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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유진 Sep 11. 2024

약속, 숙제

이천이십사년 구월 칠일, 팔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싫다.

말 한마디라도 진심으로 무겁게 생각해 주는 그런 사람이 곁에 많았으면 좋겠다.

흘러 지나가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숙제가 되기도 하니까.


주말에 갑자기 일을 하게 될 수 있는 직업이기에 주말 약속을 쉽게 잡지 않는 편이다. 물론 주말에 일을 하게 된다면 미리 주말에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혹시'라는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 한 달 전부터 미리 약속을 잡는다는 건 나에게 부담이 된다.

약속을 어기기 싫어서 더 그렇다. 나 때문에 약속이 취소되는 건 최악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잖아요.

불가항력적인 일로 인해 취소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나와 한 약속을 가볍게 여기고 취소하는 경우라면 상처를 많이 받는다. 그 이유가 외로움을 많이 타서인가? 오늘 처음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다. 나에게 확신이 없으면 말로 꺼내지도 않는다. 못 지킬 거 사람 기대하게 왜 말을 해서 상처 주는 건지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물론 이해를 아주 못하는 건 아니다. 인사를 하듯 아무 의미 없이 건네는 약속도 있는 걸 아니까. 나 또한 그런 가벼운 약속을 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들이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가볍게 말하지 않는다.


날짜가 정해진 약속이 취소되면 상실감은 더 커진다.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해 캘린더에 적어놓고 캘린더를 볼 때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워 J의 성향이 이럴 때 나타나나 싶다.

계획형 인간.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면 기깔나게 세우는 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계획이 어긋나는 걸 못 견디기 때문에. J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거지 뭐.

어릴 때부터 플래너를 쓸 때도 계획을 미리 적어놓은 적은 거의 없었다. 그날 내가 한 일을 하루가 끝나갈 무렵, 혹은 일을 마치는 순간 적었다. 계획이란 건 머릿속에서 어렴풋이 떠올려놓기만 했다. 눈에 보이게 계획을 세우는 순간 그 계획에 사로잡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게 분명했거든요.


일을 시작하고 난 후에는 일을 마쳐야 하는 일정과 현장을 나가야 하는 일정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날짜별 계획을 세운다. 주어진 일정 안에 일을 해내야 하는 게 어른의 숙제니까. 하루하루 나에게 부여된 일을 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계획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 연인과 세운 약속은 소중하다.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이 깨졌을 땐 엄청난 허무함과 허탈함이 밀려오며 외로움이 나를 지배한다. 우울해질 때도 있다. 나는 너와의 약속을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넌 아니었던 거니?

소중한 사람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 미리 약속을 잘 못 잡는 이유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굳이 만나야 하나 싶은 사람과 한 약속은 전날 취소돼도 아무렇지 않다. 나에게 타격감을 주는 건 그 약속이 소중했기 때문이다.


혼자가 편한 사람이라 외로움이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누구보다 외로움이 많고, 상처를 많이 받기 때문에 더욱 강한 척, 혼자가 좋은 척. 그런 척을 하지는 않았나 싶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혼자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밀린 집안일을 하고, 밥다운 밥을 챙겨 먹는 혼자인 생활. 혼자 공연을 보러 가고, 혼자 여행을 가는 삶. 진심으로 좋을 때가 많지만, 반복되면 외롭다.


혼자의 시간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고, 존중받기를 원한다. 그 시간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인생일 때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역시 인생은 균형 잡혀야 한다.


티라미수를 먹어보고 싶다는 엄마의 말, 작은 가방이 필요하다는 아빠의 말, 퍼스널 컬러 검사를 해보고 싶다는 동생의 말, 여행을 가자는 친구의 말. 내 마음속에 숙제로 남아있는 말들. 물론 더 많음. 어쨌든 그런 말들이 내 마음 깊이 박혀있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그들의 말까지 함께 떠오른다. 말의 힘은 강력하다.


내 사람들과의 모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내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다.


그러니까 약속을 했으면 좀 지키세요. 어기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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