)



몇 주가 지나서야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였다면 아무 상관없었겠지만 나에겐 가정이 있고 두 아이가 있었다.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늘 그러했듯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으로 갔다. 도서 검색대에서 '무기력'을 검색했다.



그중 나의 눈에 띄었던 책.




[숨은 붙어있으니 살아야겠고]



이 제목이 그 당시의 내 마음을 정확하게 표현해 주고 있었다. 다르게 말하면 숨이 떨어지길 바라기도 했다.

내용은 여느 무기력 심리학책과 비슷했다. 셀리그먼 양반이 나오고 그에게 실험당해 학습된 무기력이 생긴 동물들.



이 책에서 나를 움직일 수 있게 만든 한 문장을 발견하게 된다.





무기력에 빠진 개는 자극을 피하기 위한 능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거의 없다. 따라서 그들이 행동에 의해 자극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배울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그 가능성을 알게 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문자 그대로 개들의 목에 목줄을 걸고 잡아당길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강제적 조치



무기력이 학습된 개는 자기를 괴롭히던 자극이 없어졌어도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럴 때 자극이 없어졌음을 보여주기 위해 목줄로 잡아당겨 확인해 주는 것이다. 여러 번 목줄을 당겨 알려주다 보면 자신을 괴롭히던 자극이 없어졌음을 깨닫게 되고 서서히 학습된 무기력에서 벗어난다.



나에게도 이 강제적 조치가 필요했다. 나는 인간이기에 누가 목줄로 잡아당겨 줄 수 없으니 스스로가 목줄을 당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기로 한 목줄 당기기는 ‘아이들 아침 차려 주기’



그 당시 난 몇 년 동안 밤늦게 자야 했기에 아침에 늦게 일어났다. 출근이 9시고 회사가 가까워서 8시 반이 넘어서야 일어나 준비하고 출근했다. 당시 4학년이었던 큰 형아는 사다 놓은 대용량 시리얼에 우유를 스스로 챙겨서 먹고 등교를 했다. (등교할 때 마중도 못해줬어~~)


 

지금이야 새벽기상이 어느 정도 습관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 아침을 차려주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불면증이 심해 일찍 잠들지 못했다) 그리고 무기력한 사람에게 음식을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내가 가진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과 일단 시작하면 (초반에는) 열심히 하는 나의 미친 자기 계발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평소보다 1시간 빨리 일어나서 아침을 차려주고 함께 앉아 그 시간을 보냈다. 등교할 땐 현관 앞까지 가서 배웅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하겠다고 다짐했고 가족에게도 선언하고 인스타에도 인증했다. 팔로워도 별로 없는 개인 인증용 계정이었지만 나의 강제적 조치로서의 역할로는 충분했다.



(이러한 강제적 조치는 정해진 것이 없다. 자신이 이 정도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그 당시 아침 메뉴 사진 - 난 처음 시작할 땐 대충하는 법이 없다. 지금은 이렇게까진 안 함 ㅋㅋ





아침의 시작이 좋으니 나머지 일상들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갔다.

23년 1월부터 새벽 기상을 해 책을 읽었고 백책백서라는 챌린지를 통해 일 년 동안 백 권을 읽었다. 책을 읽다 보니 부동산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강의를 들으며 임장도 다녔다. 꾸준히는 아니지만 달리기도 다시 시작했고 걸어서 출퇴근하는 등 많이 움직이려고 노력하게 됐다.



이 작은 강제적 조치가 우리 가정에 불러온 변화는 제법 컸다. 큰 형아 등교를 배웅해 주던 어느 날 아이가 나가면서 손하트와 손뽀뽀를 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딜 나갈 때마다 포옹을 하고 "사랑해"라고 말한 후 나간다. 자기 전에도 꼭 와서 포옹하고 "엄마, 잘 자~ 사랑해!" 하고 간다.

학교에 다녀오면 재잘재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조리 쏟아낸다. (원래 말이 별로 없었거든?)



중간중간에 무기력과 우울감이 찾아왔지만 아이들 아침 차려주기와 독서는 멈추지 않았다. 

이 두 가지가 무기력이 왔을 때 계속 움직이게 해 준 원동력이 된 것 같다. 물론 무기력과 함께 오는 우울감 같은 감정이나 기분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 했다.(이것도 다음에 ^^)



이것이 그동안 무기력이 관리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 방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해 내는 한 가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지 않으려 했던 예전의 무기력과 다른 점이다.



2024년 5월 중순 최악까진 아니지만 좀 강한 무기력과 우울감이 왔다. 예전처럼 모든 게 무너졌다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여전히 아이들 아침을 차려주고 가끔 늦잠도 자지만 새벽에 독서도 한다.



무기력이 왔다면 딱 하나만 생각하자. 일어나서 내가 할 딱 하나의 행동. 그 행동을 매일매일 하다 보면 그 행동이 또 다른 행동을 하게 하고 또 다른 그 행동이 또또 다른 행동을 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좋다. 일상을 살아내는 힘은 대단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 일어나서 이불 정리하는 것, 나가서 1분이라도 걷는 것. 그 사소하지만 억지로라도 하는 그것으로 인해 삶은 서서히 변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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