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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순호 Jul 02. 2024

쓸쓸한 농담

느낌



            쓸쓸한 농담    /   김순호          




      스타벅스에서 갈아온 블론드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 맛은 쓰지 않고 부드럽지만 카페인  함량은  제법 되는 듯 두 눈에 스위치가 켜진다.


      사람들은 끼니를 챙기듯 커피를  즐긴다  틈틈이 작업실 밖을  내다보면  때를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은  거의 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라테   또는 취향에 따라 각각의  음료를  들고 다니며 마신다. 흔한 풍경이라 의미 없이 지나쳤던 것을  어느 날 인가부터 떠올리게 된  것은  졸작인  '시'를 늘 다독이며  응원해 주시던  한 노 시인님이 길을 걸으며 우스개 소리로 들려준 말씀 때문이다.


  "난 젊은이들이  저렇게 커피를  들고 다니면서 마시는 게 부러워, 다시  젊음으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길에서 커피를 마셔 보고 싶어 "  하며  쑥스럽게  웃으시던 일이다. 


     아니, 만일 젊다면 하고 싶은 일이 고작 길에서 커피를 마셔 보는 일이라니?  난  너무 하찮고 쉬운 일이라 당황스럽기까지 해서 얼른 끼어들어  "선생님 그게 뭐 어려워 못하세요?  제가 얼른 가서  사 올 테니 오늘 한번 길에서 마셔 보세요 " 했더니  얼굴까지 붉어져 손사래 치며 극구 사양하신다. 그 후 기회가 있어 한 번 더 카페를 가리키며 손짓으로 의견을 드렸지만 한결같으셨다.


     내겐 너무 어려운 분이기도 했고  나 역시  마음과 달리 더는  권해 드리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깟 게 뭐라고, 꼭 이목이 두려워 참으셨다기보다는  아마 길에서 마시는 건  점잖지  못한 행위라는  주입된  관습 탓에  애써 감성을 누르셨을 거라 짐작한다. 그러다  지난해 초봄 선생님이 급작스레 돌아가시자 ,  그때서야  내가  좀 더 적극적이었다면  선생님이 길에서 커피를 마셔보는 낭만을 즐기실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와 깊어지더니  시간이 갈수록  후회로  자리를 바꾸고 있다.


유쾌한 농담 같은 그날이, 살에 박혀 끝이 잘려나간 가시처럼 수시로 찌르고  따끔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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